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료

종사일기(남승일기) 5월 14일

同黎 2012. 9. 9. 21:07

1835-05-14

晴 甲峴權雅致和來訪卽權寶城從孫也

맑았다. 갑현 권치화 어르신이 내방하였으니 즉 권보성의 종손이다.

1835-05-15

晴 ○賀禮而環点考 ○還分租四十六石一斗一升 常作錢五十五兩二戔九分 每石一兩二戔式 太三十八石一斗七升 常作錢五十七兩一戔八分 已上錢還一百十二兩四戔七分 均給八洞民前後二等分給錢還合一百七十八兩九戔一分 ○前坪都是馬位畓而開梁始役 故出看之

맑았다. ○하례하고 돌아와 점고하였다. ○환분은 쌀 16석 1두 1승이니 작전하면 55냥 2전 9푼이며 매석 1냥 2전씩이다. 콩은 38석 1두 7승이니 작전하면 57냥 1전 8푼이다. 이미 돈으로 바꾼 것이 112냥 4전 7푼이다. 여덟동의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주었다. 전후 이등으로 나누어 주었다. 돈으로 바꾸면 합이 178냥 9전 1푼이다. ○前坪은 모두 마위답인데, 교량의 역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가서 살폈다.

1835-05-16

晴本邑大同吏便付家書二天 ○淸通驛位土復戶預賣事報巡營題嚴閔永川郡事 ○本倅與冊客來訪 設看星之戱 招妓月香花玉皆伶俐於骨法

맑았다. 본듭 대동사 편에 家書를 두 번째 부쳤다. ○청통역 위토 복호를 미리 판 일의 보고에 순영이 민 영천군수에게 엄히 제음을 내렸다. ○본읍 사또와 책객이 내방하여 간성지희를 설하였다. 기생 월향과 화옥을 불렀으니 모두 골법에 영리하다.

1835-05-17

晴 ○登極垂簾尊號三次陳賀代加單子修呈吏曹及巡營而以代受人無乎報送 ○熟布一疋四十尺価給五兩品好<此處称익나니> 黃布一疋<中品>価五兩五戔 白苧一疋価給四兩八戔 白苧十七尺二兩三戔 合錢十七兩六戔怗下官廳 ○往本官同推後竟晷晤擔晩後還

맑았다. ○등륵수렴존호삼차하례대가단자를 고쳐 올리는데 이조와 순영에 대신 받을 자가 없다고 보고를 보냈다. ○숙포 1필 40척은 값으로 4냥 팔전을 주고, 황포 1필(중품)은 값으로 5냥 5전을 주고, 백저 1필은 값으로 4냥 8전을 주었고, 백저 17척은 2냥 3전으로 합쳐 돈으로 17냥 6전을 관청에 첩하 하였다. ○본관에 가서 함께 추고한 후 竟晷晤擔 늦은 후 돌아왔다.

1835-05-18

晴 到任狀上去書者面見十三日安書慰喜 弓矢及筒石魚四級來 京邸告目吏曹尺文及五月初朝報來 ○慶山居驛<民>朴淂守或慮該縣之撗侵軍役立旨成給事許題 ○巡營畨馬徒以河宗孫定送事營吏私通來 ○義興倅答狀來花西權雅致和許書河兼送藥丸 ○營邸吏凉臺改補而來 ○舊水使沈漢永上京路文來

맑았다. 도임장을 올렸다. 편지를 직접 보았는데 13일 보내온 편지가 위로가 되고 기쁘다. 궁시와 통석어 4급이 왔다. 경저 고목과 이조 자문 및 오월 초 조보가 왔다. ○경산에 거하는 역민 박득수가 혹 해당 현의 군역 횡침을 우려하여 입지를 성급해줄 일에 제김을 허하였다. ○순영 번마 일꾼은 하종손으로 정하여 보낼 일을 순영리가 사사롭게 통보해왔다. ○순흥 사또의 답장이 왔다. 화서 권치화 어르신이 허서하고 겸하여 약환을 보내왔다. ○영저리가 양대를 개보하러 왔다. ○구 수사 심한영이 상경한다는 노문이 왔다.

