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구 7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9 - 총설9

명기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시대에 축척된 히가시야마어물(東山御物), 그 외 무라타 주코(村田珠光)·타케노 죠오(武野紹鴎)·센노 리큐(千利休) 및 같은 부류의 종장(宗匠) 등이 매우 아끼거나 이름을 붙인 상자를 만드는 등 여러 풍류적인 색채를 더한 명기들은 그 수가 본디 많았다고 할지라도, 겐키(元亀)·텐쇼(天正)의 난이나 오사카성 함락 등으로 인하여 그 수가 크게 줄게 되었다. 한편 도쿠가와씨의 천하가 이제 확립되면서 대소 영주 모두 에도로 참근교대(参勤交代)를 하게 되면서 웅장한 저택을 갖추게 되고, 막부도 천하태평책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다도 풍류를 장려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면서 명기를 원하는 자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종래의 명물만으로는 도저히 그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

雜/대정명기감 2021.08.09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8 - 총설8

도쿠가와(徳川)와 명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마냥 연기를 하면서까지 명기를 다루지는 못했다. 그가 군정(軍政) 상 사려있고 주도면밀해야 하는 대장이기에 물론 명기의 가치는 알았지만, 실가(實價) 이상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철저함을 처음부터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가 마츠다이라 넨세이(松平念誓)에게서 하츠하나 카타츠키 차이레(初花肩衝茶入)를 얻고 그 대신 영지 500석을 주라고 말했던 것처럼 명기에 대한 관념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곧바로 이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격퇴를 축하하는 물품으로 보냈다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떻게 명기이용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케이초(慶長) 5년(1600)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카케카..

雜/대정명기감 2021.08.05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7 - 총설7

명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히데요시는 천하통일의 정책에서 완전히 노부나가를 답습하였는데, 명기 이용책에서는 이를 더더욱 확장하여 다대한 효과를 거두었다. 히데요시가 다사(茶事)를 좋아하고 명기를 애용한 것은 노부나가 이상으로, 텐쇼(天正) 10년(1582) 노부나가 사후에 이미 노부나가가 데리고 있던 츠다 소큐, 센노 리큐 등을 임용하여 이들 사카이 출신 종장을 통해 재빨리 사카이슈(堺衆)의 관심을 샀다. 노부나가를 대신한 지 얼마 되지 않고, 풍운망창(風雲莽蒼)으로서 천하가 어느 쪽으로 정해졌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초암(草庵)에서 차 끓는 소리를 들었으며, 황금다실(金屋)에서 다이스(台子) 다회를 열면서 큐슈 정벌에서도 리큐 등을 대동하고 다다르는 곳마다 풍류아회(風流雅会)를 열었다. 오다와라..

雜/대정명기감 2021.08.05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5 - 총설5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명기 오다 노부나가가 오와리(尾張)에서 굴기하여 천하통일의 업을 창출하였고, 이마가와(今川), 타케다(武田)를 멸망시키고 아자이(浅井), 아사쿠라(朝倉)를 섬멸하여 먼저 교토를 세력권에 집어넣었다. 공격 방향이 더욱더 퍼질수록 용맹한 장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점점 급해졌지만, 당시 조정의 지위와 명작에 맡겨서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였고, 그들에게 있어 사력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토지와 금은재보 등 물질적 상여(賞與) 뿐이었으나. 충분히 주기에 토지는 이미 부족하였고 금은도 역시 한계이 있었다. 시무(時務)에 민첩하고 능통한 노부나가는 빠르게도 근방의 소식을 알아차리고 히가시야마어물(東山御物)을 시작으로 하여 킨키(近畿) 지방에 산재한 천하명기를 자기 손에 넣은..

雜/대정명기감 2021.06.22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4 - 총설4

명기와 가치 히가시야마시대(東山時代)부터 갑자기 그 수량이 증가한 일본의 명기는 다사(茶事)의 유행과 함께 점점 그 가치가 증진했기 때문에 소장자는 스스로 그것을 진중히 여겼다. 예를 들면, 차이레의 시후쿠(仕覆)·히키야(挽家)를 만들고 내상(內箱)·외상(外箱)을 제작하여 3겹·5겹으로 하면서도 더더욱 만족하지 못하고, 이것을 매우 단단히 해서 창고에 넣어 보호에 만전을 다했다. 또한 이걸 사용함에 있어 매우 면밀하게 주의를 하고, 당물 차이레(唐物茶入) 등에 대해서는 다례(茶禮)에서 정중하게 이걸 취급하는 등 일종의 방식을 정하면서 결코 과실(過失)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본디 풍류의 소양이 없는, 명기에 대해 소위 돼지 목에 진주(猫に小判)와 같은 무리에게는 가치를 보여주어 그 귀중한 정..

雜/대정명기감 2021.06.21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3 - 총설3

명기와 명칭(名稱) 명기에 명칭을 붙이고 여기에 독자적인 1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봉건시대에 성(姓)이 없는 평민에게 성을 허락하여 어디의 아무개라고 이름을 가지게 하는 것과 같은데,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데 가장 유효한 조건이 된다. 어쩌면 명기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문자국(文子國)인 중국의 관례로서 그 나라의 악기, 문방구 등에는 왕왕 아칭(雅称)이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일본에서도 예부터 그런 류의 예가 있었지만 명기가 있으면 반드시 그 명칭이 있기에 이르렀던 것은 다사(茶事)를 처음으로 행하였던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시대부터인 듯하다. 생각건대 요시마사는 문아(文雅)를 좋아하고 생각이 풍부하며, 스스로 애장하는 기물에 명명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또한 그 신하들도 풍류자가 많아 ..

雜/대정명기감 2021.06.18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1 - 총설1

대정명기감 해설(大正名器鑑解說) 타카하시 소안(高橋箒庵) 총설(總說) 본편을 이름지어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이라 부른다. 대체 명기(名器)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나라(일본)의 현재 상황에 임하여 말해보면, 정창원(正倉院) 어물(御物), 기타 제실(帝室) 소장의 기물도 명기가 되며, 전국의 오래된 사사(寺社)에 전해지는 집기도 명기가 되며, 고관·부호·명문가에서 소장하는 보물도 역시 모두 명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위 명기에는 무기도 있고 악기도 있으며 혹은 실내 장식품도 있으며 기타 잡다한 종류도 있다 하더라도, 본편에서 명기라 칭하는 것은 단지 다기(茶器)만을 가리킨다. 고래 다인들 간에서는 유명한 기물을 명물(名物) 혹은 명기(名器)라 불렀다. 그 시대를 나누어서 혹은 대명물(大名物), 중흥명..

雜/대정명기감 202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