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3일 헤구리1 (시기산信貴山 초고손시지朝護孫子寺1)

同黎 2019. 4. 28. 02:34



교토에서 시기산까지는 멀다.

시기산 자체도 크기 때문에 오늘은 레이제이가 저택 외에는 시기산만 본다고 생각하고 간다.


키타하마 도착


여기서 오사카 지하철로 환승


도부츠엔마에를 지나


난바에서


킨테츠로 환승


다시 우에혼마치로 간다.


여기서 다시 환승해야 되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난바에서 직접 가는 것도 아마 있을 것이다.


다만 주 선인 나라선이 아니라 오사카선이라는 남쪽의 경로라서 잘 보고 타야한다.


보통


타카야스행


다시 카와치야마모토에서 하차

 

여기서 킨테츠 시기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너무 시간이 남아 잠시 마츠야에서 밥을 먹고


다시 카와치야마모토역으로 복귀


기차를 기다리는데


스시열차라는 게 지나간다.


예약을 하면 오사카에서 출발해 스시를 먹으며 해변을 보는 것이란다.


비싸겠지


마침내 시기산구치행 도착


하 타기 힘들다

시기산구치까지 고착 2개 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자주 있을 리가 없다.


시기산구치역 도착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40분에 한 대 꼴인 케이블카

만만치 않다


케이블카로 이동 중


과거에는 이코마와 오지역을 이어주는 이코마선에서 올라가는 시기산 동쪽의 케이블카도 있었다고 하지만

80년대 이용 인원 감소로 폐선되어, 이것이 현재 시기산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케이블카이다.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호랑이는 시기산의 상징


케이블카 내부


올라간다


1.3km 길이로 350미터 높이를 올라간다.


지붕은 이렇게 투명창으로 되어 있다.


아래로 도시가 보인다.


오사카의 위성도시인 야오시


야오에도 유적이 많은데 아직 발길이 닿지 못했다.


한 10분 올라간다.


터널 돌입


터널을 지난다.


바깥 풍경


멀리 보이는 타카야스야마역


케이블카의 종착역이다


하차


내려가는 시간표

역시 빡빡하다


여기서 바로 초고손시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야 한다.


지도로 보니 꽤 멀다

도보가 아니라 버스로 15분 소요


다행히 킨테츠 버스라 요금은 간사이 쓰루 패스로 퉁친다.


형과 동생


버스에서 내리니 드디어 시기산이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


여기서 주변은 온통 여관들


한때는 오사카, 나라지역의 유력한 여행지였으나 요새는 쇠락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온천도 있지만 글쎄 얼마나 이용하는지


뭔가 길이 이상하지만

이상한 길을 따라 그냥 가야한다.


멀리 보이는 초고손시지


날은 좋구나


가다보면 거대한 다리가 보인다.


개운교


시기산 입구에는 큰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은 오래전부터 막아 저수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킨테츠에서 케이블카를 놓아 시기산으로 관광객이 늘어나자 이 저수지를

가로지를 다리를 놓아야 했고 그래서 1930년 이 다리를 놓았다.

트러스트 교각을 이용한 다리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고

현재도 잘 쓰이고 있어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리 위에서 보니 새로 지은 차량용 다리가 보인다.


저수지는 대문지라고 한다.


멀리 보이는 입구


시기산의 주봉

시기산(信貴山, 신귀산)은 높이 437미터의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다. 다만 과거 나니와라는 항구였던

오사카와 나라, 아스카 지역을 지어주는 교통로를 단절하는 산맥이었다. 특히 나라 방향은 완만한 능선을

지니지만 오사카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수비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지금 남아있는 시기산성은 고대의

성이기도 해 이미 예전부터 요충지였으며 언제부터인지 알기 어렵지만 대략 헤이안시대 진언종 승려들이

모여 살며 그 자체로 거대한 승병세력이 되었다. 이후 전국시대에는 키자와 나가마사,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거성이 되었다가 오다 노부나에게 의해 폐성되고 승병세력도 토벌되었다가 모모야마시대에 재건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불교에 반대하던 모노노베씨와 전쟁을 앞두고 전승을 기원하였는데 십이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의 해, 인의 월, 인의 일에 비사문천이 이곳이 나타나 그 가호로 전쟁에서 이겼다고 한다.

그래서 믿어야 할 귀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시기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거대한 호텔


중간에 번지점프대가 있다.


다리를 다 건너면


초고손시지의 입구가 나온다.


지금도 비사문천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인(寅)과의 관련성 때문에 곳곳에 호랑이 조각이 있다.


개운교의 등록유형문화재 안내판


여기도 버스와 케이블카 시간표가 붙어있다.


초고손시지의 첫 도리이


다문천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곳곳에 놓여진 호랑이상


경내도

무지 넓다

또 헷갈릴 만하다


초고손시지(朝護孫子寺)는 시기산진언종의 총본산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쇼토쿠태자가 모노노베씨와의

전쟁에서 비사문천의 현신을 겪고 세운 사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9~10세기 당시 수행승들이 이곳에

모여든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다이고천황의 병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의 비사문당에서 빌었다는 것이

문헌상 첫 기록이다. 쇼토쿠태자의 설화는 시텐노지의 전승에 덧붙여져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국보로 지정된 12세기의 국보 시기산연기회권에 그 내용이 남아있다.

이후 초고손시지는 대규모 승병 집단이 있던 곳이었으며 남북조시대 당시 인근의 쿠스노키 마사시게에

동조해 남조의 근왕병으로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후 시기산에 전국 다이묘들이 들어서면서 불교 세력이

약화되었고 마츠나가 히사시데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되면서 절 자체가 소실되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본당이 1951년 화재로 불타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시대

~근대에 재건된 것이다. 또한 신의진언종계열이었으나 전후 고야산진언종에서 독립해 시기산진언종이라고

창종하고 본사를 총본산으로, 탑두 3곳을 대본산으로 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들어가는 길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찍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