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고 바로 고치성으로 왔다.
토사번의 초대번주인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一豊)의 동상이 있다. 본래 이곳은 초소카베씨의 땅이었다.
그러나 초소카베가의 당주인 초소카베 모리치카가 세키가하라에서 서군 편을 들었다가 영지 전체를
몰수당하면서 동군 편을 들었던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이곳에 전봉되었다. 초소카베씨가 다스릴
때는 태합검지로 고작 9만석 이상이었으나 야마우치씨가 다스리게 된 이후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20만석~24만 석의 대번을 이루고 다스린다.
야마우치씨는 본래 후지와라 북가의 방계라고 전해지며 미요시씨를 따르던 가신이었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미요시를 깨부수며 떠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무위를 떨치며 다이묘가 되었다. 이후 기반이
없었던 토사번을 잘 다스리며 16대까지 쭉 토사번을 다스리게 된다.
물론 토사번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게 상사와 향사의 대립이다. 야마우치씨가 들어오면서
이전 초소카베의 가신 중 극히 일부와 야마우치씨의 가신은 상급 무사인 상사, 나머지 초소카베 가신들은
하급 무사인 향사가 되어 반농반무의 생활을 영위했다. 사카모토 료마와 타케치 한페이타 등 반막부
운동을 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향사 출신이다. 본래 토사번은 공무합체파로 토사근왕당 등 토막파
무사들을 배척했는데 이후 료마 등이 선중팔책 등으로 대정봉환을 주장하자 이를 받아들여
삿쵸동맹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공으로 유신 이후에도 후작위를 받았다.
고치성 입구
고치성(高知城)은 에도시대 토사번의 거성으로 혼마루가 거의 그대로 남은 유일한 성이다. 본래 이 지역의
성은 호족인 오다카사씨가 세운 오타카사카야마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남조 편을 섰다가 멸망하여 폐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초소카베씨가 성을 다시 쌓으며 남쪽에 있는 항구 입구에 우라도성을 쌓았다. 이곳을
거점으로 무역을 장악하고 임진왜란 출병을 위해 임시로 세웠기에 그렇게 정교한 성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토사번에 입봉한 야마우치씨는 이곳에 튼튼한 성을 새로 개축하였는데 이를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초소카베씨의 가신 일부를 사면받아 축성하게 하고 또 오미와 오사카의 축성
기술자들을 모아 거대한 성을 쌓았다. 이리하여 17세기 초에 성이 세워졌고 2대 번주에
의해 개축되면서 고치성이라는 명칭이 굳어지게 되었다.
이후 간간히 화재와 재건은 있었으나 비교적 충실히 보존되었고 혼마루는 폐성령에서 살아남아 쇼와시대
천수 등 15동이 국보로 지정된다. 고치 역시 공습을 받아 수백 명이 죽고 성하촌이 소실되어 료마의 생가
등이 불탔으나 기적적으로 고치성은 멀쩡했고 구 국보로 지정된 15동이 그대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시코쿠는 다른 곳에 비해 군사적 중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존 12천수 중 4동이나 소재한다. 고치를
비롯해 이요 마츠야마·마루가메·우와지마성 천수가 있으며 오즈성·타카마츠성도 비교적 잘 남아있다.
에도시대 초기의 토사번 가로이자 유학자인 노나카 켄잔의 기념비
혼마루 입구인 오테몬
에도시대의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보이는 석병과 담
오테몬을 둘러싼 담 3동도 중요문화재이다.
국보 고치성이라는 표석
오테몬 안내문
메이지유신의 원훈으로 토사번 출신 정치가 이타가키 타이스케의 동상이다.
자유민권운동의 주도자이고 부상의 위치를 지녔던 내무대신을 역임하기도 했다.
동상
석단 위로 보이는 천수
배수구
석통이라고 되어 있는 배수구
고치성의 특징
안내판
고양이가 쉬는 중
위로 올라간다
말 옆에 서 있는 여인의 동상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부인인 치요의 동상이다.
내조로 유명한 인물이라고
표지석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떠받들어져 전전에는 교과서에도 나왔다고 한다.
소설과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도 등장한다고
동상 안내판
산노마루 입구의 거대한 석단
본래 야구라가 있었을 것인데 사라졌다.
니노마루와 산노마루는 거의 사라졌다고
안내판
의사 쿠스노키 마사오키의 공덕비
막말기의 의사로 서양의학을 받아들였고 서민치료의 기틀을 닦았다고 한다.
내려다 본 모습
천수각이 보인다
천수대 아래로 겹겹이 쌓인 석단은 스기노단이라고 하여 우물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안내판
곳곳에 있는 우물의 흔적
이 물을 길어 어전에 보냈다고 한다.
올라간다
멀리 보이는 혼마루
혼마루로 들어가는 입구인 쿠로가네몬 터
석단이 예사롭지 않다.
안내문
발굴조사 안내판
쿠로가네몬은 사라졌지만 좌우 담은 남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문이 보인다
니노마루 입구인 츠메몬
천수와 토병
안내문
이 위로 올라가야 니노마루가 나온다.
도대체 문이 몇 개냐
뒤돌아몬 츠메몬
계단
다 오르니 니노마루와 혼마루가 나온다.
어전의 유일하게 남은 부분인 회덕관
중요문화재
니노마루 안내문
본래 어전이 있던 공간
니노마루 안내문
지금은 어전 터가 넓은 공원이 되어 있다.
회덕관과 연결된 로카몬, 천수
뒤로 굽이굽이 토병이 보인다.
츠메문의 윗부분
고치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경관이 아름답다
석병의 모습
츠메몬으로 들어간다
문 내부
츠메몬 위로 연결된다.
츠메몬
높은 부분
츠메몬을 지나 연결된 로카몬을 통과하면
혼마루 부분이 보인다.
문을 나오면 보이는 건물
니시다몬
방어용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안내판
너무 굽이굽이 들어와서
방향감각이 상실
로카몬
우리가 위로 통과한 로카몬 아랫부분
한쪽에 서 있는 쿠로가네몬
아래의 문과는 다른 문이다
중요문화재
천수와 회덕관
회덕관은 혼마루어전의 유일하게 남은 부분이다.
중요문화재
바로 뒤로 천수가 연결되어 있다.
안내판
3층 6계의 건물이다
평지 위 언덕에 쌓아 주변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12천수 중 하나
쿠로가네몬
좌우 담장도 중요문화재이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회덕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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