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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 기행 - 2. 효고현 오노시 죠도지(浄土寺)의 정토당과 아미타삼존상

同黎 2019. 6. 3. 21:26

효고현은 오사카부, 교토부의 서쪽에 위치한 현으로 우리에게는 고베시의 소제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효고현은 고베시, 더 나아가 히메지성으로 유명한 히메지시 정도가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방문지도 해안가입니다. 그러나 효고현은 지도상으로 세토 내해에서 동해를 가로지르는 내륙을 지니고 있으며 이 해안가에서 내륙의 산지는 급한 경사로 이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동해에 맞닿아 있는 단바, 타지마지역을 제외하고 전통적 효고현의 중심은 하리마 지역이며 하리마 지역에는 수많은 사찰들이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이들 사찰은 과거 서쪽의 정창원으로 불릴 정도로 과거의 모습과 유물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교통의 불편 때문에 아쉽게도 별로 소개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효고현의 모습. 가사이시라고 된 곳 아래가 오노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오노시(小野市)의 죠도지(浄土寺)는 아름다운 건물과 불상이 일치를 이르며 보존되고 있는 사찰입니다. 오노시는 고베와 히메지라는 큰 대도시 중간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이 두 도시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또 한국에도 유명한 반주주판의 고향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8세기부터 귀족과 사찰들의 영지와 별장이 많았으며 오늘 살펴보는 죠도지 역시 나라 도다이지(東大寺)의 말사에서 시작하여 헤이안~가마쿠라시대 도다이지의 영지를 관리하는 7개의 별소(別所)가 되어 엄청난 후원을 받았던 사찰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에 세워진 정토당과 그 안에 모셔진 아미타삼존상은 일본 미술사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명품으로 언젠가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노역 앞에 있는 반주주판의 기념비


죠도지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고베로 가야 합니다. 가는 방법이 다소 복잡한데 고베 지하철을 타고 신카이치 혹은 미나토가와로 가면 사철인 고베 전철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고베 전철은 고베 시내와 고베 북쪽의 베드타운을 이어주는 전철로 고베 시내에서 약 1시간을 타고 북상하면 오노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노역에서 죠도지까지는 버스 혹은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버스는 월, , , 토요일에는 하루 2회 나머지 요일은 하루 1회 다닙니다. 다만 역에서 4km 정도의 거리로 택시도 역 앞에 상주하는 경우가 많아 오전 10, 1115분 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불타는 도다이지 대불전. 무사 간의 투쟁에서 일어난 대불전의 소실은 당대인들에게 말법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죠도지는 현재 진언종에 속해 있지만 과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화엄종인 도다이지의 말사였습니다. 거기에 헤이안~가마쿠라시대 귀족들이 열광했던 아미타신앙의 영향이 깊게 반영되어 있는 헤이안시대 후기 정토미술의 화룡점정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헤이안시대에 천태종을 중심으로 말법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말법사상은 석가모니의 입적 후 3000년을 3단계로 나누어 첫 1000년은 부처의 법이 올바로 펴지는 正法시대, 그 다음은 불법와 수행자는 존재하지만 깨달음을 얻는 이는 없는 像法시대, 그리고 불법이 쇠잔해져 결국 부처의 법이 잊혀지는 末法시대로 보았습니다.

말법사상은 11~12세기 일본의 혼란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상황과 천황이 대립하고 귀족들이 대립하며 자신들의 무력 기반이 되는 무사를 후원해 무사들의 세력이 점차 커지며 이들의 대립이 빈번해지는 정치상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귀족의 장원과 사찰 영지가 지나치게 많아져 국가 경제체제의 근본이 무너지고 반란과 도적이 흔해지는 민심의 이반이 이루어집니다. 승려들은 영지를 기반으로 무장을 시작해서 국가가 통제하기 어려운 거대한 승병집단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합니다. 오죽하면 절대왕권을 자랑한 시라카와천황은 홍수로 범람하는 강, 쌍륙의 주사위, 승병만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한탄하기도 하였습니다.

말법사상은 불교 신앙과 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먼저 말법시대를 맞이하여 불법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경전과 불상 등을 땅에 묻는 경총(經塚)이 성행하여 사람들이 내세를 기약하게 하였습니다. 반면 현세의 괴로움이 죽음 이후에 극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불교가 대중화되고 어려운 불법이 아니라 염불만으로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염불수행이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천태종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던 염불수행은 이후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아미타여래가 중생을 구제하려는 本願에 전적으로 기탁하여 타력구원을 이루려는 정토신앙이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귀족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재산을 희사하여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을 모시는 거대한 사찰을 조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가마쿠라시대 아예 기존 불교 종단인 화엄종·법상종·진언종·천태종을 불신하고 아미타여래를 절대적으로 모시는 불교 혁신운동으로 이어져 정토종·정토진종·시종·융통염불종이라는 일본 특유의 정토신앙 종단이 형성되었습니다.


