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있을 나의 파업을 위해

同黎 2012. 8. 6. 14:19

70년대 학생운동은 대학생의 노동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작되었다. 전태일이 남긴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기장의 한 구절에 수 많은 대학생들이 죄책감을 느끼며 운동의 대열로 합류했다. 그 때 대학생은 지식인이었고, 올바른 사회를 건설할 일종의 사회적 책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계급적 인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운동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일종의 부조(扶助)로써 기능했다.

 

80년대 이후 상황은 변화하였다. 5공 정권이 대학의 입학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대학 설립을 용이하게 하면서 대학생의 절대적 숫자가 팽창하였다. 더 이상 대학생이 지식인이라는 인식이 통용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계급적 인식이 남한 사회에 유입되면서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하였다. 대학생은 ‘미래의 노동자’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히 노동운동과 계급적 이해를 같이 하여야 했다. 90년대 후반까지 이러한 인식은 대학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해되고 있으며, 실제로 타당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IMF의 여파는 대학사회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대학생은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구매되기 어렵게 되었고,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찾기 보다는 졸업과 동시에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개인의 스펙 쌓기에 열중하였다. 불안정 노동은 대학생들의 목표를 바꾸어 놓았다. 그/녀들은 이제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가 되기는 원한다. 때문에 대학생들은 자본가의 태도를 보고 본받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학생은 미래의 노동자라는 언명은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운동 내에서도 ‘대학생은 미래의 노동자’라는 구호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이라는 초유의 비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이며 심지어 몰상식·비합리적인 정권의 등장은 상식적인 대학생들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계급적 인식, 계급적 이해관계의 동질성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70년대와 같이 ‘지식인으로서의 대학생’이 거리에 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며 거리에 나왔지만, 그 안에는 아직도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를 구분짓고 자신은 적어도 화이트 칼라, 나아가 자본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대로 들어 있다. 그래서 촛불의 동력은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투쟁을 투표에 양보하게 된 것이다.

 

투쟁하는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하여 대학생이 동원되었다. 하루 고생하면 노가다 판보다 많은 일당 15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거절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용역을 뛴 대학생들을 생각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결국 대학생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대학생은 사실 미래의 노동자라는 명백한 사실을 대학사회에서 다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김규항이 말했듯 미래에 있을 우리의 파업을 위해 지금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지켜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