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대정명기감

대정명기감(大正名器鑑) 해설4 - 총설4

同黎 2021. 6. 21. 23:10

명기와 가치

 

히가시야마시대(東山時代)부터 갑자기 그 수량이 증가한 일본의 명기는 다사(茶事)의 유행과 함께 점점 그 가치가 증진했기 때문에 소장자는 스스로 그것을 진중히 여겼다. 예를 들면, 차이레의 시후쿠(仕覆히키야(挽家)를 만들고 내상(內箱외상(外箱)을 제작하여 3·5겹으로 하면서도 더더욱 만족하지 못하고, 이것을 매우 단단히 해서 창고에 넣어 보호에 만전을 다했다. 또한 이걸 사용함에 있어 매우 면밀하게 주의를 하고, 당물 차이레(唐物茶入) 등에 대해서는 다례(茶禮)에서 정중하게 이걸 취급하는 등 일종의 방식을 정하면서 결코 과실(過失)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본디 풍류의 소양이 없는, 명기에 대해 소위 돼지 목에 진주(小判)와 같은 무리에게는 가치를 보여주어 그 귀중한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빠른 길(捷徑)이다. 히가시야마시대부터 그 세대의 종장(宗匠)으로 하여금 천하명기의 격을 정하고, 일반인에게 대해 간단하게 기물의 고하를 보여주는 일을 하였다. 노아미(能阿弥), 소아미(相阿弥), 인세츠(引拙) 등이 히가시야마어물(東山御物)을 감정하고 가격을 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 곧 그 일례이다. 단지 다기만이 아니라 도검(刀劍)에 있어서도 감정의 본가(本家)인 혼아미(本阿弥)에게 명하여 절지가격부(折紙価格附)를 만들게 해 그 경중을 용이하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은 한편으로 보자면 매우 천한 듯 같지만, 명기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먼저 이것을 존중케 하고, 그에 막춰 매우 소중히 보호하도록 하는 것에는 그 가격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그래서 명기의 가격을 정하고 일반인이 이를 존중함에 이르면 천하의 훌륭한 관직(名爵秩祿)과 가치를 나란히 하여, 공에 대한 상(加恩賞功)의 효용이 생길만한 것은 본디 자연스러운 일이나, 가장 빨리 이것에 착안하여 이를 크게 이용한 것은 어쩌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