1835-05-19

洒兩旋晴早乾非細夏也 ○慶州民朴允還馬価推給事呈訴題所謂金尙連叔侄並捉來以爲查推之地事

주르륵 비가 오고 곧 맑아졌다. ○경주민 박윤환이 환마가를 추급해줄일을 정소하였는데, 제김에 “김상련의 숙질을 아울러 잡아와서 조사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1835-05-20

乍雨旋晴 ○沙里驛急走金奉大位土盡爲賣食不爲使役事 長吏文狀題聞甚驚 該位土盜賣與受者俱有當律嚴査推還次奉大漢卽爲捉上事 ○巡營畨馬徒以河宗孫起送 ○淸通驛位土盜賣還退事永川郡去營關謄來 故該驛監官河鳳彦爲探動靜次送之 ○東海仁路收布差使兩漢官廳來收愆期罪庭杖枷囚 ○安東柳來春爲其宗人柳復三頉役事呈訴 題已悉前題是在果豈可只憑其曾祖進發名字而遽頉三十餘年載在鐵業之役乎 爲其宗族者雖謂之羞恥渡淮爲枳 今已年久如此無益之訴不必更煩向事 ○別二洞洞任等手本 該洞橋梁雜役闕軍名下罰牟一斗式徵出事題 居是洞也頉避均赴之役者萬萬痛駭勞送宜有称寃 賞罰不可無施杜該弊之道 豈可置之等常乎 自該同一一抄出收捧是矣 罰牟段設更爲從略抄出以爲均平心分排之地事

잠깐 비가 오고 곧 맑아졌다. ○사리역 급주 김봉대가 위토를 다 팔아먹고 사역하지 않은 일의 장리 문장의 제김에 “들으니 심히 경악스럽다. 해당 위토를 몰래 사고 받은 자는 모두 마땅한 법률로 엄치 조사하고 추환할 차로 奉 큰놈은 즉 잡아 올릴 일이다.” 라 하였다. ○순영 번마의 일꾼은 하종손으로 기송하였다. ○청통역 위토를 몰래 판 것을 돌라 받을 일로 영천군에서 지난 영의 관등이 왔다. 그러므로 해당 역 감관 하봉언을 동정을 탐사할 차 보냈다. ○동해와 인로 수포차사 양놈이 관청에 왔으니 잘못을 거두어 뜰에서 장을 치고 칼을 채워 가두어 놓았다. ○안동 유래춘이 그 종인 유복삼을 탈급해줄 일로 정소하였는데, 제김에 말하길 “이미 다 이전 제김에 이가 있다. 과연 어찌 단지 그 증조가 이름을 진발한 것을 빙고하여 그에 의거해 삼십 여년동안 지었던 철업의 역을 면해줄 수 있겠는가? 그 동족된 자가 비록 그를 수치라 하여도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것이다. 지금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와 같은 무익한 소송으로 다시 번접하게 할 일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별이동 동임 등의 수본에 해당 동 교량 잡역 의 군명을 빠트렸으니 벌로 일두 씩 징출해달라는 일에 제김하길 “이 동에 거하면서 균부의 역을 피한것은 만만통해하니 마땅히 원통하다 칭할만 하니 상벌이 해당 폐해를 막는 도를 막지 않을 수 없다. 어째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해당 동으로부터 일일이 초출하여 거둘어 들임이 옳다. 罰牟段設更爲從略 간략하게 초출하여 균평하게 분배할 일이다.

1835-05-21

晴 舊水使入本邑故往見 ○水使坐馬以沙里貴德馬定送其便付家書三天 ○東海仁路兩差使枷囚中一日內備納三十餘兩鞭箠之效可謂(?)連也 ○邑內韓生員來見醫術頗詳云 ○絧巾一立浮來品極精緻価給一兩三戔

맑았다. 구 수사가 본읍이 들어왔기 때문에 가서 뵈었다. ○수사 좌마로 사리 귀덕의 말을 정하여 보냈고, 그 편에 가서를 세 번째로 보냈다. ○동해와 인로 양 차사를 칼을 씌워 가두어 놓은 중에 하루 안에 삼십여냥을 비납하니 채찍질한 표가가 가히 ?련하다 할만하다. ○읍내 한생원이 와서 보았다. 의술이 자못 상세하다고 한다. ○동건 1립이 우연히 왔는데 품질이 지극히 정치하다. 값으로 1냥 3전을 주었다.

