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원폭돔 앞 도착
원폭돔이 보인다
2번째이다
앙상하게 남은 철골 구조물
히로시마 원폭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현재 사적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유네스코 안내석
원폭돔의 원래 이름은 히로시마현 물산진열관으로 1915년 히로시마의 경제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경제박람회나 전시회용으로 세운 건물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청도에 있던 독일인들이
히로시마만의 니노시마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거기 있던 제빵사에 의해 바움쿠헨이라는
동그란 빵이 처음 일본에 선보이기도 했다. 1945년 당시에는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전시회나 회사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17초 이 건물 동쪽 150미터 상공 600미터에서 퍼졌다. 인근 건물이 거의
다 초토화되었으나 이 건물은 건물의 중심 돔 부분이 살아남았다. 충격파를 받는 방향이 거의 수직 상공이
었고 창이 많아 폭풍이 지나갔으며 돔이 구리라서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직원 30명은 즉사하였다. 이후 히로시마 시민들에 의해 원폭돔이라고 불리게 되고
철거하나 마냐의 논쟁 가운데 피폭으로 인해 사망한 고등학생의 일기에 원폭돔만이 이 고통을 증언할
것이라는 구절 때문에 보존이 결정되었고 이후 보존공사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사적으로 지정되고 다시 원폭유적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보존공사 안내판
중앙돔을 중심으로 외벽과 철골이 남아있다.
과거의 모습
중앙의 돔이 잘 남아있다.
스산한 분위기
친일 성향이 강한 오바마는 이곳과 이세신궁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앙의 돔
철골만 남았다
원폭돔 건너편으로 보이는 평화공원
위령비
비교적 잘 남은 외벽
정면 외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중앙 현관
바로 아래에 강이 지나간다.
T자형 다리인 아이오이바시
현관 중앙
콘크리트벽이 어떻게 남았지
2층 천정 철근이 보인다.
현관 중앙
내부 벽돌조가 보인다.
건너 보이는 평화기념공원
날이 좋아서 잘 보인다.
뒤편은 반파되어 있다.
철조망 같아 보이는 돔의 구리 골조
안내판
한 바퀴 쭉 돌아보면서 간다.
분수의 흔적
소풍나온 애기들
뒤편에서 본 모습
뒤편은 완전 무너졌다.
곳곳에 이렇게 위령비나 시비가 서 있다.
하라 타미키라는 시인의 시비로 40세에 피폭으로 아내를 사별했으나 견디며 살아오다가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쟁에서 원폭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 실망해 자살한 인물이라고
영어
그의 시비를 세운 내력을 기록한 비석
뒤돌아 원폭돔
위령비
지금 평화공원이 들어선 사라진 마을의 주민들, 당시 출근하다 죽은
회사원과 등교하던 학생들의 학교나 회사에서 세운 위령비들이다.
돌아가는 중
한 바퀴 돌았다.
아이오이교 옛 명판석
지금의 다리는 전후 새로 세운 것으로 삼각주라는 특성에 맞게 T자형으로 지어진 독특한 다리였다.
히로시마의 대표적 문학가인 스즈키 미에키치와 그가 창간한 아동잡지 붉은 새의 기념비
안내판
표지에 나온 두 어린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아이오이바시 기념비
내력을 쓴 비석
현재의 다리
멀리 평화의 시계가 보인다.
이제 다리를 건너 평화기념공원으로 간다.
다리에서 보이는 원폭돔
모토야스가와
이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広島平和記念公園)이다.
1949년 국회에서 특별법으로 히로시마 평화기념도시 건설법을 제정해서 과거에는 도심지였으나
폭심지 근처로 폐허가 된 나카지마초를 공원으로 바꾸기로 하여 건설되었다. 공원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단게 겐조의 계획 아래 추도관과 기념비, 자료관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후에 전후 세워진 공원으로는 처음으로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단게 겐조의 건축적 업적은 말할 것 없으나 반전을 주제로 하는 공원을 세우는데,
단게 겐조는 전전 대동아건설기념 조영계획설계에서 1등을 한 전과가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꼭 한 번 찾아볼 만한 곳이기는 하다.
평화의 시계탑
원폭으로 뒤틀린 건물을 형상화하며 매일 원폭 투하시간인 8시 15분에 차임을 울린다고
히로시마 라이온스 클럽에서 기증했다고
그 내역을 적은 비석
건너편에서 보는 원폭돔
앞부분이 이렇게 신기하게 대략 남았다.
과거의 원폭돔 모습
신기하다
평화의 종
1947년 처음 히로시마에서 만들었으나 엉뚱하게도 1951년 한국전쟁으로 금속 수요가 늘어서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후 2대째 종이 만들어졌으나 이번에는 한국전쟁 와중이라 타종행사가
사라져 잊혀졌다가 나중에 재발견. 이후 3, 4대째 종은 절에서 빌려 쓰다가 반환하거나
자료관에 보존하고 지금의 종은 1996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평화의 종 안내문
모토야스바시
지구상의 핵무기가 사라지기를 이라는 표석
도쿄도 에도가와구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 모임에서 기념식수를 했다고 한다.
이제 더 안으로 들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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