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북쪽으로 올라가면 후쿠이현 츠루가시(敦賀市)가 나옵니다. 후쿠이현이라고 하지만 이 지역은 동해와 맞닿은 지역으로 현재의 후쿠이현 동부, 교토부 북부, 효고현 북부인 와카사, 탄고, 타지마 지역은 모두 한반도와 깊은 관계에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후쿠이역 입구에는 신라국 왕자라고 알려진 천일창(天日槍, 아메노히비코)의 동상이 있어서 그 역사적 교류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와는 별도로 이곳에는 일본에 있는 한반도의 종 중 유일하게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신라종이 남아 있습니다.
*츠루가역 앞의 천일창 동상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천일창과 관련된 설화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천일창은 신라의 왕자라고 하며 일본 11대 스이니천황 당시 많은 보물을 가지고 일본에 귀화했다고 합니다. 천일창이 밝히길 자신의 신라국의 장남인데 일본에 聖皇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생에게 나라를 넘기고 귀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며 이후 지금의 고베 지역으로 배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이후 스이니천황은 그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영지를 정하도록 하였고 천일창은 이후 지금의 비와호를 거쳐 북상해 후쿠이현 동부~효고현 북부에 이르는 지역을 영지로 삼았으며 그 후손 중에는 신공황후도 있다고 전합니다.
반면 『고사기』에는 신라의 왕자로 붉은 옥에서 태어난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총애했으나 이후 그녀를 박대하자 아내가 부모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며 배를 타고 나니와(지금의 오사카)로 돌아가버렸고, 그는 반성하며 아내를 찾기 위해 나니와로 왔는데 세토 내해의 신들이 방해하여 동해를 거쳐 지금의 츠루가에 상륙하였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합니다. 여기서는 『일본서기』에 제시한 신라-세토내해-효고 상륙-츠루가까지 육로로 상경이라는 루트 대신 신라-동해를 거쳐 츠루가 인근에 바로 상륙이라는 해로 루트를 제시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현재의 학자들은 천일창이 개인이 아니라 신라계 도래인 집단을 대표하며 그 집단의 신이라는 점, 천일창 신화가 일본 건국 신화 중 일부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후 츠루가 일대의 신사는 천일창의 후손인 주로 신공황후와 관련되었다는 역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츠루가 시내에 있는 거대한 신사인 케히신궁(氣比神宮) 또한 신공황후가 삼한정벌을 앞두고 기도했다는 역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케히신궁의 도리이
우리의 목적지인 조구신사(常宮神社)는 츠루가 시내에서 약 9km 떨어져 있으며 동해로 튀어나온 츠루가반도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내와 이곳을 이어주는 대중교통으로 지역 커뮤니티 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3번 다니고 새벽, 점심, 저녁이며 돌아오는 버스시간은 전혀 맞출 수 없습니다. 즉 아침 7시에 츠루가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오후 2시에 돌아오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고 해도 이 인근은 아무것도 없는 어촌이기에 택시를 호출하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조구신사를 보기 위해서는 시내에서 미리 택시를 예약해서 왕복하는 것이 비싸지만 최선은 대책입니다. 저는 역에서 조구신사와 인근 사찰인 사이후쿠지(西福寺)를 거쳐 케히신궁을 보고 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예약을 했습니다.
*조구신사에서 보이는 츠루가만의 바다
*국보 조선종이라는 표석
조구신사로 가는 길은 츠루가반도와 육지가 이루는 츠루가만의 평화로운 바다를 끼고 갑니다. 대대로 파도가 치지 않아 천해의 항구가 되었지만 이 때문에 2차 대전에는 공습을 받았고, 현재는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하고 있어 간사이 대도시권과 가나자와시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무료 1965년에 세워진 원전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동 원자로가 있어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안을 따라 10~15분 정도로 택시로 가다보면 국보 조선종이라는 표석이 나옵니다. 조선종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모든 종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며 조구신사의 신라종 도한 조선종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구신사(常宮神社)는 본래 케히신궁의 일부로 케히신궁의 오쿠노미야(奥宮)의 위치를 차지한 신사입니다. 일본의 신사와 사찰 중에는 오쿠노미야(奥宮), 오쿠샤(奥社), 오쿠노인(奥院) 등의 용어를 쓰는 곳이 많은데 이는 일본 특유의 종교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본래 산악신앙이 강했던 일본에서는 신이나 부처를 모시는 곳이 산 깊은 곳에 있었고 수험도라는 산악신앙 불교수행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신앙의 공간이 평지, 대도시로 내려오면서 과거의 신앙 장소는 안쪽, 깊다라는 뜻의 오쿠(奥)를 붙여 별도의 신사와 사찰로 유지하고 평지와 도시에 있는 곳이 본사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조구신사는 역시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케히신궁이 본사 역할을 하고 이곳은 조용한 신앙의 공간으로 섬겨졌습니다.
