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차는 어디를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일본의 건국신화를 살펴볼 겸 이즈모대사(出雲大社)를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지금 일본 신사들의 이름은 많이 자체 뻥튀기가 되어 神宮이나 大社라는 칭호가 많이 붙어 있습니다만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신궁이라고 하면 이세신궁을 대사라고 하면 이즈모대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생각될 정도로 이즈모대사를 중요한 신사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일본 신사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격으로 존중받으며 음력 11월에는 일본의 팔백만신이 이곳에 모인다고 하여 참배객이 끊이질 않습니다. 더불어 한국에서도 이곳에 내려오는 신화와 신라와의 관계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마네현의 상징인 국보 마츠에성 천수각
그러나 이즈모대사는 이외로 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합니다. 이즈모대사가 위치한 시마네현은 우리에게는 독도를 일본땅이라는 주장하는 지자체로 유명합니다만은 실상 일본에서도 인구가 두번째로 적은 현으로 지금도 고령화로 인한 자자체 소멸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상원처럼 인구와 관계없이 가급적 각 지자체별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일본 참의원도 이 동네에서는 옆의 돗토리현과 함께 1석을 뽑습니다. 돗토리현은 인구가 가장 적은 현으로 일본 47개 도도부현을 대상으로 242명을 뽑은 참의원 중 시마네현에서는 0.5명을 뽑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인구보다 지역을 배려한 선거에서도 이런데 다른 면에서도 거의 배려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바로 옆 돗토리현은 60만이 안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건실한 재정운영 등으로 모범적인 지자체로 손꼽히는데 비하여, 시마네현은 자민당 정치인의 세습으로 지방재정의 불건전화, 지나친 토목공사 등 위기를 더욱 부추긴 면이 큽니다. 결국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진정성이 있다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이목을 끌어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의 면이 큽니다. 실제 시마네현에 가보면 한국 관광객 유치에 열심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인구가 적은 것은 사실 시마네현만의 책임은 아니고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세토내해나 태평양을 끼고 있는 오사카, 나고야, 도쿄로 각종 인프라가 쏠리면서 산인(山陰)지방이라고 불리는 곳은 철도나 도로교통이 정말 불편합니다. 히로시마 같은 대도시로 거대한 산맥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기댈 수가 없으며 동해안을 따라 난 산인선은 30분에 한 대 기차가 지나도 다행일 정도로 힘듭니다. 그래서 이즈모대사도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즈모대사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요나고 공항으로 가는 것입니다. 돗토리현과 시마네현 가운데 있는 요나고 공항은 한국에서 직항편이 운행합니다. 다만 항공권이 비싸고 주변에 며칠 동안 볼 것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가기에는 비용과 시간 편에서 아까운 편입니다. 다른 방법은 오카야마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철도 시간이 엉망이라 역시 시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오사카나 교토에서 출발하는 철도가 있지만 하루에 1편, 도착시간은 이즈모에 오전 10시로 역시 이 근처를 다 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스케줄입니다.
*오사카 우에노에서 출발하는 야간버스. 이즈모대사 앞까지 갑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식은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야간버스입니다. 일본 고속버스를 먹여 살리는 야간버스는 터미널에서 밤 10~11시 사이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6~7시 정도에 내려주는 교통편으로 왕복 1만엔 정도가 드는데 저 같은 답사객에게는 스케줄을 보장해주는 방식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콘센트가 있고 우리의 우등버스 배치로 좌석마다 커튼이 있어 밤새 버스에서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편은 보통 당일 저녁 6시 출발로 오사카에 밤 11~12시 정도에 데려다줍니다. 약간의 피곤함(이라고는 하지만 많이 피곤합니다.)만 이겨내면 먼 지역도 무박 1일로 보고 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 일본 문화상 도시락을 사서 차내에서 먹어도 되기 때문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서 안에서 까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저는 오사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시마네, 에히메 등의 지역을 이 방식을 통해 답사했습니다. 다만 버스 좌석이 매우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일주일 전에는 계획을 세워 예약을 완료해야 합니다.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이즈모대사를 종점으로 합니다. 본래 이즈모대사를 철도로 접근하면 JR을 타고 이즈모시역에서 지역 사철인 이치바타 전철에서 운영하는 철도를 타고 이즈모타이샤마에역에서 내리거나 이치바타 버스를 타고 이즈모대사 앞에서 내리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런데 야간버스는 신사 바로 문앞에서 내려주고 또 태워가니 약간이지만 환승의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시마네현이 알고 보면 볼 것이 많기 때문에 천천히 비행기나 철도를 이용해 마츠에시까지 와서 숙소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방법이긴 합니다. 시간을 얻고 고생을 하거나, 편리를 추구하고 시간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국토를 만드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이즈모대사를 알려면 먼저 일본의 건국신화를 조금 이해해야 합니다. 일본의 창세·건국신화는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정리되었으나 이 정리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비슷하지만 내용이 다르고, 『일본서기』는 정설을 정하면서도 一書라고 하여 다른 전승도 기록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신화는 메이지유신 이후 국가 주도로 정리된 것인데 모든 것은 천황과 국가로 수렴하여 문제가 많긴 하지만 우리가 그 자세한 내용까지 파고들면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천지가 생기면서 혼돈 속에서 여러 신들이 저절로 생겨났다가 그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이러한 신들은 아직 성별의 구분이 없었는데, 이후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신이 나타나 각각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확연히 띄게 됩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결합해 일본 국토와 여러 신들을 낳으며 이후 이자나미는 죽어 황천의 다스리는 신이 되고 이자나기는 모든 신의 조상이 됩니다. 여기서 일본 신화의 중심이 되는 신인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남매가 태어나는데 아마테라스는 태양의 신으로 이후 황조신이라고 하는 천황가의 직계조상이 되고 스사노오는 땅과 황천의 신으로 일본 국토를 만드는 국조신들의 조상이 됩니다.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의 통치 하에 있는 하늘나라에서 온갖 사고를 치다가 결국 땅으로 쫓겨나고 신라의 소시모리(蘇志摩利)라는 곳에 있다가 자손들을 데리고 이즈모로 와서 진좌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스사노오는 아마테라스에 충성하여 각종 악귀를 퇴치하고 삼종신기 중 하나가 되는 보검을 바치기도 합니다.
