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仕日記
1835-03-02 崇禎紀元四 乙未 卽我聖上臨御二載也 是歲季春初二日 政[亞銓政事]猥荷恩命長水道督郵以首望除拜 副望吳別提命集 末望李引儀悌寬 前職卽西氷庫別提也 闔門感祝榮幸無譬 而風樹之感 難禁今日之涙矣 略辦酒肴 奉邀諸●意晷晤談
1835-03-02 숭정 기원후 4번째 을미년은 우리 성상께서 왕위에 오른지 2년이다. 올해 봄 초 2일 정사에서 두렵게 은혜를 받아 장수역 찰방에 수망으로 제수되었다. 부망은 별제 오명집, 말망은 인의 이제관이었다. 전직은 서빙고별제이다. 온 가족이 감축하여 영화로운 영광이 비할 바가 없으나 풍수지탄으로 금일의 눈물을 금하기 어렵다. 술과 안주를 간략하게 마련하고 ●에 웃어른을 모셔서 밤낮으로 담화를 나누었다.
1835-03-03 晴 曉詣闕肅謝歷進時 原任大臣兩銓堂郎 東銓趙判書[寅永] 亞銓李參判[奎鉉] 三銓張參議[敎根] 西銓金判書[在昌]
1835-03-03 맑았다. 새벽에 궐에 나아가 사은숙배를 하고 두루 나아갈 때 원임대신과 이조와 병조의 당상과 낭청. 이조판서 조인영, 이조참판 이규현, 이조참의 장교근, 병조판서 김재창.
1835-03-21 晴 新迎人馬入來[吏房河守天 通引金壽 隨陪河昌範極 工房河斗七 其餘下人不能盡記] 支裝物目[錢三十兩 大口魚二尾 廣魚一尾 全卜一貼 海蔘一貼 脯二貼 甘藿二丹 淸二升 醬一斗 燒酒三鐥 柏子一斗 眞末二斗 眞油二升] 仍分如干物種 播給隣里親戚 行期以因山後離發爲定
1835-03-21 맑았다. 새로 맞이할 사람과 말이 들어왔다.(이방 하수천, 통인 김수, 수배 하창범극, 공방 하두칠이고 나머지 하인은 모두 기록할 수 없다) 지장물목(돈 30냥, 대구어 2미, 광어 1미, 전복 1첩, 해삼 1첩, 포 2첩, 미역 2승, 꿀 2승, 장 1두, 소주 3선, 잣 1두, 밀가루? 2두, 참기름 2승)은 얼마안되는 물종을 나누어서 동네와 친척에게 나누어주었다. 출발하는 시기는 인산을 한 이후에 떠나는 것으로 정하였다.
1835-04-17 晴 大行大王因山發靷 出南門外 參哭班而還
1835-04-17 맑았다. 대행대왕의 인산의 발인이 남문 밖을 나왔다. 곡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1835-04-19 晴 下玄宮
1835-04-19 맑았다. 현궁이 내려갔다.
1835-04-20 晴 返虞參哭班
1835-04-20 맑았다. 반우를 하고 곡반에 참석했다.