*조구신사 본전. 에도시대 건축
조구신사의 주신은 아메노야오요루즈히메노미코토(天八百萬比咩命)라는 복잡한 이름의 신인데 보통 조구대신(常宮大神)이라고 불리며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는 지역신입니다. 일설에는 이곳에 정착한 천일창 혹은 후손인 신공황후와 동일한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신사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곳은 신공황후는 삼한정벌을 결심하며 이곳에 와서 참배하였다고 합니다. 신공황후는 군사 정벌을 앞두고 남편인 주아이천황과 갈등에 빠져 있었는데 주아이천황은 규슈 남부의 이민족인 쿠마소, 하야토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했지만 신공황후는 신하인 타케노우치 스쿠네 등과 모의해 이를 저지하게 되고, 결국 일본의 신들의 저주를 받아 주아이천황은 병에 걸려 사망, 신공황후는 섭정의 자리에 올라 삼한정벌을 하고 자신의 막내아들인 오진천황을 귀국 후에 황태자로 삼습니다.
신공황후 전설 자체가 꾸며낸 이야기기 때문에 학술적으로는 이곳이 신라와의 교역 항구였던 츠루가항의 비상 대피 항구였던 조구항이었던 것을 감안해 신라계 도래인들의 신사였다가 백촌강 전투 이후 악화된 신라와의 감정을 고려한 후손들이 신공황후 이야기를 신사에 덧붙였다고 보고 잇습니다 .실제 신공황후 등이 配神으로 합사된 것은 문헌상 일본이 백제 멸망과 신라 침공의 공포를 이겨내고 율령국가로써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8세기 초로 확인되고 잇습니다. 8세기 초 조구대신 주변에 신공황후의 그 남편 주아이천황, 아들 오진천황, 여동생 타마히메, 시아버지 야마토 타케루, 충신 타케노우치 스쿠네가 합사되었고 몇 번의 부침을 통해 모모야마~에도시대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릅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국보로 지정된 신라종 때문입니다. 일본 위키백과에는 이 종이 한동안 공개되다가 한국의 문화재 반환 요구로 인해 비공개로 바뀌었다고 되어 있어 오랫동안 갈 엄두를 못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직접 신사 측에 전화해본 결과 미리 전화를 하고 온다면 300엔의 배관료만 내고 보물관 안에서 언제는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약이 없다고 해도 신사 측 관계자에게 문의만 한다면 현장에서도 배관이 가능합니다. 역시 현지 답사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신라종의 유래는 비교적 명확한데, 과거 츠루가를 다스렸던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오타니 요시츠구(大谷吉継)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가져왔으며 이후 이곳이 삼한을 정벌한 신공황후를 기리기 위해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 설과는 별도로 그 이전인 13~14세기에 왜구에 의해 노략되어 신사에 바쳐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타니 요시츠구는 일본에서 대단히 인기 있는 인물로 충의의 상징과 같은 사람입니다. 세키가하라전투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회유를 물리치고 사태의 불리함을 알면서도 친구 이시다 미츠나리를 돕다가 전사한 인물입니다. 거기에 대단한 미남이었으나 얼굴에 심한 피부병(혹은 한센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을 걸려 죽기 전까지 두건을 둘러쓰고 전쟁터를 다녔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때문이 일본에서는 오타니 요시츠구의 조선종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동종의 보관 상태
*사람과 크기를 비교하기 위한 사진
*비천상의 상태
보물관에 들어가면 이 신라종 하나만 금줄에 묶여 보호되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웬만하면 사진을 찍지만 신사 관계자의 감시가 워낙 살벌해서 결국 사진은 찍지 못했습니다. 다만 ‘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池寺鍾成’이라는 명문은 확연하게 보이는데 이를 통해 이 종이 833년 청주(현 진주) 연지사에서 조성되었던 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크기는 높이 112cm, 구경 66cm로 상원사 동종 등에 비하면 큰편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총 5개의 신라종이 완형으로 남아있는데 그중 가장 크고 오래된 종입니다. 물론 폐불훼석 당시 파종되거나 사라진 종이 더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정교함이나 세밀함은 상원상 동종에 비하면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물론 상원사 종은 한국에서도 수위에 손꼽히는 종이니 비교대상이 되긴 어렵겠죠. 다만 전반적인 느낌은 운천동 동종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학계에서는 비천상의 표현 등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종신의 상대와 하대, 연곽 곳곳에 연화문, 파도문, 격자문, 보상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 역시 흔치 않은 경우고 특히 파도문양이 종신에 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용뉴의 훼손이 심하지만 음통이 분명하게 보이고 음통은 대나무 형태입니다. 다만 한국의 신라종보다는 시대가 다소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신라종의 정수라고까지 하기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9세기 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크기와 시대의 종이 명문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오카야마현 사이다이지의 고려종
이 종을 하나 보러 오겠다고 엄청나게 고생하고 또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아쉬움을 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는 오카야마현 사이다이지(西大寺)에는 고려 초의 범종이 남아 있는데 용주사 동종에 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종이지만 종루 2층에 메달려 있는 친견이 어렵습니다. 또한 일본종은 698년에 만들어진 묘신지(妙心寺) 동종을 시작으로 8세기까지 동종이 16구나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의 동종처럼 감동을 주는 종은 보기 어렵습니다. 약간의 부러움과 아쉬움을 담아 조구신사를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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