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시대에 축척된 히가시야마어물(東山御物), 그 외 무라타 주코(村田珠光)·타케노 죠오(武野紹鴎)·센노 리큐(千利休) 및 같은 부류의 종장(宗匠) 등이 매우 아끼거나 이름을 붙인 상자를 만드는 등 여러 풍류적인 색채를 더한 명기들은 그 수가 본디 많았다고 할지라도, 겐키(元亀)·텐쇼(天正)의 난이나 오사카성 함락 등으로 인하여 그 수가 크게 줄게 되었다. 한편 도쿠가와씨의 천하가 이제 확립되면서 대소 영주 모두 에도로 참근교대(参勤交代)를 하게 되면서 웅장한 저택을 갖추게 되고, 막부도 천하태평책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다도 풍류를 장려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면서 명기를 원하는 자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종래의 명물만으로는 도저히 그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