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대중국기본진열이 시작된다.
고대 중국이라고 해도 선사시대부터 명청대까지 전근대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들어가면 이런 북경원인 모형이 먼저 보인다.
그 유명한 북경원인의 두개골과 모형
하지만 저 두개골은 가짜인데, 중일전쟁 와중에 가장 중요한 두개골은 사라졌다고 한다.
서양인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연구되었기 때문에 중일전쟁 당시 안전한 미국으로 옮기는 와중에 사라졌다는데... 지금도 중국 정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는단다. 다행히 나중에 북경 원인 유골은 많이 발견되었다.
매 모양 토기 정(鼎)
신석기 시대의 토기로 표면을 연마했다.
유골을 그대로 떠온 것
황하문명의 토기들
황하문명의 토기들은 채색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채도문화라고 하기도 한다.
옥룡
내몽골지역에서 출토된 홍산문화의 옥기이다.
기원전 3000년 경의 유물로 홍산문화의 대표적 유물이다.
홍산문화는 황하문명권보다 더 앞선 문화로 요하문명권으로 보고 있다.
옥종
종(琮)은 주례에 나오는 예기의 일종인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청나라 때 건륭제는 이걸 꽃병으로(...) 썼다고 한다. 그건 아닌 듯
신석기시대 인물모양 토기
상아로 만든 새 모양 조각
이제 하상주시대로 건너간다.
상과 주는 확실히 존재하는 국가가 맞지만, 하는 국가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스러운데
현재 중국에서는 하를 실존했던 국가로 공인하고 있다.
이 전시실의 대미는 수많은 청동기들이다.
귀중한 청동기들이 정말 널려있다.
작
일종의 술잔이다.
서주시대의 옥패
옷에 달고 다니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예기인데 주나라 당시의 것을 볼 수 있을지는 몰랐다.
각종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
당시 청동기는 제기나 하사품이 대부분이다.
굉장한 고가품이었고 아무나 가지고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왜 이 청동기를 만들었는지 등등의 내용을 적은 금석문이 많이 남아있다.
이 금석문들은 '사기'라는 한정된 문헌자료 밖에 없는 상주시대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사각이 네모난 방형 정
존(尊)이라는 일종의 술항아리로 제기의 일종이다.
일종의 도량형이다.
상나라 후기의 것으로 동물모양을 한 존이다.
역시 상나라 후기 제기의 일종
하남성 출토
상나라 후기의 청동기
말 모양 청동기
대형 작
이제 점점 시기가 떨어진다.
신기하게도 청동기는 상에서 주로 갈수록 치밀함이 떨어진다고 한다.
기술의 발전과 시간의 흐름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초기의 편종들
유적에서 그대로 떠온 칠기
은허 유적의 발굴품인 옥기
은허 유적의 발굴로 상나라가 역사상 실존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역시 은허 출토품
석반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다.
그 유명한 갑골문
사슴이나 거북이의 뼈에는 갑골문으로 점을 치는 목적이 새겨져 있다.
즉 뼈에 질문을 적고 이를 불에 가열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점괘를 얻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나라식 점은 주나라로 바뀌면서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주나라는 작은 나무가지인 산가지로 점을 치게 되고 이것이 주역으로 정리된다.
갑골문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세기 초 발굴될 때까지 그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다.
거대한 청동기
술이나 음식을 담았을 것이다.
서주 초기의 유물이다.
술을 담는 제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서주 중기의 말 모양 청동기
상나라 후기의 양머리 존
미술사에 등장하는 엄청 유명한 물건이다.
상나라 후기의 뇨(鐃)
뇨라는 건 종보다 큰 것으로 사용법은 종처럼 때려서 치는 방식이다.
이것은 상나라 후기 유물로 촉 지방, 즉 현 사천성의 삼성퇴에서 발견된 인물형 청동기이다.
이걸 중원문화와 동일한 것처럼 진열해놓다니 어이가 없었는데, 삼성퇴의 촉문명은 황하문명과는
엄연히 다른 독립된 문명권이다. 역시 통일적 다민족국가, 중화대가족의 손길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었다.
뒷면
역시 삼성퇴에서 발견된 인물형 청동기
생각보다 커서 놀랐다.
이것 역시 삼성퇴의 유물이다.