1835-05-22

晴 從父主書來日前安稅 且聞京信之安慰喜 ○岳丈徃富貴寺申后還次 ○都兵房河吉運貿黃布次送永川塲 ○傳令朴興業出役外誅朮之弊不一其端杖河五十度枷囚 ○河吉運貿黃布十三疋生布一疋合価七十兩七戔 較平年太高云 ○淸通驛位土豫賣事報營矣 自巡營以無価還退之意嚴關永川郡 自該郡移文來到 而今年耕作姑付之於盜賣人處 使之移秋同盜賣畓每石落錢七兩式徵出於盜賣作者處出給該驛事甚稳便云云 故回移位土之私相賣買卽犯法外雖欲循其私情枉法容貸既是報營關決之事 自弊道今不可澖狹於其間一依營關據法還退俾杜後(?)恐合事宜云云 安(垂?)書來

맑았다. 종조부님의 서신이 왔다. 일전에 편안하다고 하고 또한 서울에서 온 편지를 들으니 편안하고 위로되며 기쁘다. ○악어르신이 부귀사에 가서 신시 후에 돌아왔다. ○도병방 하길운을 황포를 살차 영천장에 보냈다. ○사령 박흥업이 출역 외에 誅朮의 폐가 그 단서가 하나가 아니었다. 하에게 곤장 50대를 치고 칼을 씌워 가두었다. ○하길운이 황포 13필, 생포 1필을 값으로 70냥 7전을 추고 사왔다. 평년과 비교하여 콩이 비싸다고 했다. ○청통역 위토를 미리 판 일을 영게 보고하였다. 순영으로부터 값 없이 환퇴할 뜻을 엄히 영천군에 관하였다고 해당 읍으로부터 이문이 도래하였다. 금년 병작은 우선 도매인에게 붙이고 그로 하여금 추동의 도매한 답의 매 석락마다 돈 7냥씩을 옮겨 도매작자에게 내보내어 해당 역에게 출급할 일이 심히 편하했다고 운운하였다. 그러므로 이문을 다시 보내길 위토의 사사로이 서로 사고 판 것은 법외를 범한 것이니 비록 그 사사로운 정을 따라 법을 굽혀 용서하고자 하여도 이미 이는 영에 보고되어 판결이 난 일이니 폐해로부터 이제 그 사이에 하나라도 영의 권문에 의거하여 환퇴하여 막게 한 후에 (?)恐合 일에 澖狹할 수 없음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安(垂?)書來

1835-05-23

晴 ○從父主前上書送莞席一立甘酱一斗陳酱一小(?)其便付家書四天 유수기一(?)以筆筒樣造來価六戔而重則六兩五戔

맑았다. ○종조부 전상서에 완석 1립과 감장 1두, 진장 1소?을 보내고 그 편에 가서를 네 번째 보냈다. 유슈기 1좌를 필통으 모양으로 만들어 보냈다. 값은 6전이고 무거운 것은 6냥 5전이다.

1835-05-24

晴 出往前坪周看位畓申飭洑役 而田野龜坼目下甚遑急 ○本邑祈雨祭關文來當日設行云 ○牟還申飭關文來 ○淸通都長不遵官令罪發差捉來 ○巡幕上京馬回 見十五出家書 ○眞席十一立価十一兩五戔帖下官廳

맑았다. 전평에 나가 위답을 두루 살펴보고 보역을 신칙하였으나 전야의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니 목하 심히 황급해 보였다. ○본읍 기우제 관문이 왔다. 당일 설행한다고 한다. ○모환을 신칙하는 관문이 왔다. ○청통도장이 관령을 준수하지 않은 죄로 뽑혀 잡혀왔다. ○순막상경마가 돌아왔다. 15일 나온 가서를 보았다. ○진석 11립을 값 11냥 5전을 치루고 관청에 첩하하였다.

