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들은 도지를 갔다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기모노 체험 세트 포스터
세트 플랜을 맡겨줘로 번역하는 구글 번역기의 위엄
마침내 인왕문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교토 관광객의 90%가 온다는 기요미즈데라
한국어도 곳곳에서 보인다.
기요미즈데라 앞 골목은 엄청나게 사람이 붐빈다.
기요미즈데라는 고류지, 쿠라마데라와 함께 교토 천도보다 먼저 세워진 사찰이다.
법상종의 사찰로 한동안 나라 고후쿠지의 말사로, 나라불교가 교토에 영향력을 미치는 통로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고후쿠지의 승려가 꿈에서 계시를 받고 관음보살의 화신을 이곳에서 만나 천수관음을
새기고 암자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라는 최초의 쇼군(세이이타이쇼군,
정이대장군)으로 임명되는 사람이 아내를 위해 사슴 사냥을 왔다가 수행 중인 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땅을 시주하여 크게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기요미즈데라로 발전하였다.
절의 이름은 경내에 흐르는 맑은 물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금도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라는 작은 폭포가
흐르고 있다. 이후 오닌의 난 등 여러 차례 불탔다가 마굿간과 인왕문 이외의 지금 건물은 에도막부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지은 것이다. 인왕문과 마굿간은 무로마치시대의 것으로 화재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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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문 앞에서 기념사진
누구나 찍는 기요미즈데라 앞 기념사진
삼층탑
들어가면 전촌당과 조창당 등 건물이 늘어서 있다.
두 건물 모두 중요문화재로 사찰의 중건에 도움을 주었던 이들을 모신 곳이다.
국보인 본당
에도막부 초기 대형 건축물의 대표 작품이며,
절벽 앞으로 베란다 같은 무대를 만든 무대조 건축의 대표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자안탑
아래로는 오토와노타키가 보인다.
바로 기요미즈데라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곳이다.
본당 앞에는 향을 피우는 이들이 가득하다.
안에 모신 천수관음은 절대 비불로 33년에 한 번만 공개되며
2000년에 열었기 때문에 2033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진도 공개되지 않았는데 유일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마쿠라시대 중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42개의 손 중 두 개를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데 이것은 경전 상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도상이다.
본당 정면
본존을 모신 내진 부분
안에는 에도시대에 만든 이십팔부중이 모셔져있다.
에도시대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생동감이 있는 작품으로
문화재로 지정될 만도 한데 아직 지정이 안 되었다.
내진 기둥에는 금박을 입혔던 흔적만 남아 있다.
금연 문구
본당 뒤편에는 연애의 신사로 유명한 지슈신사(地主神社)가 있다.
원래 기요미즈데라와 하나였지만 신불분리로 나뉘어졌다.
뭐 여기도 여러 번 갔지만 효험은 못 봤다.
멀리서 보는 본당 모습
커다란 본당 지붕에 두 개의 박공이 튀어나온 특이한 형태이다.
아래의 무대도 거대하다.
왼편의 뇌문과 석가당이 공사 중이다. 오쿠노인과 아미타당도 공사 중이다...
본당도 이제 공사 중이라고 한다.
기요미즈데라의 끝에 있는 자안탑
얼마 전 해체수리가 끝났다.
아들을 낳게 해주는 탑으로 유명하다.
자안탑에서 바라 본 기요미즈데라
거대한 무대가 보인다.
이제 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중
각각 장수와 학문, 연애를 의미한다는 세 줄기 물이다.
2개까지만 마셔야 하고 모두 마시면 무효라지만 뭐 믿거나 말거나
내려가는 길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잡아온 에미시 두령들의 명복을 비는 비석이 있는 곳이다.
내려가는 길
멀리 야사카노토(八坂の塔, 팔판탑)이 보인다.
본래 호칸지라는 절로 무로마치 막부에서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위해 지은 절이었으나 이젠 오층탑만 남았다.
야사카노토와 도지 오층탑이 시내에 있어 교토는 교토답다.
멀리서 봐도 아름다운 탑이다. 시내 한가운데 있어 더욱 이채를 띄는 탑이다.
입장하려 열심히 뛰어 갔으나 이미 문을 닫았다.
휴
이제 교토대에 왔다.
역시 마지막 운동권 대학답게 아베정권의 안보법을 타도하고 터키, 한국과 국제연대하자
대공황이 물려오니 혁명으로! 라는 중핵파의 대자보가 서있다.
교토대 총학생회장이 잡혀갔나보다.
역시 마지막으로 남은 일본 운동권의 보루다.
중핵파는 일본 운동권의 종말을 선사했던 60년대말 연합적군 사건 이후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조직이다.
교토대와 도쿄대 등 몇몇 대학에서는 아직 이들이 학생회를 통해 남아있다.
온 김에 기념사진
교토대학의 상징인 시계탑과 녹나무
저녁은 학생식당에서
가라아게와 카츠카레
나도 푸짐하게 한 상 받았다.
고대 학식 스타일로 반찬마다 가격이 매겨져 있다.
공안경찰은 출입금지라는 거대한 대자보
대학 앞의 한식당. 한국어를 잘 하지는 않나 보다. 국밥을 국밤이라고 하다니...
그나저나 소고기국밥이 소 스프로 번역된 건 누구의 센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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