삼성퇴의 주인공은 유물만 남기고 문헌자료를 남기지 않아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이제 춘추전국시대로 넘어간다.
거대한 종이다.
이 때는 종의 음을 크기로 조절했다. 그래서 이렇게 큰 종도 등장한다.
매우 아름다운 청동기이다.
이러한 청동기들은 다소 섬세함이 떨어진다.
춘추시대 말기 하남성 출토품이다.
춘추시대의 청동기
글자 부분은 금실로 박아 넣었다.
제후국의 제후가 선조의 제사를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유명한 오왕 부차의 검
우리에게는 와신상담이라는 고사로 유명한 왕이다. 이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새겨진 검이 출토되었다.
극이라 불리는 일종의 창이다.
이것은 노, 즉 쇠뇌이다.
춘추전국시대는 다양한 무기와 전법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시기에도 계속 아름다운 청동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보이는 세형동검과 비파형동검
만주에서 한반도 일부까지도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왕명이라는 글자가 적인 옥기
완전한 모양의 편경과 편종
전국시대의 무덤인 증후을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손자병법 죽간 복제품
뭐 당연히 원본은 공개되지 않는다. 본존상의 문제로
한나라 때의 죽간으로 이것이 발견어되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이
서로 다른 것임이 밝혀지고 손자병법의 저자가 손오임이 명확해졌다.
촛대
각 나라의 화폐들
명도전도 보인다.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하고나서 각국의 다양한 화폐 역시 통일시킨다.
우리가 잘 아는 엽전이 그것이다.
각종 청동기들
그 중의 압권은 바로 이 대정이다.
증후을묘에서 발견된 화려한 정이다.
이제 통일왕조인 진한시대이다.
진시황의 병마용이 등장한다.
진나라 당시의 비석
전국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일해 만든 대전체로 쓰여져 있다.
금루옥의
한나라 당시 금루옥의
옥 조각을 금실로 엮어 만든 옷에 시신을 넣은 것이다.
옥으로 만든 얼굴 덮개이다.
한나라 대의 병마용
진시황의 것과는 달리 실물크기는 아니고 작은 도용이 많이 만들어졌다.
무덤에서 발굴된 집 모양 토기
역시 도용
한나라 묘에서 나온 도덕경 죽간
참고로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으로 나뉘어 도경-덕경의 순서로 전해졌는데,
이것의 발견으로 인해 덕경이 먼저라는 사실이 밝혀져 도가사상 전공자들에게 멘붕을 일으켜줬다.
벽
이렇게 둥글고 가운데가 뚫린 옥기를 벽이라고 한다.
시신의 가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청동등잔
초의 그을음이 새의 머리 부분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몸통 부분에는 물을 담아 정기적으로 갈아주었다.
섬서성에서 발견된 청동기
코뿔소 모양으로 금을 입혔다.
실크로드의 개척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국적인 풍의 청동기이다.
한대의 비단
역시 무덤에서 발견된 전차모양 도용
나무모양의 촛대
배 모양의 도기
녹유 도기로 만든 가옥 모형
당시 무덤에 이러한 것을 부장품으로 많이 넣었다.
해시계
오 이렇게 오래된 것이 있다니
무덤 입구에 세워둔 진묘수
유명한 북 치는 광대 모습의 도용
한대 도용 중 최우수작에 손꼽히는 것이다.
아 이런 걸 실물로 보다니
서역인을 본따 만든 석제 부장품
역시 춤추는 여인 모습의 도용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소를 올려 놓은 청동기
이것은 운남성 지역의 것으로 중원문화가 아니라 지금의 동남아 문명권의 유물이다.
이런 것도 중국영토에 속한다고 전시하다니. 중국사의 속지주의가 대단하다.
역시 운남성 출토 청동기
도금한 청동 장식
신강 위구르 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인장
이 지역의 수장이 한나라 조정에서 받은 인장이다. 이것도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전시품이다.
중국은 이러한 유물로 해당 지역의 역사적 종주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한나라에서 내린 금인이 등장하는데 아무도 일본을 당시 중국사의 영역에 넣지 않는다.
결국 고대사는 현대 정치에 의해 다시 쓰여지는 것이다.
이것들 역시 현재 베트남 민족의 유산이다.
춘추시대의 통나무 썰매(?)
저 橇(교 혹은 취)라는 글자는 썰매로 해석되는데 아마 배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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