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료

종사일기 7월

同黎 2013. 3. 3. 04:02

1835-07-01 巡營便見去月十九日出家書十天答從父主前上書各驛馬看品義城義興兩伜(?)載書賀禮進參本官病不參点考

1835-07-01 맑았다. 순영편에 지난달 19일 나온 가서 십천의 답장을 보았다. 종부님께 편지를 올렸다. 각역의 말을 간품하였다. 하례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병으로 불참하였다. 의성, 의흥 양 수령에게 허락하는 편지를 보냈다.

 

1835-07-02 晴晩洒雨義興伜答來

1835-07-02 맑았다 늦게 소나기가 왔다. 의흥 수령의 답장이 왔다.

 

1835-07-03 會計

1835-07-03 흐렸다. 회계하였다.

 

1835-07-04 喪餘隔宵孺慕之感益倍花西權雅致和來訪數日間欲作科行而盤續狼具懇貸三十兩錢故許施

1835-07-04 비가왔다. 상을 단하였다. 餘隔宵孺 그리는 마음이 더욱 배가 되어 극하다. 화서 권치화 어르신이 내방하여 수일간 과거보러 가려 하니 盤續狼具으로 삼십냥전을 빌려주길 간절히 청하니 허락하였다.

 

1835-07-05 從父主下答來 見去月卄四日出家書三長花西權友科行便付家書六地小長衣紬汗彩柏子五升扶擔機○●生凉意故童便始服

1835-07-05 맑았다. 종부님의 답서가 와서 지난달 24일 나온 가서 3장을 봤다. 화서 권우의 과행편에 가서 6지리와 소장의, 명주, 한채, 잣 오승을 지워 보냈다. ○●찬 기운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 오줌을 복용하였다.

 

1835-07-06 淸風服童便年還分給還倉留來三十三石新年五十七石分給

1835-07-06 맑고 바람 불었다. 아이 오줌을 복용하였다. 연분 환곡을 분급하였다. 환창에 남겨 내려왔던 33석과 신년의 57석을 분급하였다.

 

1835-07-07 晴晩雨從父主前上書神光替把事又爲報狀營便付家書七地典本官作川渙之遊晩冒雨還義城宰書來卽答安寄付書 服童便

1835-07-07 맑았다가 늦게 비가왔다. 종부님 앞으로 편지를 올렸다. 신광참 체파의 일을 또 문장으로 보고했다. 영편에 가서 칠지를 보냈다. 본관이 川渙之遊를 하는데 참여하였다가 늦게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의성 수령의 편지가 와서 즉답하고 안기에 편지를 부쳤다. 아이 오줌을 복용하였다.

 

1835-07-08 淸服童便安丞丈自巡營還路逶迤來訪萍會其覺欣慰仍爲留宿稳晤(安寄距此一百八十里也)

1835-07-08 맑았다. 아이 오줌을 복용했다. 안승 어르신이 순영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길이 구불구불 돌아 내방하였다. 부평초같이 만나니?? 흔쾌히 위로하고 인하여 편안히 유숙하게 하였다. (안기역은 여기서부터 180리 떨어져있다.)

 

1835-07-09 淸凉服童便安丞丈作別岳丈聊疎暢同行從父主下答來刀(?)三次來價四戔大蛤三升價爲六分云 鳖九個給價二兩四戔爲膏飮

1835-07-09 맑고 시원했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안승 어르신과 작벌하였다. 장인 어른이 애로라지 따라 동행하였다. 종부님 답사거 왔다. 刀攫이 세차례 왔는데, 값은 4전이었고, 대합 3되는 값이 6푼이라고 하였다. 자라 아홉 개는 값으로 24전을 주었고 기름을 마셨다.

 

1835-07-10 陰眠雨服童便巡營年作五十石價錢六十一兩駄送從父主前上書送刀纓價四戔付書安郵巡營閔別使赴燕人馬實預並四匹及掌試都使延逢馬二匹把定故傳令外驛

1835-07-10 흐리고 늦게 비가 왔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순영에 한해 지은 50석의 값 돈 61냥을 실어 보냈다. 종부님 전상서에 도영가 4전을 보냈다. () 역참에 편지를 보냈다. 순영민별사부연인마는 실로 예비해야 하니 아울러 4필과 장시도사 연봉마 2필을 파정해야 하기 때문에 외역에 전령하였다.

