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대정명기감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1 - 총설1

同黎 2021. 6. 12. 16:54

대정명기감 해설(大正名器鑑解說)

 

타카하시 소안(高橋箒庵)

 

총설(總說)

 

본편을 이름지어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이라 부른다. 대체 명기(名器)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나라(일본)의 현재 상황에 임하여 말해보면, 정창원(正倉院) 어물(御物), 기타 제실(帝室) 소장의 기물도 명기가 되며, 전국의 오래된 사사(寺社)에 전해지는 집기도 명기가 되며, 고관·부호·명문가에서 소장하는 보물도 역시 모두 명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위 명기에는 무기도 있고 악기도 있으며 혹은 실내 장식품도 있으며 기타 잡다한 종류도 있다 하더라도, 본편에서 명기라 칭하는 것은 단지 다기(茶器)만을 가리킨다. 고래 다인들 간에서는 유명한 기물을 명물(名物) 혹은 명기(名器)라 불렀다. 그 시대를 나누어서 혹은 대명물(大名物), 중흥명물(中興名物)이라고 불렀고 또는 그 소유주를 나누어 히가시야마어물(東山名物)·류에이어물(柳營名物) 등 무슨무슨 집안 소장품이라 불렀지만, 넓게 이 사회에서 통용되므로 지금 채택하여 본편의 명칭으로서 하려고 한다. 하지만 명기는 어떠한 종류의 다기 중에 존재하는 가라고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여덟 품목을 빠뜨릴 수 없다.

 

차이레(茶入) 다완(茶碗) 차샤쿠(茶杓) 차츠보(葉茶壷) 하나이레(花入) 향로(香炉) 향합(香合) 가마(釜)

 

이외 미즈사시(水指), 켄스이(建水), 스미토리(炭斗), 고토쿠(五徳), 하보우키(羽箒), 히바시(火箸), 로부치(炉縁) 등의 품종도 있지만, 그 중에 명기라 칭할만한 것은 매우 적으므로 명기감은 전술한 여덟 종류의 명기를 수록하는 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초에 위의 여덟 종류에 대하여 명기 조사를 수행하고자 하여 어림잡으니 실험상 종목이 여러 갈래에 이르니 피차간에 혼잡하여 총체적으로 실수할 수 있는 우려가 있음을 감지하여 제1기 계획으로서 여덟 종류 중 가장 명물이 많은 차이레·다완, 2개 품목을 선두로 하여 이 품목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두루 탐색하여 가급적 이를 망라하려고 기했다.

 

생각건대 명기의 수장(收藏)은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를 시초로 하여, 히가시야마(東山) 시대에 노아미(能阿弥), 소아미(相阿弥), 인세츠(引拙) 등이 이를 품평한 것을 『군대관좌우장(君台観左右帳)』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텐쇼(天正) 연간(1573~1593)에 센노 리큐(千利休), 츠다 소큐(津田宗及) 등이 다시 이것을 검사하여 그 높고 낮음을 확연히 구분한 것을 “대명물(大名物)”이라고 부른다. 당시 이것을 기록한 것을 야마노우에 소지(山上宗二)의 『다기명물집(茶器名物集)』이라고 한다.

 

그 후 칸에이(寛永) 연간(1624~1645)에 고보리 엔슈(小堀遠州)가 나와 새로이 명물 다기를 선정한 것을 중흥명물(中興名物)이라고 칭하여, 이로부터 대명물과 중흥명물을 나란히 두어 명기의 수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칸포(寛保) 연간(1741~1744)에는 마츠다이라 노리사토(松平左近衛将監乗邑)가 『명물기(名物記)』를 찬술했으며, 칸세이(寛政) 연간(1789~1801)에는 마츠다이라 후마이(松平出羽守宗納)가 『고금명물유취(古今名物類聚)』를 저술하였고 분세이(文政) 연간(1818~1831)에는 혼야 료운(本屋了雲)이 『인봉구룡(麟鳳亀龍)』을 편찬하였는데,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조사에 임했을지라도 봉건시대에는 여러 다이묘(大名) 소장의 다기 대다수는 해당 번(藩)의 영지에 있어 교통의 불편함이나 기타 사정으로 인해 용이하게 그것을 배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은 우연히 배견했더라도 당시에는 사진촬영 등의 편의가 있지 않았을 터이니, 결국 완전하게 명기집을 저술하기 어렵게 한 것은 당시의 사정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이 크게 편해져 명물을 배견하기에 형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사진촬영 기술도 역시 두드러지게 진보하였으니 나는 명기 조사에 있어 다행스럽게도 옛날 사람보다 몇 배의 편리함을 향유하면서 차차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어 필경 태평한 시대의 혜택을 받았다. 여기서는 다이쇼(大正) 시대에 조사한 명기의 도록과 이것을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본편을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이라고 이름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