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사료

종사일기 3월~4월

同黎 2013. 3. 3. 04:00

從仕日記

 

1835-03-02 崇禎紀元四 乙未 卽我聖上臨御二載也 是歲季春初二日 政[亞銓政事]猥荷恩命長水道督郵以首望除拜 副望吳別提命集 末望李引儀悌寬 前職卽西氷庫別提也 闔門感祝榮幸無譬 而風樹之感 難禁今日之涙矣 略辦酒肴 奉邀意晷晤談

1835-03-02 숭정 기원후 4번째 을미년은 우리 성상께서 왕위에 오른지 2년이다. 올해 봄 초 2일 정사에서 두렵게 은혜를 받아 장수역 찰방에 수망으로 제수되었다. 부망은 별제 오명집, 말망은 인의 이제관이었다. 전직은 서빙고별제이다. 온 가족이 감축하여 영화로운 영광이 비할 바가 없으나 풍수지탄으로 금일의 눈물을 금하기 어렵다. 술과 안주를 간략하게 마련하고 에 웃어른을 모셔서 밤낮으로 담화를 나누었다.

 

1835-03-03 晴 曉詣闕肅謝歷進時 原任大臣兩銓堂郎 東銓趙判書[寅永] 亞銓李參判[奎鉉] 三銓張參議[敎根] 西銓金判書[在昌]

1835-03-03 맑았다. 새벽에 궐에 나아가 사은숙배를 하고 두루 나아갈 때 원임대신과 이조와 병조의 당상과 낭청. 이조판서 조인영, 이조참판 이규현, 이조참의 장교근, 병조판서 김재창.

 

1835-03-21 晴 新迎人馬入來[吏房河守天 通引金壽 隨陪河昌範極 工房河斗七 其餘下人不能盡記] 支裝物目[錢三十兩 大口魚二尾 廣魚一尾 全卜一貼 海蔘一貼 脯二貼 甘藿二丹 淸二升 醬一斗 燒酒三鐥 柏子一斗 眞末二斗 眞油二升] 仍分如干物種 播給隣里親戚 行期以因山後離發爲定

1835-03-21 맑았다. 새로 맞이할 사람과 말이 들어왔다.(이방 하수천, 통인 김수, 수배 하창범극, 공방 하두칠이고 나머지 하인은 모두 기록할 수 없다) 지장물목(30, 대구어 2, 광어 1, 전복 1, 해삼 1, 2, 미역 2, 2, 1, 소주 3, 1, 밀가루? 2, 참기름 2)은 얼마안되는 물종을 나누어서 동네와 친척에게 나누어주었다. 출발하는 시기는 인산을 한 이후에 떠나는 것으로 정하였다.

 

1835-04-17 晴 大行大王因山發靷 出南門外 參哭班而還

1835-04-17 맑았다. 대행대왕의 인산의 발인이 남문 밖을 나왔다. 곡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1835-04-19 晴 下玄宮

1835-04-19 맑았다. 현궁이 내려갔다.

 

1835-04-20 晴 返虞參哭班

1835-04-20 맑았다. 반우를 하고 곡반에 참석했다.

 

1835-04-22 朝雨晩晴 辭朝後 拜辭大小家祠堂 告別宗黨親知及諸宰而還 午後以如干食物饋新迎下人等此是俗例云 各處下人等行下松安沈領議政宅帶率驅從等三兩 松安別陪金白龍一兩 淸洞尹參判宅下人三名六戔 禮院庫直李長臣一兩 奇別軍司仁孫二戔 氷庫下人二名二兩 禮院鋪陳債五兩 吏曹下人等一兩四戔 近杖軍士五戔 高陽山所下人二兩 昭基山所下人二兩六戔[並二處] 始興山所下人一兩 寺洞金判書宅下人五戔 以上合錢二十兩三戔 自家中出給 闕內各處都行下三十兩 雜費不足條一兩 大殿司謁帽債一兩 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大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魂殿別監等一兩 禮院禮木十兩書員五人等四兩 首吏一兩 使令十二名三兩兵曹馬色書吏五戔 馬色使令五戔 吏曹守令色使令四戔 代京主人一兩 以上合錢五十七兩四戔 此則並帖下邸吏

1835-04-22 아침에 비가오고 저물녁에 맑았다. 사조를 한 후에 크고 작은 집의 사당에 배사(拜辭)하고 종당(宗黨)과 친지 그리고 여러 관원들에게 고별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얼마안되는 먹을 것으로써 새로 맞이한 하인들을 먹였는데 이것은 세속의 관례라고 한다. 각처의 하인 등의 행하. 송안 영의정 심00댁 대솔과 구종 등에게 3. 松安別陪 金白龍에게 1淸洞尹參判宅 下人 三名에게 6禮院庫直 李長臣에게 1奇別軍司 仁孫에게 2氷庫下人二名二兩 禮院鋪陳債 5吏曹下人等一兩四戔 近杖軍士五戔 高陽山所下人二兩 昭基山所下人二兩六戔[並二處] 始興山所下人一兩 寺洞金判書宅下人五戔 以上合錢二十兩三戔 自家中出給 闕內各處都行下三十兩 雜費不足條一兩 大殿司謁帽債一兩 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大王大妣殿司謁帽債一兩 魂殿別監等一兩 禮院禮木十兩書員五人等四兩 首吏一兩 使令十二名三兩兵曹馬色書吏五戔 馬色使令五戔 吏曹守令色使令四戔 代京主人一兩 以上合錢五十七兩四戔 此則並帖下邸吏

 

1835-04-23 晴 行具收拾

1835-04-23 맑았다. 行具를 수습하였다.

 

1835-04-24 晴 旱與岳丈金生員從弟士潤偕發鴒原之懷䑛犢之戀黯然難堪 而且翼弟內患添見至危境 而發憂慮尤當如何 和弟來別西津船頭分手懷緖倀倀殆若風之搖 不自定 時日行四十里 中火于三巨里 仍發行四十里 龍仁下馬碑止宿 申後五問安 驅從來現 單子物種 燒酒三鐥 大口魚一尾 出給行中 蔚山新兵使[許棨] 十五日到營 而延逢人馬依例定送云 岳丈諸節微有感候 故入夜後藿香正氣散一貼煎進

1835-04-24 맑았다. 아침에 어른, 김 생원, 종제 사윤과 더불어 모두 출발했다. 형제의 회한과 송아지를 핥는 연민이 슬프고 침울하여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익제의 처 환후가 좋지 못해 위독할 지경이라고 한다. 而發憂慮尤當如何 화제가 별서진 선두에 와서 헤어지니 懷緖의 마음이 아득하여 마치 之搖와 같아 스스로 정하지 못하였다. 이날 40리를 가고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이나 40리를 출발하여 용인 하마비에서 지숙하였다. 신후오를 문안하니 구종이 나타났다. 단지물종에 소주 3, 대구어 1미를 행중에서 출급하고 울산에 새 병사 허계가 15일 영에 도착했다고 하나 延逢하는 인마는 예대로 정송한다고 한다. 악 어른이 여러 계절에 조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 밤이 된 뒤에 藿香正氣散 1첩을 달여 드렸다.

 

1835-04-25 晴 早發行四十里 陽智中火 仍發行四十里 排甘里止宿

1835-04-25 맑았다. 새벽에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양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내 출발하여 40리를 가고 배감리에 지숙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 조선후기사 전공

                   박사과정 박범, 석사과장 박세연, 이가영 번역, 박범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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