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2일 나가사키2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

同黎 2020. 5. 24. 00:20



세트르 글로버스 하우스 호텔을 지나


오우라천주당 언덕길 앞에 있는 ANA 호텔을 지나면


언덕길이 나온다


여길 올라가는 길에 성 콜베 신부 기념관이 있길래


가봤더니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기념관이다.

폴란드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신부였던 성인은 동양 선교를 위해 일본에서 6년간 머물었는데

이 때 이곳 나가사키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폴란드로 돌아갔다가 나치에 의해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서 선종하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건물 밖에 있는 성 가족 성상


안에 콜베 신부가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데 문이 잠겨있다.


건너편에는 미술관이 있다.

어린이 미술관이라고


다시 큰 길로 나오니 멀리 천주당 건물이 보인다.


국보 오우라 천주당


옆에 있는 분메이도 본점

카스테라 중 이 집이 가장 맛있다고 들어서 하나 샀다.


천주당과 신학교, 대주교관이 한꺼번에 보이는 풍경


일본 가톨릭의 중심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오우라천주당(大浦天主堂, 대포천주당)은 과거 나가사키대교구의 주교좌 성당(현재는 우라카미 성당으로 이전)으로 막말기 개국 직후인 1865년 세워진 천주교 성당이다. 일본의 양식 건축 중 최초로 국보로 지정된 건물이다. 정식명칭은 일본26순교자 천주당으로 수호성인이 일본 26성인이다.

옆에 있는 구 라텐신학교(旧羅典神学校)는 1875년 지어진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며, 그 옆에 있는

구 나가사키 대주교관(旧長崎大司教館)은 1915년 지어진 건물로 나가사키현지정문화재이다.


전국시대에 일본에 전래된 천주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오토모 소린, 타카야마 우콘 같은 키리시탄 다이묘가 등장하고 오다의 남만 취향으로 인해

신도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주교가 잇코잇키가 되어 정권에 위협이 될 것이나 키리시탄 다이묘가 불교를 박해하는 것,

일부 선교사가 일본인을 노예로 파는 것에 반대해 선교사의 추방을 뜻하는 바테렌 추방령을

내리고 26명의 천주교인을 본보기로 나가사키에서 죽였다. 그러나 구체적이거나 강한

금교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타다·이에미츠의 에도 막부는 강력한 금교령을 내린다. 이에야스는

처음에는 별로 천주교에 생각이 없었으나 네덜란드나 영국 등 개신교 국가 상인들을 만나며

포교를 조건으로 내걸지 않는 이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러던 중 아리마 하루노부가 천주교인이라 나가사키 봉행소의 가신인 오카모토 다이하치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영지 회복을 사주한

오카모토 다이하치 사건이 일어나자 무사 계층에도 천주교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고니시 등 구 키리시탄 다이묘 휘하의 천주교도 무사 및

농민들이 일으킨 시마바라 난 때문에 막부는 경악하고 강력한 박해를 막부 내내 행함으로써

250년 간 일본에서의 천주교 정식 교계는 사라진다.

그런데 신도들은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사제 등을 뽑아 숨어서 고해, 미사, 세례

등 천주교의 의식들을 지켜갔다. 그러나 당시 라틴어로 된 각종 기도와 의식문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구전되다보니 본래의 의미는 사라졌고 사제도 동네의 어른이나 집안의 어른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변했다. 이들의 성가를 오라쇼라고 한다. 그리고 성화와 성상을 모시지 못하니 기존의

불상이나 신상의 이미지에 십자가 등을 숨기는 마리아관음 등의 성상이 나온다. 이렇듯이 숨은

천주교도를 흔히는 카쿠레 키리시탄(隠れキリシタン)이라고 하고 공식 용어로는 잠복 키리시탄

(潜伏キリシタン)이라고 한다.

이들은 일본 전국에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만들고 숨어 살았는데 특히 나가사키와 고토열도 일대가 가장 많았고 멀리 류큐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 아예 필리핀으로 도망간 경우도 있었고. 나가사키는 수만 명의 잠복 키리시탄이 있었기에 아예 나가사키 봉행소에서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서 색출하고 나머지는 후미에를 밟게 하는 것이 큰 행사였다고 한다. 우라카미 같은 동네는

에도시대 동안 4번의 대대적인 색출과 박해가 있었다.