 

1835-07-11 晴服童便淸通驛馬一匹立籍價爲六十兩二戔富平驛摘奸去河吏昌範還現該驛今番雨水位畓覆汰爲一百八十三斗地只外他弊端至於難支之境去愁悶義城宰書來

1835-07-11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청통역 말 1필을 입적하는 값이 612전이 되었다. 부평역을 적간하러 갔던 서리 하창범이 돌아왔다. 해당 역의 금번 우수위답에서 빼먹은 것이 183두라는 것이 드러났으면 단지 그 외의 다른 폐단은 헤아리기 어려운 지경이니 수치스럽고 민망하다. 의성 수령의 편지가 왔다. 遞把

 

1835-07-12 晴服童便付家書八地駄送錢二百兩本伜自巡營還又作義典覆檢行從父主書來奴孫自安郵回承岳丈書知穏稅慰幸神光替把事報狀 題各驛替把旣有原定典例豈可以一時權宜覆剏新乎依報辭往復松羅驛永久施行事以此移文松蘿

1835-07-12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가서 팔지를 보내고 돈 200냥을 실어 보냈다. 본읍 수령이 순영으로부터 놀아왔다. 또 의전을 만들어 복검을 행하였다. 종부님의 편지가 왔다. 노비 이 안우로부터 돌아와 장인어른의 편지를 올렸다. 은세를 알게 되었으니 위로가 되고 다행이다. 신광참의 체파 일의 보장에 제하길 각역의 제파하는 일은 이미 원래 정혜진 전례가 있는데 어찌 일시의 권도로 뒤집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겠는가? 보고한 말에 의거하여 송라역에 다시 가서 영구히 시행할 일이다.” 라고 하였고 이로써 송라역에 이문하였다.

 

1835-07-13 晴服童便赴燕回馬夫覆貴來見初五出四長家書統盤二立給價九戔

1835-07-13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부연에서 돌아온 마부 복귀가 와서 초5일 나온 네 장의 가서를 보았다. 통반 2립의 값으로 9전을 지급했다.

 

1835-07-14 晴服童便見安郵書食盤十立造出每立工價三戔式漆價每立二戔式給

1835-07-14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안우에서 온 편지를 보았다. 식반 10립을 만들었는데 매 립에 공가 3전씩을 칠가 2전씩을 지급했다.

 

1835-07-15 晴服童便患感不得進參賀禮明日卽吾初度而下吏輩(?)自來不設杯酌豫設二床作廳齋會而進此亦已例云 (?)熟不可還退故典潤從聯床而岳丈適在安郵未還尤(?)無聊退床後諸吏處錢十兩行下義城伜來訪本伜又自義興還官聞義伜之來此亦爲來會半夜隱話

1835-07-15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내일은 즉 내가 처음 하였다. 하리배들이 듣고 자고이래로 배작을 설하지 않고 2상을 미리 설치하여 작청 재회하고 여기에 나가는 것이 또한 이미 있던 예라고 하였다. 환퇴시킬수 없어 典潤從聯床 하고 장인어른은 안우에 가 계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하니 애오라지 상을 물린 후 여러 하리의 처에 돈 10냥을 내렸다. 의성 수령이 내방하였다. 본읍 수령 도한 의흥으로부터 관에 돌아오다가 의성 수령이 왔다는 것을 듣고 또한 왔다. 보여 밤의 절반동안 은밀히 이야기했다.

 

1835-07-16 晴服童便本官義伜丈仍留意晷會話日暮還別使赴燕人馬治送(?)豫差四匹色吏河慶綠付家書九地食盤二立大中藿二丹引儀宕巾一網巾一祭需脯二貼黃(?)七獲大蛤三刀肉(?)百五十柄眞席三立巡營便見去月卄八日出家書二地答是夜吏房設大卓而進可謂大勞典潤從聯床飽喫趙察訪秉璿許裁答送燒酒三鐥脯一貼

1835-07-16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일찍 본관과 의성 수령 어른이 머무를 뜻에 따라서 해가 있을 때 모여 종일 이야기하다가 저물 때 돌아갔다. 별사부연인마 치송에 미리 4필을 차정하고, 색리 하경록에게 가서 구지와 식반 2, 대중 미역 2, 인의의 탕건 1, 망건 1개를 부쳤다. 제수는 포 2, 황포 7, 대합 33h, 육포 150, 진석 3자리이다. 순영편에 지난달 28일 나온 가서 2지의 답을 보았다. 이날 밤 이방이 큰 탁자를 설치하였으니 큰 수고라고 할 수 있다. 전윤 종일 연상으로 포식하였다. 찰방 조병래가 허재에 대한 답으로 소주 3선과 포 1첩을 보내왔다.

