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아예 구 성 경내에 있어 바로 갈 수 있다.
과거 히메지성에 비할 정도로 근세 성곽건축의 모범이었으나
후쿠야마 대공습으로 현재는 2동만 완전히 남아있다.
석단이 보인다
후쿠야마성(福山城, 복산성)은 에도시대 설치된 후쿠야마번의 거성이다. 본래 빈고노쿠니에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히로시마성을 거점으로 웅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카이에키되면서 아키와 빈고를 분리하여 히로시마에는 아사노씨가 들어가고, 빈고에는 후쿠야마번이
설치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촌 미즈노 카츠나리가 서국의 무사들을 경계하기 위해 야마토 코리야마
번에서 10만석으로 승격해 입봉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조영된 후쿠야마성의 축성을 근세의 마지막 대규모
축성으로 막부의 의도가 반영되어 10만석의 영지보다 훨씬 더 큰 성이 완성된다. 천수가 5층이었고, 천수의
역할을 분담하는 3층의 야구라가 7동, 이층 야구라가 16개, 291칸 570미터의 타몬야구라가 있어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많은 건물이 후시미성에서 이축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후시미성은 히데요시
시절의 것이 아니라 이에야스가 재건하던 것으로 마침 후시미성이 폐성되면서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미즈노가가 5대 번주의 요절을 끝으로 단절되면서 막부는 일시적으로 후쿠야마번을 직속 천령으로
전환하고 미즈노가의 분가는 1만석으로 전봉시킨다. 이후 데와 야마가타번에 있던 마츠다이라 타다마사가
입봉했다가 1년 만에 아베 마사쿠니가 우츠노미야번에서 전봉되고 10대를 이어 폐번치현까지 이어간다.
이들은 대대로 막부의 중요 가신이 되어 로추만 4명이 나왔는데 7대 번주 아베 마사히로가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막말에는 번교에서 칸 챠잔이나 라이 산요 등의 유학자를 배출하기도 한다.
막말에는 2차 조슈정벌 과정에서 조슈측에 공격받아 화약 폭발로 인해 성의 일부가 소실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모습은 유지되었다. 이후 무진전쟁 당시 후쿠야마번이 조적으로 간주되어 신정부군의
공격을 받았고 결국 항복하게 된다. 이후 아베씨는 친정부군이었던 히로시마번의 아사노씨를 양자를
맞이하게 된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도 대부분의 건물은 무사했다. 이후 후쿠야마성의 폐성령에서도 비교적
많은 건물이 살아남아 천수, 후시미야구라, 스지가네고몬, 어탕전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어전 일부와 야구라
몇 동, 종루 등이 현존했다. 그러나 1945년 후쿠야마 공습으로 어탕전, 천수 등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후 1960년대 국가 사적으로 재지정되고 니노마루까지를 매입하지만 내부의 공원화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유구가 파괴되었다. 1966년 천수각 등 일부가 복원되지만 거의 고증을 거치지 않아 지금도 비판을
많이 받고있으며 여러모로 100점 만점 기준에 60점 이하로 바꿔놨다고 하겠다. 그래도 2동의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전된 노무대 역시 중요문화재이며 2동의 건물은 현지정문화재이다.
혼마루로 들어간다
한쪽에 널린 석단 흔적
여긴 복원이 참...
후시미야구라가 보인다
안내판
후쿠야마 미술관은 한 재벌의 기증으로 국보 7점, 중문 6점의 도검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 때에는 현대미술관만 공개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후시미야구라의 모습
중요문화재
후시미성에서 옮겨왔다는 3층의 야구라로 1601년을 전후해 세워졌으며
오늘날 남아있는 야구라 중 가장 오래된 것에 해당한다.
무기고로 쓰였으며 혼마루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이다.
바로 문이 보인다.
문과 석단으로 연결된 혼마루
단단해 보인다
중요문화재 스지카네고몬
혼마루의 중문으로 후시미성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며 그럴 가능성이 실제로도 있어 보이는 문이다.
다만 비교적 근거가 확실한 후시미야구라와는 달리 이설이 제기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안내판
뒤편에서 보이는 후시미야구라
들어갈 수는 없다.
문 정면
다몬야구라가 붙어있는 방어용 문이다.
목재들
천정
내부로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천수
혼마루 어전 터
어탕전
독특한 건물로 사우나를 하는 건물인데, 석단 위에 무대조로 지어 밖을 감상하도록 만들었다.
국보였으나 소실된 것을 재건
안에서 본 스지가네몬
종야구라
시지정문화재
본래 종루와 야구라가 합쳐진 부분인데, 이후 전쟁으로 종루 부분만 남아있다가 옆에다 복원되었다.
그런데 야구라 복원 시 너무 맘대로 복원해 원래 형태를 알기 어렵다고 한다.
안내판
5층 천수
본래 검은성이었으나 무시하고 맘대로 복원했다고. 검은성이란 명칭은 북쪽면에 화공을 막기 위해
검은 철판을 붙였기 때문이고 이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그냥 미관상으로 밀어 붙였다고 한다.
히메지성, 마츠모토성 천수와 비길 정도로 아름다운 천수였다고 하나 제대로 복원이 안 되었다.
창문 등도 맘대로 복원했다고
오래된 소나무
유래는 안 써 있다.
