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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 기행 - 4. 나가노현 우에노시 벳쇼온천의 안라쿠지(安楽寺) 팔각삼층목탑

同黎 2019. 6. 4. 22:24

이번에 찾을 나가노현은 일본 동부의 대표적인 내륙지방입니다. 나가노라는 이름 외에도 과거의 지명인 시나노(信濃)나 여기에서 파생된 신슈(信州)라는 호칭이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4번째로 넓은 면적을 지닌 현이지만 관동과 관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 가운데 들어서 있고 주요 도시는 그 산맥들 사이로 난 강과 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가장 높은 산 20곳 중 9곳이 나가노현에 위치해 있어 현 내의 교통도 불편한 편입니다. 덕분에 동계스포츠가 발달해 나가노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적이 있어 일본 내에서의 시각도 산골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나가노현은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현청소재지인 나가노시는 젠코지(善光寺)의 사하촌에서 출발한 도시로 현재 현 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 북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면 남서부에 위치한 마츠모토시는 전통적인 나가노현의 중심지로 에도시대까지는 나가노보다 훨씬 큰 도시였으며 나가노현 최초의 대학도 이곳에서 시작했습니다. 한편 공식적으로는 에도시대까지 나가노현의 중심지는 동부의 우에다시로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히 쪼그라들었지만 도쿄에서 가깝고 교통의 요지에 있기 때문에 다시 떠오르는 지역입니다. 이 외에 스와호가 있는 스와시 역시 전통이 깊은 도시로 관광휴양지로 독특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벳쇼온천역


신칸센이 지나가는 우에다역에서 작은 사철인 우에다 전철을 타면 우에다 시내에서도 10km 정도 떨어진 벳쇼온천(別所温泉)30분 만에 도착합니다. 벳쇼온천은 나가노현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며 일본 동부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온천입니다. 폐선될 위기에 처한 우에다 전철이 오직 이 온천 때문에 유지되었을 정도입니다. 벳쇼온천은 일본서기에 등장할 정도 오래되었으며 나라시대에서 헤이안시대 전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보입니다. 이후 헤이안시대 후기~가마쿠라시대에 여러 사찰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특히 가마쿠라막부의 실권을 쥐고 있던 호조씨의 별장이 들어서면서 동시에 사찰이 많이 세워져 이곳은 신슈의 가마쿠라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이 작은 지역에 국보로 지정된 목탑이 2곳이고,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도 4곳이나 있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국보 다이호지(大法寺) 삼층목탑


그러나 매우 외진 산속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곳들을 모두 돌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지역 택시업계에서는 반나절 코스로 이곳의 주요 사찰들을 모두 돌아보는 코스를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택시 1대에 2만엔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오기 어려운 이곳의 여러 사찰을 한꺼번에 돌아보고 싶지만 이곳을 찾을 당시에는 여행 막바지라 자금이 부족해 결국 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으면서도 일본 유일의 팔각탑이 있는 안라쿠지(安楽寺)만을 답사지로 삼았습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팔각목탑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벳쇼온천을 찾았습니다.


*안라쿠지 본당에 걸려있는 현판


안라쿠지는 선종인 조동종 사찰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선찰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나라시대 혹은 헤이안시대 초기에 건립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가마쿠라시대 이전의 역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사찰이 등장하는 시대는 가마쿠라시대이며 당시 안라쿠지를 (다시) 세운 승려는 임제종 승려였지만 생몰년조차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송나라에서 유학하여 선종을 배워 일본에 귀국한 유학승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가마쿠라막부를 세운 무사세력은 선종의 열렬한 신자였고, 가마쿠라에 교토 못지 않은 사찰들을 세워 이곳을 동쪽의 불교 중심지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가마쿠라막부를 세운 미나모토씨가 암살로 대가 끊기고 초대 쇼군의 처가인 호조씨가 쇼군의 섭정인 싯켄(執権)을 맡았고 그 한 일파가 이곳에 별장을 짓고 장원을 운영하며 각종 사찰을 지었습니다. 안라쿠지 역시 그 과정에서 세워진 사찰임은 분명합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2구의 승상


그러나 안라쿠지를 비롯한 이곳의 사찰들은 가마쿠라막부의 쇠락하면서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마쿠라막부를 증오하고 천황의 직접통치를 원했던 고다이고천황은 막부에 적대적이었던 무사들을 동원해 막부를 철저히 파괴하고 호조씨를 멸족시킵니다. 그러나 가마쿠라막부의 신하였다가 천황 아래로 들어간 아시키다 다카우지는 다시 천황을 배반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무로마치막부를 세웁니다. 그러나 동일본으로 갔던 정치의 중심은 다시 교토로 돌아가고 이곳은 한참 잊혀졌다가 에도시대 초기에 지역세력의 후원으로 다시 복구됩니다. 다행히도 국보인 팔각삼층목탑은 보존되었고, 가마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승려의 초상조각 2점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계단 위로 올라가면 보이는 목탑의 모습