 

1835-07-17 晴服童便早往本官別義伜丈兵營審藥朴敎臣遇去依草料給馬從父主前上書兵工禮三幕裁書各送進席一立式

1835-07-17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일찍 보관이 의성 수려 어르신과 작별했다. 병영 심약 박교신을 만나 초료장에 의가하여 말을 지급했다. 종부님 전상서에 병, , 예 삼막의 다짐글과 각기 진석 1자리씩을 보냈다.

 

1835-07-18 晴服童便大殿誕日賀禮而還

1835-07-18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대전 탄일를 타례하고 돌아왔다.

 

1835-07-19 晴服童便巡營便付家書十地牛谷眞使便付安郵書

1835-07-19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순영편에 가서 십지를 부쳤다. 우곡진사 편에 안우의 편지를 부쳤다.

 

1835-07-20 晴服童便往本官登環璧亭從父主書來巡期先自左道八月初七日擇定路文謄來右道監試差俻官劃來而巧值巡部之時凡百料理自多愁亂牛谷席子六立貿來而品劣左道玄風試所割封官河陽伜爲之云簡紙二百幅價三兩六戔六分周紙十軸價一兩七戔合五兩三戔八分送巡營

1835-07-20 맑았다. 아이 오줌을 마셨다. 본관에 가서 환벽정에 올랐다. 종부님 편지가 왔다. 순기는 좌도부터 8월 초7로 택정되었다는 노문이 베껴 왔다. 우도 감시 차비관으로 획래되었는데 巧值巡部之時 무릇 백가지 요리가 많아 혼란스러웠다. 우곡 석자 6립을 사왔는데 품질이 조약하다. 좌도 현풍 시도 할봉관은 하양 수령이 되었다고 한다. 간지 200폭 값으로 366, 주지 10폭 값으로 17전 합 538푼을 순영으로 보냈다.

 

1835-07-21 雨服童便各驛人馬留養以卄五日來待之意傳令

1835-07-21 비가 왔다. 아이 오줌을 복용했다. 각역의 인무가 두어 기르는 것을 25일 가서 기다리는 뜻으로 전령하였다.

 

1835-07-22

1835-07-22

 

1835-07-23 晴 服童便 岳丈自安郵穩還 慶州宗人?發廣魚全卜貿來 次付託給送錢六兩 舘下河銀伊爲名漢 僞造官牌子收斂価布於民間云 故定差使搜捕

1835-07-23 맑았다. 오줌을 복용했다. 악 어르신이 안우로부터 편안히 돌아왔다. 경주 종인 ? 광어, 전복을 거래해왔다. 그 차에 부탁하여 전 6냥을 보냈다. 관하의 하은이란 놈이 관패를 위조하여 민간에서 가포를 수렴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차사를 정하여 찾아 잡아오게 했다.

 

1835-07-24 晴 眼童便 往別本倅 科行上諾 常賑牟七十石耗七石以東萊訓導條磨勘時 懸錄之意 營關來 山驛馬夫回 見初八日出家書三四地答 民英二尾魚夘二部下來 從父主下書來 見十四日出家書五地答

1835-07-24 맑았다. 오줌을 복용했다. 수령을 전별하고 과거 시행을 상이 허락했다. 상진의 70석과 [7]을 동래로 인도해가는 건을 마감할 때 장부에 적으라는 명령이 영관에서 왔다. 산역의 마부가 돌아와 초 8일 나온 가서 3~4장을 보았고 답하였다. 民英 2, 魚夘 2부가 내려왔다. 아버님 편지가 왔다. 14일 나온 가서 5장을 보고 답하였다.