국화전시 중
천수와 부속야구라
소천수 언급은 없어 소천수는 아닌 것 같은데
메이지유신 관련 전시 중
사적 표석
다들 그렇듯 천수각은 박물관으로 전용 중이다.
천수각이라는 단어에 고민이 많았는데, 일본에서도 천수각이라는 단어를 쓰긴 한다.
국보나 중요문화재 천수각은 천수라는 단어로 지정되었는데
오사카성 같은 경우 복원 천수가 천수각으로 등록유형문화재로 되어 있다.
내부
복원한 과거 후쿠야마성
보다시피 엄청나게 큰 성이다.
아베 가문의 갑주들
엄청나게 많다
페리 내항 당시의 자료
미국군 같은데 군기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군기 위는 미국 국장이긴 한데
막부와의 교섭
각종 천문기기
육분의도 보이고
지구의
태양계와 지구
신기하군
위성도 나와있다
로추 수좌인 아베 마사히로의 글
이 양반이 미일화친조약을 주도
번중에 문무에 힘쓸 것을 유시하는 글
아베 히로마사가 번교를 열 때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지정해준 성지관이라는 현판
해방시험계책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서장
아베 마사히로의 봉납도
아베 마사히로의 갑주
아베 마사히로의 초상화
마사히로의 친필
조음
조슈정벌 당시의 기록화
산조 사네토미가 쓰던 짚신
1차 조슈정벌 당시 참수된 3명의 조슈번 가로의 참수도
조슈정벌 당시 썼던 국화문 군기
2차 조슈정벌 당시 오간 서장들
무진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하코다테의 고료가쿠
9대 번주 아베 마사카타의 갑주
후쿠야마인들의 안타까움을 사는 인물인데, 약관의 나이로 병사했다.
1차, 2차 조슈정벌 당시 모두 막부군에 종사하였는데, 2차 조슈정벌 당시 히로시마번이 조슈군 측으로
돌아서 히로시마에서 싸워 패배했다. 이후 무진전쟁으로 조슈군이 교토를 향하자 가장 먼저 조슈군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조슈군이 후쿠야마성에 접근할 때 병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20세의 사이로 사망하는데
그의 죽음은 비밀에 붙여졌다가 수개월 후 조슈군의 후쿠야마성 함락 직전 비밀리에 매장되었다.
아베가문은 대대로 막부의 가로였기 때문에 이름만 번주고 에도에서 살았는데
역설적이게 그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후쿠야마에 묻힌 번주이다.
그의 죽음 이후 아베씨의 직계가 단절되고 후쿠야마번의 입장도 어려워졌기 때문에 히로시마번주의
3남을 마사카타의 조카와 결혼시켜 급히 마사카타의 사후 양자로 입양하고 아베 마사타케라고
하여 마지막 번주로 세운다. 이후 후쿠야마번은 신정부측으로 돌아서게 된다.
마사카타는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딸과 약혼했지만 결혼하지 못한 채 죽어 아베가의
사실상 마지막 당주가 된다. 비극적인 삶을 산 만큼 후쿠야마에서는 특별한 인물이다.
1885년 외무경 이노우에 카오루가 내린 훈령
1884년 갑신정변으로 청일간에 한성조약이 맺어지고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청에 특명전권대신으로
가서 텐진조약을 체결하는데, 당시 주청일본공사인 에노모토 타케아키(榎本武揚)에게
공사 겸 특명대사로 이토를 도우라는 내용의 훈령을 보낸 것이다.
에노모토 타케아키의 아버지가 후쿠야마 출신이라 전시한 듯 하다.
성 전경도
과거 어전을 장식하던 장식물
미즈노가의 문장
후쿠야마 하치만구에 봉납한 태도
하치만구의 신경
미즈노씨가 봉납한 것
료샤하치만구의 본전 난간 장식물
미즈노가 자신을 신격화하면서 하치만 신사를 부흥하며 봉납한 것이다.
과거 어전의 도비라에
현재는 사라진 어전으로 후시미성에서 옮겨왔다는 건물의 문짝이다.
주칠 태도존
이나리 신사에 봉납되었던 것
아베씨의 갑주
묘오인 오층탑의 공포 일부
전망대로 올라간다
내부 전경
후쿠야마역이 바로 남쪽에 붙어있다.
전경
북쪽에 붙어있는 산
북쪽을 제외하면 평지이다.
평지성과 산성의 중간
안내판
저 뒤로 넘어가면 과거 번성했던 쿠사도센겐초가 있던 동네이다.
전경
북쪽 산이 유일한 약점이라 천수각에 철판을 대어 보호했다고
다시 성을 내려간다.
스지가네고몬을 지나
후시미야구라를 지난다
꽤 거대한 야구라
작은 성의 천수 정도 되는 크기
역으로 바로 통하는 문
안내판
여기도 안내석이 있다.
역으로 바로 들어간다.
신칸센까지 들어오는 역
과거 니노마루를 파괴하고 지은 시설
혼마루 석단을 따라간다.
멀리서 보이는 야구라
케츠미야구라라고 복원한 것
과거에는 달을 보는 명소였다고
멀리 교회도 보인다.
이런 고딕 건축은 보기 드문데
이제 오카야마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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