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1일 다자이후9 (다자이후 정청 유적大宰府政庁跡)

同黎 2020. 5. 23. 19:15



칸제온지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입국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비까지..

결국 예비로만 올려놨단 미즈키(수성) 오노노키(대야성)은 패스하고

다자이후 정청 유적만 잠깐 들리기로 한다.


다자이후 정청 유적(大宰府政庁跡) 입구

다자이후는 규슈에 설치되어 이곳 일대를 다스리던 지방행정기관이다. 본래 다자이후는 규슈

이외에도 주코쿠의 스오와 키비, 시코쿠의 이요 등에 설치되었는데 율령제 정비과정에서 규슈만

남았다. 규슈의 다자이후는 규슈 9개 쿠니와 이키, 쓰시마, 타네의 3도의 행정과 사법권 및 일부

외교권까지 위임받았다. 장관은 대재사로 종3위로 대납언이나 중납언이 겸직하거나 친왕이

임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차관인 대재권사가 부임했고 대재사는 부임하는 경우가 없었다.

다자이후는 무역으로 엄청나게 번성했으며 도시도 격자무늬의 조방제로 후지와라쿄와 동시대에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 백강전투 이후에는 신라나 당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인근에 대규모

산성들이 축조되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신라 등과 교류하는 곳이었다. 헤이안시대까지 번성했으나

가마쿠라시대에 이르러 호족들에 의해 장악되고 무역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후 대대로

다자이후 쇼니를 맡던 쇼니씨가 오토모·오우치 등과 전쟁을 벌이다 쇼니씨의 멸망으로 다자이후도

축소되고 완전히 하카타로 중심지가 이동하자 다자이후 텐만구의 영지가 되어 이어진다.


현재는 정청 터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이 남문 터


회랑 자리엔 나무가 심어져있다.


해자 부분


안내판


발굴사진


복원 사진

발굴 당시 다이리, 주작, 자신전 등이 새겨진 돌이 나왔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야마토가 아니라 규슈가 고대 일본 왕권의 중심지고

다자이후가 수도였다는 가설도 제기한다고


안내판


남문터


멀리 정청 정전(도부루) 터가 보인다.


거기까진 못 갔다.

에도시대에 세운 비석이 있다고


회랑 터


반대편


학교 등도 있었다고 한다.


초석


보존 과정을 알려주는 안내판


남문터

거의 주작문 급이었다고 한다.


표석


축지병 터

담이 있던 곳


멀리 보이는 정청터


이제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간다.


니시테츠 도후로마에역


여기서 텐진역으로 간다.


안내판


기차가 들어온다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렇진 않다.


하카타에 도착


이때 아직 입금이 안되서 환전을 많이 못해서 기진맥진했어도 버스를 탔다.

텐진역에서 미즈호로 가는 버스 너무 적다... 저녁이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이제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