 

1835-07-25 晴 服童便 本邑兼官何陽爲之云 工幙趙主簿答來 周紙三軸付來 僞造傳令漢河銀伊捉來拁囚 牛谷淸通馬五匹先爲入來留養 裁書義典及安郵

1835-07-25 맑았다. 오줌을 복용했다. 공막 조주의 부답이 왔다. 본읍 겸관 하양이 한다고 한다. 주지 3축이 따라왔다. 위조를 전령한 놈 하은이가 잡혀 와 가두었다. 우곡과 청통의 말 5필이 먼저 들어와서 두고 길렀다. 재서한 의전이 안우에 다다랐다.

 

1835-07-26 晴晩雨 服童便 仁庇淡金馬入來留養 本驛大馬毛良大馬 並改立試才 俱是極品 省峴馬匹借用於巡部時之意移文來 故回移許之

1835-07-26 맑았고 저물녘 비가 왔다. 오줌을 복용했다. 인비의 담금말이 들어와서 두고 길렀다. 본역대마와 모량대마가 모두 개립되어 시험에 쓰였는데 모두 극상품이었다. 성현 마필을 순부 때에 차용할 뜻의 이문이 왔다. 그러므로 회이하고 허락하였다.

 

1835-07-27 晴 服童便 本驛大馬一匹 定価三百九十兩 毛良大馬一匹 定価三百五十兩 俱爲立籍 而本驛馬雜賣人 請爲六十七兩七戔 毛良馬人請之賣爲四十八兩七戔 並依營節目施行 入居木卜馬五匹 駈從回 各把定次 定色吏出送外驛 多大僉使下來 延逢馬三匹 定色吏送義典 松羅驛馬匹借用於巡部時移文來 觀勢爲之~意答移 阿火驛笠匠處造笠次 統凉一立具裹布送之 營便見十九日出家書七地答 甲峴權雅特吾參試欲赴右道試所云 故排斥之 多大僉使入來 黃布二疋十兩一戔貿來 送梅幙金德 作生苧一疋四兩五戔 眞拥所託云 而並送從父主前 本驛宗介舊病馬価定三十五兩斥賣 富平監官河羲囿差出 阿火淸通馬留養

1835-07-27 맑았다. 오줌을 복용했다. 본역대마 1필의 정가는 390, 모량대마 1필의 정가는 350냥이고 모두 입적했는데 본역 말의 잡매인이 청하여 677전으로 해주었다. 모량마인이 청하여 487전에 팔았는데 모두 관영의 절목에 의하여 시행하였다. 거목 복마 5필이 들어오고 구종이 돌아와 각각 파정할 차 색리를 정하여 외역에 내보냈다. 다대첨사가 내려와 말 3필을 맞이하였고 색리를 정하여 의전을 보냈다. 송라역 마필을 순부 때 차용하겠다는 이문이 왔고 형세를 보고 하겠다고 이문에 답하였다. 아화역 삿갓 장인의 처소에서 삿갓을 만들 차 통량 1립을 베로 싸서 보냈다. 관영 편에 19일 나온 가서 7장을 보고 답하였다. 갑현 권아가 특별히 우리 참시관으로 우도 시소에 이르고자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배척하였다. 다대첨사가 들어왔다. 황포 2101전짜리를 거래해 왔고 매막과 금덕에 보냈다. 생저 145전짜리를 만들었으니 진옹이 부탁한 것인데 아울러 아버님 앞에도 보내었다. 본역 종개가 병들었던 말의 가격을 35냥으로 정하여 헐값에 팔았다. 부평감관 하의유가 차출되었다. 아화와 청통의 말을 두고 길렀다.

 

1835-07-28 晴 服童便 甲峴權雅家奴子回 見卄日出家書六地答 試所行路文先爲發送

1835-07-28 맑았다. 오줌을 복용했다. 갑현 권아의 가노가 돌아와 20일 나온 가서 6장을 보고 답하였다. 시소 행 노문을 먼저 발송하였다.

 

1835-07-29 晴晩雨 服童便 午後發試所行四十里 河陽止宿 主倅趙星鎭出來 穩話夕飯后回謝

1835-07-29 맑았고 저물녘 비가 왔다. 오줌을 복용했다. 오후에 시소행을 떠나 40리를 갔고 하양에서 묵었다. 수령 조성진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식사 후 사례를 표하였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 조선후기사 전공

 박사과정 박범, 석사과장 박세연, 이가영 번역, 박범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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