1835-04-22 朝雨晩晴 辭朝後 拜辭大小家祠堂 告別宗黨親知及諸宰而還 午後以如干食物饋新迎下人等此是俗例云 ○各處下人等行下松安沈領議政宅帶率驅從等三兩 ○松安別陪金白龍一兩 ○ 淸洞尹參判宅下人三名六戔 ○禮院庫直李長臣一兩 ○奇別軍司仁孫二戔 ○氷庫下人二名二兩 ○禮院鋪陳債五兩 ○吏曹下人等一兩四戔 ○近杖軍士五戔 ○高陽山所下人二兩 ○昭基山所下人二兩六戔[並二處] ○始興山所下人一兩 ○寺洞金判書宅下人五戔 以上合錢二十兩三戔 自家中出給 ○闕內各處都行下三十兩 雜費不足條一兩 ○大殿司謁帽債一兩 ○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大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魂殿別監等一兩 ○禮院禮木十兩書員五人等四兩 ○首吏一兩 ○使令十二名三兩兵曹馬色書吏五戔 ○馬色使令五戔 ○吏曹守令色使令四戔 ○代京主人一兩 ○以上合錢五十七兩四戔 此則並帖下邸吏
1835-04-22 아침에 비가오고 저물녁에 맑았다. 사조를 한 후에 크고 작은 집의 사당에 배사(拜辭)하고 종당(宗黨)과 친지 그리고 여러 관원들에게 고별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얼마안되는 먹을 것으로써 새로 맞이한 하인들을 먹였는데 이것은 세속의 관례라고 한다. ○ 각처의 하인 등의 행하. 송안 영의정 심00댁 대솔과 구종 등에게 3냥. ○松安의 別陪 金白龍에게 1냥 ○ 淸洞의 尹參判宅 下人 三名에게 6전 ○禮院의 庫直 李長臣에게 1냥 ○奇別軍司 仁孫에게 2전 ○氷庫下人二名二兩 ○禮院의 鋪陳債 5냥 ○吏曹下人等一兩四戔 ○近杖軍士五戔 ○高陽山所下人二兩 ○昭基山所下人二兩六戔[並二處] ○始興山所下人一兩 ○寺洞金判書宅下人五戔 以上合錢二十兩三戔 自家中出給 ○闕內各處都行下三十兩 雜費不足條一兩 ○大殿司謁帽債一兩 ○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大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魂殿別監等一兩 ○禮院禮木十兩書員五人等四兩 ○首吏一兩 ○使令十二名三兩兵曹馬色書吏五戔 ○馬色使令五戔 ○吏曹守令色使令四戔 ○代京主人一兩 ○以上合錢五十七兩四戔 此則並帖下邸吏
1835-04-23 晴 行具收拾
1835-04-23 맑았다. 行具를 수습하였다.
1835-04-24 晴 旱與岳丈金生員從弟士潤偕發鴒原之懷䑛犢之戀黯然難堪 而且翼弟內患添●見至危境 而發憂慮尤當如何 和弟來別西津船頭分手懷緖倀倀殆若風●之搖 不自定 時日行四十里 中火于三巨里 仍發行四十里 龍仁下馬碑止宿 申後五問安 驅從來現 單子物種 燒酒三鐥 大口魚一尾 出給行中 蔚山新兵使[許棨] 十五日到營 而延逢人馬依例定送云 岳丈諸節微有感候 故入夜後藿香正氣散一貼煎進
1835-04-24 맑았다. 아침에 岳 어른, 김 생원, 종제 사윤과 더불어 모두 출발했다. 형제의 회한과 송아지를 핥는 연민이 슬프고 침울하여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익제의 처 환후가 좋지 못해 위독할 지경이라고 한다. 而發憂慮尤當如何 화제가 별서진 선두에 와서 헤어지니 懷緖의 마음이 아득하여 마치 風●之搖와 같아 스스로 정하지 못하였다. 이날 40리를 가고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이나 40리를 출발하여 용인 하마비에서 지숙하였다. 신후오를 문안하니 구종이 나타났다. 단지물종에 소주 3선, 대구어 1미를 행중에서 출급하고 울산에 새 병사 허계가 15일 영에 도착했다고 하나 延逢하는 인마는 예대로 정송한다고 한다. 악 어른이 여러 계절에 조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밤이 된 뒤에 藿香正氣散 1첩을 달여 드렸다.
1835-04-25 晴 早發行四十里 陽智中火 仍發行四十里 排甘里止宿
1835-04-25 맑았다. 새벽에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양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내 출발하여 40리를 가고 배감리에 지숙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 조선후기사 전공
박사과정 박범, 석사과장 박세연, 이가영 번역, 박범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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