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료

화산 광덕사 사리각기명

同黎 2012. 12. 10. 21:28

화산 광덕사 사리각기명 (華山光德寺舍利閣記銘)

 

우러러 살피건대, 승천체도 열문영무전하(承天體道 列文英武殿下:세조의 존호)께서 천명을 받아 천부(天符 임금의 위에 오름)를 잡아 국운을 열으시니 나라가 편안하고 풍우(風雨)가 순한지라 이것은 항상 청아하고 화기(和氣)가 있으시며 공손하고 말이 적으시면서 도를 생각하시니 지극히 거룩한 덕()이 큰 상서로 웅한 것이다.

금상(세조) 7(辛巳 1461) 513(壬子)에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사리(舍利 부처유골)가 천원(天原) 광덕사에서 분신(分身)하였다. 상서로운 빛과 기운이 하늘에 타올라 이상한 향기가 울컥 일어나서 산골짜기에 가득히 퍼졌다. 효령대군이 절에 있다가 이십 오매()를 진상하니 상감께서 자성왕비(慈聖王妃)와 더불어 내전(內殿)에서 예하고 또 분신을 함원전(含元殿)에 봉안하였다.

, 분신하고 17일에 상감께서 친히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지으시고 관현(管絃)에 올려 왕비와 함께 함원전에 공양하셨다. 또 분신하였으니 전후에 얻은 분신 사리(分身舍利)가 총 일백 이과(), 광덕사의 설법(說法) 도중에 사람이 각자 받아간 것만도 그 얼마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상감께서 이 경사를 크게 기뻐하사 죄수(罪囚)를 놓아주시고, 대서원(大誓願)을 발하였다. 친히 능엄경(楞嚴經)을 번역하고 종친과 육조(六曹)대성(臺省: 尙書省)과 제장(諸將)을 거느리고 조종(祖宗)과 모든 백성을 위하여 여래상(如來像) 한 구()를 만들었다.

, 중궁과 세자를 위하여 미타상(아미타래여상) 한 구를 만드시고, 또 관음(觀音 관세음보살)과 지장(地藏 지장보살) 두 보살이 서로 마주앉은 이적(異蹟)을 꿈꾸시고 두 존상을 만들었다. 조성을 마치자 각각 그 속에 사리를 봉안하고 선종(禪宗) 광덕사의 사리각(舍利閣)에 타령(妥靈 신주를 편케 모심)하였다.

상감께서 왕비와 함께 보좌(宝座)에 예배하신 다음 향()을 사르고 공양하시면서 작은 종()을 만들도록 명하사 육시(六時)를 깨우쳐 유체(幽滯)한 것을 인도 하셨다. 이 연기(緣起)를 새겨서 무궁토록 밝게 보이게 하신 것이다.

()에 이르기를 우리 성신(聖神)께서 일찍이 부처 기전(記傳)을 받으사, 손에 금륜(金輪) 쥐시고 하늘이여 다스림 내리셨네. 엄공(嚴恭) 인외(寅畏)하사 잠깐 쉬실 겨를도 없으시니, 신인(神人)이 협화(協和)하여 영() 한 줌 나란히 이르렀네. 우러러 생각건대 큰 깨닮이 연류(緣類)를 껴드사, 사리가 분신하니 드물게 나타난 일이었네.

귀와 눈을 놀라게 하고 하늘과 땅을 비추어 영서(靈瑞)가 진동하니, 견줄만한 것 만고에 없네. 천심이 즐거우사 크게 맹서한 정성 내시고, 상설(像設)과 수용(晬容)과 경문(經文)의 뜻을 모두 강하였네. 아 열조(我列朝)에 복 내리시도 생령(生靈)에게 미치게 하시고, 종도(宗圖) 길이 굳으사 억만년을 가도록 하시고 오직 불도(佛道)가 넓게 두루 유체(幽滯)함을 다하시니, 오직 성상이 부처 본받아 대비(大悲) 광제(曠濟)하셨네. 쇠를 다루어 종을 만들어 영성일체(靈性一切)를 열어 깨우치사, 괴로움 덜고 어둠 깨쳐 미래세(未來世)를 궁구(窮究) 하셨네.

세조(世祖) 9(1463) 10월 일

< 가선대부 이조참판 한계희 왕명을 받들어 지음>

<선교랑 이조좌랑 예문 봉교 겸 승문원 부교리 정란종 왕명을 받들어 씀>

 

돈영(敦榮)이 살펴 보건대 광덕사는 천안 서남 사십 리에 있는데, 화산(華山)은 그 골 진산(鎭山)이고, 이미 고려때부터 호서(湖西)에 유명하다.

세조 9(1463)에 세조께서 이 절에 거동하사 한계희(韓繼禧)에게 명하시어 그 사적을 기록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그 기문과 명이다.

이 절에 은중경(恩重經)을 정서한 책이 있는데 분명코 이것은 대군께서 손수 쓰신 것이요, 화엄경(華嚴經)과 법화경(法華經)을 함께 금은자로 쓴 것도 또한 대군께서 시주(施主)하신 것이다. 만장각(萬藏閣)에 함께 봉안했다가 각이 폐하자 옥음각(玉音閣)에 옮겼고, 이 각 또한 폐하여 지금은 봉향각(奉香閣)에 봉안해서 여러 경이 다 완전하다 하며, 이 절의 주지 치진(主持致珍)이가 나에게 상세하게 전하였다.

무릇 우리 종인이 뒤에 이 절에 가는 이는 선조가 남기신 필적을 받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선대의 문집중에서 비로소 광흥(廣興)이라는 절 이름을 알았는데 얼마 후에 또 안동(安東) 땅에 광흥사가 있음을 알았다. 이즈음에 이 광덕사의 기명을 얻으니 아마 광흥은 이 광덕의 잘못인가! 모름지기 광흥에 관한 자료를 다시 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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