구 나가사키 대주교관


천주교가 다시 일본에 발을 들인 것은 막말기 개국과 일불수호통상조약으로 파리외방전교회에서

1862년 요코하마 개항장에 다시 성당에 세워지면서이다. 이후 전교회의 베르나르 프티 쟝 신부는

나가사키에 땅을 구입해 1865년 오우라천주당을 세운다. 쟝 신부는 혹시 일본에 신도가 없을까

하여 괜히 거리에 나가보기도 하고 오우라천주당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성당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우라카미의 마을 사람들이 당시 프랑스 절이라고 불렸던 천주당에 들어와 구경 중

신부에게 몇 가지를 묻고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며 성모상 앞에 몰려가 기도를 했다. 이를

신도발견이라고 한다. 당시 신정부는 아직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라카미

마을의 신도 3400명을 박해하여 이들을 전국으로 유배보낸다. 결국 662명이 유배 중 죽었지만

메이지시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다시 고향으로 복귀한다. 메이지 말기 이렇게 신앙의 회복한

신도가 대략 3만명이었다고 한다.

한편 교회로의 복귀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들의 관습을 그대로 지킨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복귀를

거부한 키리시탄이 대략 2~3만명으로 생각되는데, 일본의 가톨릭 소설가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

등에 보면 이렇게 고집을 지키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현재는 거의 다 복귀하고

다만 무형문화재로 과거 관습을 지킬 뿐이다.


새로 지은 오우라 성당


국보 오우라 천주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옆에 새로 성당을 지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분메이도에 들렸다


아침 겸 점심으로 분메이도에 성당 옆에서 파는 비파 주스랑 먹는다.

비파는 처음 먹는데 달고 맛있다.


카스테라는 확실히 부드럽기보단 쫀득하고 바닥에 깔린 설탕 알갱이가 맛있다.

한국에서는 먹기 힘든 맛


들어가자


안내문


세계유산 타이틀

나가사키와 아사쿠사의 잠복키리시탄 유산 중 대부분이 섬이나 가기 힘든 반도 끝에 있고

시내에서 접근 가능한 건 나가사키 정도


세계유산 지도


개방시간


이제 들어가자


입구 옆에 있는 작은 정원


한쪽에 신도발견 기념비가 있고


각종 기념상이 모여있다.


사적 표석


우라카미의 신자들이 성모상 앞에 경배하는 순간


고양이가 돌아다니네


성당에 한국 순교성인 4위의 유골 일부가 봉안되어 있다.

안내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문 기념 흉상


이곳을 세운 프티 쟝 주교의 상


뒤편의 십자가


대주교관

현재는 박물관


천주당 정면


처음 세운 이후 신도가 늘어 한 번 증축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고딕양식을 지니고 있다.


천주당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제 성당이라는 단어도 안 쓰이고 주로 교회라는 단어를 쓰는데

여긴 천주당이라는 글씨가 건물에 붙어 있어서


성당 입구에 있는 일본의 성모

신도발견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보낸 것이다.


배관시 주의사항

탈모, 정숙 등등


성당 입구에서 바라 본 풍경

멀리 보이는 언덕이 26성인이 순교한 니시자카이다.


내부로 들어간다


성수대

세례용인 것 같다.


측랑 제대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인가?


또 다른 측랑 제대

성만찬이었던 것 같은데


성모 제대

이 성모상이 신도발견 당시 신자들이 경배한 성모상으로 소위 신도발견의 성모상이다.


큰 사진


반대편 제대

예수 성심상


제대

성 요셉인 듯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이라 벽제대이다.


이 분은 누군지 모르겠다.


정면의 신랑

중앙 제대 뒤편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되어 있다.


중앙 제대

옆으로 옛 주교좌가 있고 반대편에는 26성인의 성화와 유골을 봉안한 곳이 있다.

현재는 주교좌는 이전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1주일에 한 번 미사 체험이 여기서 열린다고 한다.


다시 밖으로 나온다.


고양이가 많네


이제 다음 장소로 간다.


바로 옆이 키리시탄박물관


라텐신학교


여기로 간다


중요문화재이다


성당 뒤편 입구로 가는 길


성구실인가

부속 건물


신학교 입구


언덕에 기대어 지은 3층짜리 거대한 건물이다.


지금은 박물관


성당의 첨탑


사실 오래된 성당이라 주교좌라기엔 조금 작다.


제의실 혹은 성구실로 사제가 들락날락하는 곳


뒤편은 증축이 된 것이라고


성당과 신학교 사이 골목


내부는 뭐 찍을 건 없다.

바로 주교관으로


현 지정문화재

승격해도 될 것 같은데


크다


언덕 아래의 길

이렇게 오우라 천주당을 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