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9일 히로시마3 (국립히로시마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国立広島原爆死没者追悼平和祈念館·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広島平和記念公園2)

同黎 2019. 10. 13. 22:45



모토야스바시 명판


강 건너 보이는 모습


다리 옆 휴게실로 쓰는 건물

레스트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원폭돔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나름 피폭 건물이다.

본래 1929년 세워진 다이쇼야 포복점이라는 점포건물로 세워졌으며 당시로써는 드문 3층짜리 건물로

3층에서는 시내도 다 조망이 가능했다고 한다. 원폭으로 인해 내부는 전소하였고 내부에 있던 직원

37명 중 36명은 즉사하고 지하실에 있던 1명은 기적적으로 경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이후 공원 내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로 개조를 거쳐 현재 공원의 안내소이자 휴게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본 모습


건축 당시의 모습


건물 정면


현재는 개조 공사 중이라고 하는데 끝났는지 모르겠다.


공원 안내판


원폭의 어린이 상

원폭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사키 사다코라는 어린이의 죽음을 계기로

동급생들의 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모금을 거쳐 세워졌다.

일본에서 종이학은 소원을 비는 목적으로 바쳐졌다. 이후 지금도 전국에서

일본의 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수십만점을 종이학을 보내오고 있다.

2003년 어떤 남자 대학생이 여기 종이학에 불을 질러 태워버린 사건 이후에 케이스 안에 보관 중이다.


가운데 있는 동상


상을 세우게 된 유래비


가운데에는 종이학이 달려 있는 종이 걸려있다.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흔들 수 있다.


안에는 세계평화를 비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종이학들


전국의 친구들의 지원을 받아 세웠다는 내용


종이학


천 마리씩 실로 묶어 바친다.


동상의 뒷면


멀리서 보이는 레스트하우스


원폭공양탑

안내판


원폭으로 죽은 신원 미상의 시신들을 수습해 모신 무덤이다.


봉분 위에 상륜탑이 있는 모습이다.


내부에는 신원불명의 유골 7만 구와 이름이 알려진 유골 817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멀리 한국인 위령비가 보인다.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전통 한국식으로 세워진 비석이다.

그래도 여기에도 추모의 꽃이나 종이학이 있다.


유래비


민단 주도로 1970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조총련의 견제를 세워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거기에다 본래 공원 밖에 있었지만 1999년 시와 합의에 따라 공원 안으로 옮겨진 것이다.

의친왕의 아들로 운현궁에 양자로 들어간 이우 공이 있던 자리 가까이 세워졌다고 한다.


영어 유래비


옆면에는


비석 건립에 관련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비음의 비문

한쪽에 북한 쪽에서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귀국 귀념 시계가 있다는데

이건 정말 찾기 어려워서 못 찾았다.


피폭된 묘석


본래 사찰 터였는데 피폭으로 모든 것이 부서졌다고 한다.

지대가 낮은 것은 피폭 당시의 높이를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안내문


평화의 관음상

과거 이곳이 번화가였던 나카지마초였고, 즉사한 458명을 위령하며 세운 관음상이다.


당시 마을 지도


관음상


피폭된 동네의 모습


멀리 자료관이 보인다.


당시 본관은 공사 중

현재는 공사가 끝났다고


평화의 샘


피폭된 사람들이 갈증에 시달리다가 죽은 것을 위로하며 만든 시설이다.


단체로 참배 온 학생들


평화기념공원의 중심인 평화의 등불과 위령비 모습


하늘에 향해 편 손의 모양으로 가운데 불이 켜지고 있다.

전국 12개 종단에서 전한 불과 산업시설 등에서 전한 불을 합쳐

1945년 8월 6일 태어난 히로시마인들에 의해 점화되었다.


전경


아래로는 평화의 연못이 있다.


등대의 모습


뒤쪽으로 연못이 있고 위령비가 있다.


여기도 일장기가 있구나


평화기념상

전국 학생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모자상이다.


안내판


유래비


전체 모습


이건 기념식수 안내판


흠... 일장기라


단게 겐조가 세운 위령비

내부 석관에는 피폭으로 죽은 인물들의 명부가 모셔져 있다.


한국어 안내문


안에는 편안하게 영면하소서 실수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쓰여있는데

이 실수가 단순한 원폭이냐 아니면 전쟁 책임이냐에 따라 논란이 있다고 한다.

히로시마의 공식 입장은 실수는 전쟁 전체라는 것,

이후 위령비의 과오라는 부분에 우익의 테러가 계속되고 있다.


평화의 연못 표석


옆에는 추도관이 있다.



기도하는 상

종전 15주년 기념으로 세운 상이라고


유래비


동상에 바친 문구


추도관이 보인다


정식 명칭은 국립히로시마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国立広島原爆死没者追悼平和祈念館)

2002년 단게 겐조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피폭자의 영정과 증언 비디오 등이 보관되어 있다.


입구


가운데 중정


한국어 안내석


중정의 모습

특이하다


일본어 안내석


명판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


입구


각국의 언어로 건설 취지문을 적어 넣었다.


한국어 안내문


평화기념 사망자 추모공간


흰 벽으로 되어 있다.


당시 원폭투하의 상황을 설명해놓았다.




계속 공간을 따라 들어간다.


계속되는 피폭자들의 고통


잘못된 국가정책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한다고 하여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한 부분


폭심지에서 본 모습을 재현한 공간


가운데


폭심지를 상징


피폭 직후의 상황




14만 개의 다일로 이루어져 있어 희생자의 수와 같다고 한다.



360도 모습


다음 코너는 영정과 비디오의 모습


피폭된 모습


이렇게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보면 역사는 참 비극이다.


혹시나 해서 영어로 검색해봤더니 한국인 희생자도 나온다.


당시 일본에 300만 명이나 있었다는 조선인들


이름도 모를 이들이 이렇게 죽어갔다.


추도관을 나온다


이제 마지막으로 평화자료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