韓/국내 답사

2013 근현반 역사기행1 - 경교장

同黎 2013. 3. 31. 23:27



2013년 근현반 역사기행. 경교장에서 덕수궁까지. 

학회장 심보람 외 꽈장 송혜영, 이가은 그리고 새내기들 참석. 나는 학회장의 부탁으로 가이드를 한다. 첫 답사지는 경교장


경교장에 가려면 서대문역에서 내려야 한다. 혹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버스를 내리면 된다.

여기가 서대문역인 이유는 한성의 서쪽 정문이었던 돈의문이 있었던 자리이기 때문. 그러나 1915년 돈의문이 헐리고 찻길이 나면서 서대문은 이름만 남았다.

 

그런데 서대문이라는 표현은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남대문, 동대문 같은 표현은 조선시대에서 종종 쓰였거니와 (실록에도 등장) 서대문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조선시대 돈의문의 별칭은 신문(新門), 그러니까 새문이었다. 세종 때 서곶문을 헐고 새로 지었다고 하여 신문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이 동네 길이 신문로인 것도, 그리고 바로 근처에 새문안교회가 있는 것도 바로 서대문의 원래 이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돈의문 복원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니 결국 무산되었는지 지금은 이렇게 표시만 되어 있다. 


충청로역 방향을 바라 본 풍경


길 건너 정동길 입구의 경향신문사 사옥. 소유는 정수장학회라고. 본래 정동의 MBC 사옥이었고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이다. 


시청 쪽을 바라본 사진


지금의 경교장을 찾으려면 강북삼성병원을 찾는게 더 빠르다


학교 외의 장소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집결


이 날은 학회장님 생신이시라 선물을 준비한다.

김동영이는 무려 광마우스를 선물로 준비...


학교에서 출발한 무리가 모였다. 


나머지 애들은 심보람에게 호두과자를 줘서 선물로 넘긴다


드디어 상봉


선물 증정식


이런 포즈를 이가은이 좋아한다.


강북삼성병원 입구에 경교장이 보인다.


올해 3월 2일 내부 수리를 거쳐 일반 공개되었다. 

공개된지 한 달로 안되는 상황.


본래 최창학이라는 금광업자의 건물로 죽첨장이라고 이름했다가 해방 후 경교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입주하게 되었다. 김구 서거 이후 대만과 월남의 대사관으로 쓰이다가 병원으로 사용되기 시작되면서 내,외부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2005년에야 사적 465호로 승격되었고 김구의 집무실만 복원되었다. 삼성의료재단의 소유인데 사적 지정 이후 국가에서 매입의사를 밝혔으나 삼성측에서 거부하다가 2010년 소유권은 그대로 삼성에 관리권은 서울시로, 복원비용은 국가에서 상당부분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고 전면 복원되었다.


입장

먼저 지하의 전시실을 본다. 여기엔 김구 서거 당시 입었던 혈의와 데드마스크, 유묵과 낙관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나머지 지상 부분은 촬영 가능


아우 깜짝이야


먼저 1층에서 보는 곳은 귀빈식당

2차에 걸진 임시정부 요인 귀국 후 식사가 열린 장소


안내원의 설명을 경청하는 새내기들


귀빈식당의 원형


임정요인의 귀국과 대담을 보도한 자유신문




다음 장소로 이동

가은이가 귀척을 했던 것 같다.


선전부 활동공간. 일종의 기자실이나 공보실 같은 곳이다.

언론을 상대하던 곳


1층의 응접실




응접실 전경


2층으로 이동


김구의 집무실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건물이라 다다미가 깔려 있다.


건물의 내부 가구를 보여주는 건축 원형 전시실



김구의 집무실

여기서 안두희에게 살해당했다.

안두희의 배후에 대해서는 이승만이다, 족청(이범석계의 우익 청년단)이다, 미국이다(안두희가 미군방첩부대 소속이었기 때문에) 등 여러 설이 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집무실 내부



이 의자 뒤의 창문이 당시를 증언한다


안두희가 쏜 총알이 튀어 창문에 구멍이 났다


집무실 뒤편으로는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전경적 일식 가옥의 모습


벽에는 사무사라는 김구의 유묵 복제품이 걸려 있다


2층 발코니로 나가버린 학회장님

김구는 여기 서서 많은 연설을 하였다.

김구는 좌익을 싫어하고 협력하길 오랫동안 거부했다. 그래서 분단의 책임이 어느 정도 그에게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뭐 고집이 좀 쎘어야지. 하지만 김일성을 만나러 갈 정도의 결단력을 갖춘 것도 김구뿐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쿠데타를 계획하기도 하였고... 여튼 큰 인물은 큰 인물이다,

2층 응접실 전경

귀국 후 첫 국무위원회가 개최된 장소라고 한다.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벽난로


뭔가 즐겁다


마지막 방에 있는 디오라마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재현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