*거대한 뱀을 물리치는 스사노오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고 강림하는 니니기. 천손강림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느는 오쿠니누시 동상. 이즈모대사
스사노오 이후 일본국토의 지배권은 오쿠니누시(大国主)라는 신에게 넘어갑니다. 오쿠니누시는 스시노오의 6대손 혹은 7대손이라고 하며 동시에 사위입니다. 기록에 따라서는 스사노오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하여튼 오쿠니누시는 스사노오의 방해를 물리치고 그의 딸과 결혼해 산과 강을 만들고 정리하는 등 일본 국토를 완성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어지럽게 꼬인 족보에서 알 수 있듯이 오쿠니누시는 스사노오와 별 관계 없는 지역신이었으나 일본 신화로 편입되면서 억지로 족보가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튼 오쿠니누시는 열심히 일본 국토를 만들지만, 아마테라스는 지상에 자신의 후손을 파견해 일본을 완성시키려 하였고 결국 아마테라스와 오쿠니누시의 협상이 진행됩니다.
협상의 결과 오쿠니누시는 일본의 완성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해야 할 일임을 인정하고 물러나기로 합니다. 다만 오쿠니누시는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머물 수 있는 훌륭한 궁궐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고 아마테라스와 그녀의 후손으로 파견되는 니니기는 이를 받아들여 이즈모에 거대한 신사를 지어주는데 이것이 이즈모대사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해석으로는 신화학과 고고학의 측면에서 살펴보았을 때 이즈모지역에는 한반도와 교류하며 세력을 키운 강력한 집단이 있었고 야마토(지금의 나라현 일대)지역을 기반으로 세워진 국가가 이들을 포섭하면서 신화의 한귀퉁이에 오쿠니누시를 비롯한 이즈모의 신들을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이후 이즈모대사의 신관집안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현 천황가와 결혼을 하는 등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즈모대사 경내도
이즈모대사는 창건 이래 대대로 오쿠니누시의 후손을 자임하는 후손들이 신관직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국시대 이전까지 이 지역의 지배자 역할도 하였으며 메이지시대 이후 신관의 세습을 금지하는 법이 발의된 이후로도 관습적으로 신관직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헤이안시대 신불습합의 영향을 받아 천태종 사찰인 가쿠엔지(鰐淵寺)의 영향을 받아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신사 경내에는 각종 불당들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메이지시대 이후 신불분리의 명령으로 인해 불당과 탑들이 훼손되어 지금의 전형적인 신사의 배치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본전은 국보로, 나머지 부속건물 22동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시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고대 건축을 충실히 재현하여 지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거대한 배전 역시 과거 국보였지만 아쉽게도 1950년대 화재로 소실되어 복원하였습니다.
*높게 솟은 본전의 모습
*본전과 주변 건축물군
*본전 뒷면
이즈모대사의 중심은 단연 본전입니다. 본전은 단순한 2층처럼 보이지만 지면과 닿는 부분을 기둥으로 높이 올려 2층에 해당하는 부분에 물건을 보관하는 고대의 창고를 본딴 고상식(高床式) 건축입니다. 정창원이 대표적인 고상식 건축입니다. 이렇습 고대 고상식 건축을 본딴 이 본전은 높이가 무려 24미터로 일본 신사건축 중 유래 없는 높이를 자랑합니다. 도다이지 대불전을 제외하면 일본 고건축 중에 단일 건물로 이렇게 높은 건물은 없습니다. 이것은 18세기 재건된 것으로 이전의 높이는 48미터라고 하며 본전에서 바닷가까지 긴 계단이 이어져있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본전은 높이가 96미터였다고 전하지만 이것이 과연 당시의 기술로 가능하겠는가는 면에서 부정적입니다. 다만 2000년 발굴조사 당시 바다까지 이어지는 길에 직경 4미터 정도의 거대한 기둥의 밑부분이 다수 발굴되어 48미터까지 본전까지는 실존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출토된 고대 본전 기둥의 복원묘형
*실제 출토된 기둥. 3개의 나무기둥을 붂어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었습니다. 중요문화재
*고대 본전의 복원 모형.