*국보 뵤도인 봉황당


한편 귀족들은 너도 나도 재산을 희사하여 아미타불을 모시는 대형 건물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은 우지시 뵤도인(平等院)의 봉황당입니다. 귀족의 별장을 개조해 사찰로 만든 뵤도인 봉황당은 귀족풍의 정토신앙 전통을 보여줍니다. 관무량수경 등의 내용을 참고하여 아미타불을 모신 건물 앞에는 아미타불의 자를 형상화하거나 마음 심자를 형상화한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어 극락에서 연화화생하는 불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구품극락의 아미타여래 아홉분을 한꺼번에 모습 교토부 조루리지(浄瑠璃寺)의 본당, 교토시 호콘고인(法金剛院) 등도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구입니다.


*국보 후키지 대당


한편 대중들이 모여 염불을 행하기 위해서 건축의 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기존 사찰의 법당은 안에 들어가는 인원이 제한적이었고 또 불상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내부가 어둡고 좁기 마련이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대중이 참여하며 불상 주변을 빙빙 도는 염불수행을 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신앙의 중심이 되는 가마쿠라시대 아미타당(정토당)은 천태종의 삼매수행을 위한 건물을 본따 규모가 커지고 모습도 정방형을 띄게 되었으며 채광이 용이하도록 창도 크게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상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큰 소리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치는 집단 행동이 가능하졌습니다. 죠도지 정토당 외에 교토 홋카이지(法界寺)의 아미타당,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시라미즈아미타당(白水阿弥陀堂),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의 후키지(富貴寺) 대당 등이 대표적인 예로 교토뿐만 아니라 동북, 규슈지역까지 널리 퍼져있습니다.


*죠도지 경내도



*죠도지 정토당의 모습


*죠도지 정토당 내부 평면도


죠도지는 이러한 정토미술의 역사와 특징 충실히 보여주는 가람배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술했듯이 염불수행의 기원은 천태종에 있으며, 일본 천태종은 國家鎭護에 중심을 두어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죠도지는 본당인 약사당을 동쪽에 또 규모가 똑같은 아미타당을 서쪽에 지어 동방 유리광세계와 서방 극락세계를 조화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본당인 약사당에서는 기존 천태종에서 이루어지던 천태밀교의 수법을, 아미타당에서는 대중들이 모이는 염불수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거대한 건물의 가운데에는 연못을 두어 극락세계를 표현하여 죠도지는 헤이안~가마쿠라시대 정토신앙의 여러 전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불양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도다이지 남대문 내부 구조


이러한 건축은 기술적 혁신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현재의 정토당을 지은 인물은 가마쿠라시대 승려로 도다이지의 중흥조인 주겐(重源)입니다. 진언종, 정토종, 화엄종, 천태종 등을 두루 공부했던 그는 몰래 남송으로 들어가 유학을 하고 귀국합니다. 이때 그는 송나라에서 건축을 공부해 오는데 여러 겹의 공포를 도입하고, 기둥 사이에 수평, 수직의 재료를 수십개 겹쳐서 지붕을 무게를 줄이면서도 높이와 면적을 늘리고 채광을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주겐은 미나모토씨와 타이라씨 두 무사가문의 전투로 불탄 도다이지를 재건하여 거대한 대불전과 남대문 등을 이 방식을 채택해 사용했고 때문에 이 양식을 대불양(大仏様)이라고 부릅니다. 죠도지 정토당도 이 대불양을 이용해 1칸의 길이가 6미터나 되는 정방형의 건물을 완성합니다.




*정토당 내부 아미타삼존상의 모습


*화려하게 조각된 대좌의 모습


*석양을 받은 아미타삼존상


한편 가마쿠라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佛師인 카이케이(快慶)는 이러한 건축의 요소를 십분 활용하여 공간 내부에 마법을 부렸습니다. 그는 우선 건물 중앙에 높이 2.2미터의 원형 수미단을 만들고 여기에 높이 5.3미터의 본존 아미타여래상과 높이 3.7미터의 협시보살을 조각해 모셨습니다. 본존상과 양 협시보살상은 모두 불꽃 모양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내영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배자를 압도하는데 여기에 하나의 마법이 더 발휘됩니다. 카이케이는 정토당의 채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해가 지는 시기 석양이 불상의 뒤편에서 쏟아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해가 질 무렵 정토당을 찾으면 마치 붉게 타오르는 태양빛을 타고 아미타여래가 참배자를 만나러 오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이 대단한 설계에 감명받은 이는 바로 일본 현대건축의 안도 타다오로 그는 이후 자연광을 적극 활용한 각종 건축을 내보였습니다. 정토당과 아미타여래삼존상은 건축과 조각이 합치된 모습을 보여주며 국보로써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죠도지에는 이 외에도 본당인 약사당, 하치만신사 본전과 배전, 개산당, 종루 등의 15~16세기 건물이 있습니다. 본당 약사당은 정토당과 같은 크기, 같은 규모의 건물이지만 안타깝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세기 재건한 것으로 중요문화재입니다. 이 외에도 8건의 중요문화재가 있어 오래된 사찰의 연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처의 타이산지(太山寺), 카쿠린지(鶴林寺) 등도 국보를 보유한 명찰로 비교적 쉽게 연계하여 찾을 수 있는 곳들입니다. 일본 성곽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히메지성과 성 인근의 엔교지(圓教寺) 역시 찾을만 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