*목탑의 전경


*목탑의 처마 모습


*목탑의 초층 내부와 대일여래상

안라쿠지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팔각삼층목탑입니다. 언덕위에 올라서서 사찰을 굽어보고 있는 이 목탑은 안에 대일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유일한 팔각탑입니다. 팔각탑은 중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고, 한국에서도 석탑으로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는 기록에 따르면 나라시대 세워진 나라의 사이다이지(西大寺)와 헤이안시대에 세워진 교토의 홋쇼지(法勝寺)에 있었다고 하며, 특히 홋쇼지의 목탑은 높이 81미터의 구층탑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탑 모두 전란으로 일찍이 소실되어 사라지고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안라쿠지의 팔각탑은 양식이 선종풍이고 삼층으로 앞선 다른 탑과는 양식을 명확히 달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남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가마쿠라시대 선종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건축양식을 선종양(禅宗様)이라고 합니다. 선종양은 중국 선종건축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전까지의 일본 건축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공포가 많아지고 화려해지면서 처마가 깊어 지고 길어지며 지붕이 높아집니다. 서까래를 평행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채형으로 배치하여 합각면의 곡선을 더 잘 살리는 것 역시 특징입니다. 실내가 넓어지고 밀교식 건축이 참배공간인 외진과 신앙공간인 내진을 나누었다면 선종건축은 반대로 내부의 가림막을 없애고 벽돌을 깐 넓은 一室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가람배치 상으로도 삼문-불전-법당-방장의 남북축을 중심으로 좌우에 선당, 종루, 경장, 동사. 고리 등을 배치하고 말사인 탑두사원을 둘러싸듯 배치하는 선종식 배치가 생깁니다. 가시적인 특징으로는 지붕의 처마가 길게 날라갈 듯이 올라가고 재료로는 초가나 나무껍질을 애용합니다. 또한 벽면에 화두창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종 모양의 창 배치하고 삼문 외에는 단청을 하지 않는 특징도 보입니다.


*선종양의 대표 건축물인 국보 코잔지(功山寺) 불전


안라쿠지 팔각삼층탑의 이러한 선종양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목탑입니다. 그런데 선종 사찰에는 목탑을 세우는 경우가 거의 없어 선종양의 목탑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탑의 양식을 바탕으로 탑의 건립시기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가마쿠라시대~무로마치시대의 설이 다양했으나 14세기 중반 이후라는 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정밀 조사를 한 결과 내부 목재에서 1289년에 벌채했다는 묵서가 나왔고, 나이테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 129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생각되어 현재 보존된 선종양 건축 가운데 最古의 건축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기존에 갈려진 선종양 건축물로는 1320년 세워진 야마구치현 코잔지(功山寺)의 불전이 최고였습니다.



*안라쿠지 팔각삼층목탑의 구조개념도. 심주가 1층 지붕에서부터 상륜부까지 연결됩니다.


팔가삼층탑의 높이는 18.7미터로 일본의 탑 가운데서는 아주 높은 편은 아닙니다. 1층의 경우 2겹의 지붕을 두었는데 이러한 차양 지붕은 일본에서는 주로 나라지역에서 발견되는 古式입니다만, 중국에서는 상당히 흔하기 때문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이 인근에는 유독 많은 탑들이 전해지고 있어 선종 신앙과 함께 기존의 헤이안 불교의 전통이 결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근에는 북향관음(北向観音)이라는 유서깊은 천태종 사찰이 남아 있어 이러한 추측에 가능성을 더합니다. 이 지역은 과거부터 일본 불교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젠코지(善光寺)가 가까이 있어 그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초가풍의 안라쿠지 본당


경내에는 에도시대 지어진 초가지붕의 본당과 경장 등이 남아있어 아름답고 한가한 풍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안라쿠지의 여러 건물들은 주요 무사들의 후원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모금으로 17~18세기에 걸쳐 조금씩 배건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아도 그 정성이 녹아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두 승상 역시 상시 공개되어 참배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옆의 북향관음이나 다른 사찰들도 함께 볼만합니다.

나가노현은 옛날부터 메밀로 유명합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절에 이르기 까지 메밀 소바집이 즐비하고 오래된 온천을 개조하여 만든 마을 역사관도 있습니다. 북향관음 등 크고 작은 사찰도 있으며 천연 족탕도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또 우에다 시내에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무사 중 하나인 사나다씨의 본거지인 우에다성(上田城)이 위치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찻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멸망시키려 할 당시 도요토미의 편에 남아 뛰어난 전략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오사카를 지킨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와 그 형으로 사나가 가문을 보존을 위헤 도쿠가와의 편에 섰던 사나다 노부유키의 운명이 갈린 곳으로 함께 돌아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