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9일 히로시마1 (히로시마성広島城)

同黎 2019. 10. 13. 19:05



히로시마에 도착


히로시마에는 관광 순환버스가 있어서 이것만 타면 된다.

왠만한 관광지는 다 들리는 곳이니


세 가지 노선이 있는데 그냥 원폭돔 앞 같은데는 다 들린다고 보면 된다.


도심을 지나


먼저 히로시마성으로 갔다가 평화공원으로 가기로


아이오이바시를 지난다


원폭돔도 지나고


평화자료관도 지난다


히로시마성 도착

2번째이다



히로시마성(広島城)은 에도시대 초기에 처음 세워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모리를 정복한 이후 심복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 아키와 빈고 2개 쿠니의 50만석을 영지로 하사했고 마사노리는 자신의 중심지로

히로시마성을 새로 개축했다. 히로시마성은 그가 온갖 정성을 들여 건축한 성으로 오사카성, 오카야마성과

함께 에도 초기 성곽의 대표작이자 3대 평지성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도요토미

가의 충신. 이후 태풍으로 파괴된 히로시마성을 막부의 허락없이 수리했다는 이유로 도쿠가와 히데타다에

의해 카이에키당하고 히로시마성에는 아사노 나가마사의 차남 나가아키라가 입성한다.

아사노 나가마사는 이시다 마츠나리와 마찬가지로 도요토미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오봉행(고부교) 중의

하나로서 태합검지 등 경제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오봉행 중 이시다 미츠나리를 비롯한 4명이 문치파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에 비해 아사노 나가마사는 미츠나리와 사이가 매우 나빴고 결국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의 편에 섰다. 이후 히데타다의 신임을 얻어 그의 차남 나가아키라가 가독을 잇고 히로시마성에 입성

하여 막부가 망할 때까지 쭉 이곳을 맡으며 42만 6천석의 영지로 서쪽의 조슈번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아사노씨는 히로시마를 정비하고 거대한 성과 성 아래의 조카마치를 정비하여 히로시마는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다. 이후 1차 조슈정벌 당시에는 막부군의 본영이 되기도 하였으나 폐번치현 이후에는 군영 설치와

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다. 특히 청일전쟁 당시에 메이지천황이 머무는 히로시마 대본영이 설치되어

임시수도 역할을 하였고, 러일전쟁 때도 중요한 군사지역이었기 때문에 히로시마가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이 와중에도 천수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히로시마성 천수각은 그대로 무너지게 되었다. 폭심지에서

1km 거리에 있었는데 처음 열에는 견뎠으나 이후 충격파에 의해 붕괴되어 천수대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시 성내에는 방공호 건물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이후 중국, 조선 등에서 귀국한 이들이 히로시마성

안에서 경작을 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다가 1951년 천수각을 가설 형태로 복원하고, 58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광대한 성은 대부분 재개발되고 지금 남은 부분은 혼마루 부분만이다.


들어가는 입구

히로시마 호국신사 현판


들어가자


거대한 해자


해자가 과거 히로시마성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사적 히로시마성 표석


여기도 국화전


여기저기 건물터가 있다.


청일전쟁 당시 메이지천황이 머물던 히로시마 대본영터이다.

이 때 국회도 이곳으로 옮겨와 임시수도 역할을 했다.


대본영터 임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전쟁 전에는 메이지천황 행행지라고 하여 전국 수백 곳이 모두 사적이었지만,

전후 GHQ의 지시로 현재는 모두 해제되어 있는 상황


단풍이 든 대본영 터


히로시마 대본영 안내판


원폭의 영향으로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초석만 남았다.


멀리 보이는 천수각


철포의 역사라는 특별전이 진행 중


천수대 위로 올라간다.


초대 천수각을 재현해 58년 세운 복원 천수

콘크리트 건물인데 외부를 목재로 마무리했다.


본래 소천수가 붙어 있었으며 높이는 32.7미터로 5층짜리이다.

현재 히로시마성 혼마루 내부는 복원하자는 이야기가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원폭 유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논란이 있는 모양


천수각은 박물관으로 쓰이며 입장료를 내야 한다.

16세기, 삼각주인 히로시마


본래 이 지역을 다스리던 모리 테루모토의 편지



대천수의 파편


복원한 샤치와 금박 기와

출토품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출토지를 알려주는 안내판

모리씨가 만든 것으로 우물터에 대량의 기와가 묻혀있던 것으로 보아 일괄 철거해 매장한 것이라고 한다.


거의 완전한 모양으로 발굴되었으며 금박을 입힌 샤치호코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조개문양은 뭐지

모리가 문장도 아니고


과거 혼마루 어전의 모형

대단하


모리가의 갑주


투구와 무기류


혼마루 어전 일부를 복원한 모습


조카마치의 상점 복원


가마


히로시마가 속한 옛 아키노쿠니의 지도


번주인 아사노 가의 마표

현재 히로시마시 지정문화재이다.


2대 번주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철제 투구

무로마치시대



아사노가의 각종 갑주들


무로마치시대



와카자시

에도시대 초기



단도

에도시대



와카자시

에도시대



카타나

에도시대



태도

에도시대



단도

에도시대


창 명 니혼고의 복제품

일본 3대 명창으로 불리는 창이다.


오기마치천황이 히데요시에게 배령하고 다시 히데요시가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 배령해 그의 상징이 된다.

현재는 후쿠오카번주 쿠로다가에게 전해져서 이후 후쿠오카시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안내문


카타나

19세기

일본미술도검보존협회에서 지정한 중요도검이다.



태도

남북조시대

역시 중요도검



단도

남북조시대



나고야성 성곽도

제국성곽도 중



철포, 즉 총이다.


천수각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


천수대 아래의 모습들


주코쿠방송국 방면

저 타워가 송신탑이다.


체육관 방향


성 아래


이제 내려간다


한쪽에는 원래 천수각의 초석들이 진열되어 있다.


다시 대본영터를 지나


호국신사를 지나 다시 버스를 타고 원폭돔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