1835-05-25

晴晩微雨 田野望霓之中頓覺神精●豁 而猶來浥塵旋卽杲杲甚渴悶 ○靑松印信阪造自今十五始用關文來 ○淸通監官處以位土豫買漢裁名移秧者抄報事傳令

맑고 늦게 조금 비가 내렸다. 전야의 바람이 무지개 가운데 갑자기 깨달아 정신이 활연해졌다. 그러나 오히려 비가 너무 조금 와서 곧 밝아졌으니 심이 갈증나고 번민스럽다. ○청송인신의 판조는 지금 15일부터 쓰기 시작하라는 관문이 왔다. ○청통감관의 처소에 위토를 예매한 놈의 이름을 마름질하여 이앙한 자를 뽑아낼 것을 보고할 일로 전령하였다.

1835-05-26

自朝驟雨浥塵午後晴 ○阿火驛民金順三訴渠子大哲誤入爲僧今年爲十五歲 而布役之侵極爲疾痛事 題詳査年歲依例頉給毋亟呼寃之弊事

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렸다. 조금 내려 오시 후에 개었다. ○아화역민 김순삼이 자신의 아들 대철이 잘못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금년 15세가 되어 포역의 침횡이 지극하여 원통하게 된 일로 소송하였는데, 제김에 “나이를 상세히 조사하여 예에 의거하여 탈급하여 지극한 원통한 폐가 없도록 하라.” 고 하였다.

1835-05-27

晴 ○從父主書來簡紙二百幅周紙十軸貿來価爲五兩五戔七分 ○淸通都長文狀位畓豫買作者五六人耕先移秧云 題成冊捧上是在果營關邑飭之下有何頑惡之漢不待處分耕先移種殆差自己之物乎 滿滿痛痴<此>等無嚴之民當有別敢懲治之道 而事仍以此由文移永川 ○往訪權寶城家申後還

맑았다. ○종조부님 편지가 왔다. 간지 200폭, 주지 10두루마리를 사왔다. 값은 5냥 5전 7푼이었다. ○통청도장문장에 위탑을 미리 사서 지은 자들 오육인이 먼저 이앙을 하였다하고 하였다. 제김에 “성책하여 봉상하거니와 영의 관문과 읍의 신칙 아래 어떤 나쁜놈이 있어 처분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씨를 이앙하여 자기의 물건을 위태롭고 어급하게 하는가? 만만통치한 이들 무엄한 백성들은 마땅히 별도의 징치의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며, 일은 이런 연유로 인하여 영천에 이문하라.” 하였다. ○권보성의 집에 방문하여 신시 후에 돌아왔다.

1835-05-28

晴 ○本官留宋雅來訪 ○眞席一立貿入価一兩二戔 ○以瘙癢疾鹽湯洗浴

맑았다. ○본관에 머무르던 송 어르신이 내방하였다. ○진석 1립을 사들인 값이 1냥 2전이다. ○ 피부의 가려움병 때문에 소금탕에 세욕하였다.

1835-05-29

自曉大霈 有連注之意田野之喜不啻躍 而本官三次雩祀虐滅所感而然耶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다. 연달아 비가 내리니 전야의 기쁨이 뛰어다닐 뿐만이 아니였다. 본관이 세차례 우사를 지내고 학정을 없앴으니 (하늘이) 감응하여 그런 것이다!

1835-05-30

晴 ○從父主前上書付家書五天 ○散文差員姜奉事者本以安東人回還其家依路文●卜馬各一給送其作免之端可發一笑 ○兵營軍官下來不卽告課自外給馬送之 故兵房吏四名決杖二十五度午後往本官晩還 ○安奇以籠三丁五馱借去不還事移文

맑았다. ○종조부 전장서에 가서를 다섯 번째로 붙였다. ○산문차원 강봉사놈은 본래 안동인으로 집에 돌아가면서 노문에 의하여 복마 각 일급을 보냈는데, 그 면제의 단서를 만들었으니 가히 웃을만 하다. ○병영 군관이 내려와서 즉시 고과하지 않았는데, 외급마부터 보냈다. 그러므로 병방리 네명을 장 25대를 치기로 결정하고 오시 후에 본관에 가서 늦게 돌아왔다. ○안기역에 바구니 3정 5태를 가져가 돌아오지 않은 일로 이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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