본전은 남향이며 직사각형의 형태고 앞에는 신들이 올라오는 계단 부분의 회랑이 붙어 있습니다. 본전 내부는 9개의 거대한 기둥이 있으면 앞뒤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내부의 앞 부분에는 오쿠니누시의 아들이 있으며 뒷부분에는 주신인 오쿠니누시와 客神인 5명의 창조신(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최초에 등장하는 신들)을 모시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객신들은 남향을 하고 있지만 오쿠니누시는 서향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서쪽 즉 한반도를 바라본다는 설도 조금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지붕에는 치기(千木)이라고 하는 목재가 하늘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이 치기는 고대 신사건축에서 보이는 구조물로 과거 首長이 위치한 건물을 표시함과 동시에 신성한 장소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신들의 숙소인 십구사
본전은 회랑과 목재 담으로 두겹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회랑 안에는 문을 지키는 신의 신사와 오쿠니누시의 부인과 자식을 모시는 신사, 그리고 본전의 신에게 올리는 식사를 진설하는 건물과 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담 밖에는 여러 신들을 모시는 작은 신사들이 있는데 이를 섭말사라고 합니다. 섭말사들은 신관의 조상신을 모시는 곳, 오쿠니누시의 선조(아버지)이자 장인인 스사노오를 모시는 곳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좌우로 19칸짜리 킨 신사가 있는데 이를 동·서십구사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바로 음력 11월 전국의 신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 숙소로 쓰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참배를 하면 전국의 모든 신에게 참배를 한 것이라고 하여 많은 이들이 참배합니다. 이 건물들은 모두 18세기에 재건된 것으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복원된 배전
*거대한 금줄이 달려 있는 신락전
이즈모대사의 명물로 유명한 것은 참배하는 곳 위에 걸려있는 거대한 금줄(注連縄, 시메나와)입니다. 이 금줄은 무게가 무려 5톤이며 길이는 13미터, 둘레는 9미터입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밧줄에 박아 넣는데 동전의 무게가 합쳐져서 건물의 안전이 위협받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 금줄은 보통 배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신락전(神楽殿)에 설치된 것입니다. 이즈모대사는 신관직을 세습하기 위해 이즈모대사교라는 신흥 종교를 만들어 등록했는데 그 때 세운 콘크리트 건물로 본전과 별도로 오쿠니누시를 모시는 건물입니다.
신사 경내에는 신사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보물관과 함께 시마네현에서 운영하는 고대이즈모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청동기들을 비롯해 많은 흥미로운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일본 신화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잇습니다. 전시 내용이 충실하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각종 할인이나 이벤트를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반드시 신사와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이곳 내부의 유물과 그와 연계된 고대 이즈모지역의 역사는 워낙 중요하고 할 이야기가 많으니 별도로 국보 코진다니유적(荒神谷遺跡) 출토품을 소개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라의 땅을 끌어올 때 밧줄을 메는 말뚝으로 썼다는 암초
*히노미사키신사 전경
이즈모대사와 함께 챙겨봐야 하는 곳으로는 근처의 히노미사키신사(日御碕神社)가 있습니다. 히노미사키신사가 위치한 히노미사키반도는 이즈모 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스사노오(혹은 그 자손)이 신라에서 끌어온 땅이라고 합니다. 스사노오가 자리잡은 이즈모 땅이 좁다고 느껴져 이즈모 앞 바다의 암초를 말뚝삼아 신라에서 땅을 끌어와 확장했다고 합니다. 이즈모지역과 신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즈모대사에서 버스를 타고 25~30분 정도 들어가는 이 반도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면서 파도가 몰아치는 절벽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달리다보면 움푹 파인 잡은 만 지역에 홀로 신사가 서 있는데 거의 전체인 24동의 건물이 모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히노미사키신사는 일본에서도 여러 모로 해결되지 않은 비밀을 품고 있는 신사입니다. 신사에는 두 개의 본전을 모시고 있는데 작은 언덕 위에는 상사가 그 아래 평지에는 하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몰의 궁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아마테라스가 나타나 이세신궁이 일충의 궁이라면 이곳은 일몰의 궁이라는 신탁을 내려 세우고 이후 언덕 위에 스사노오를 모셔 두 개의 본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세 이후의 전래이며 아마도 지역에서 모시는 남녀신을 각각 모신 것으로 이후 아마테라스와 스사오노로 신격을 고친 것으로 추정하고, 한국에서는 이곳이 연오랑 세오녀 전설의 장소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여러 모로 신비로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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