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제

명장이 된 기와장인 - 라쿠다완 이야기

同黎 2020. 2. 8. 16:25

교토에 가면 라쿠미술관(楽美術館)이라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처음 가는 분들은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 근처에 지하철역이 좀 멀리있고, 미술관 자체가 주택가 안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거의 천엔에 가까운 비싼 입장료에 불만을 토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다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에 가까운 곳이고 봄에 가면 직접 다완을 손에 들고 감상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작지만 손님들이 끊기지 않은 곳이며 교토시에서도 대표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는 곳입니다.

즐거울 락자를 쓰는 이 미술관의 이름은 교토를 대표하는 다완 라쿠야키(楽焼)와, 이 라쿠야키를 대대로 만드는 라쿠가문(樂家)의 이름에서 따온 곳입니다.

현재 라쿠다완을 만드는 인물들은 많지만 그 예술성을 인정받는 곳은 인간국보로 지정된 교토 라쿠 가문과 그 분가인 가나자와의 오히(大樋)가문 둘 뿐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도공, 혹은 다완사이지만 이들의 도자기는 다른 다자기와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그 출신도 정통 도공이 아닌 본래 기와를 빚던 기와장인 출신입니다. 이들이 전통의 기와장인이 된 것은 센노 리큐와의 인연 때문입니다.

라쿠 가의 초대 초지로가 만든 이채 사자상. 본래 거대한 저택이나 성의 지붕 끝을 장식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문화재


일본의 다도를 완성시켜가던 센노 리큐는 다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도다완 등은 이미 그 스승대부터 전해져 유명했지만 그가 보기엔 그 외에도 좋은 다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선다완(고려다완)을 정리하고 품평합니다. 예컨대 그가 발견한 다완 중 하나인 토토야다완(斗斗屋, 漁屋)은 븕은 바탕에 푸른 점이 점점이 박히 아름답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도든 토토야든 모두 일본에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정호, 두두옥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토토야 다완은 먼저 토토야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에 맞춰 한자를 여러가지고 붙인 것입니다. 이도도 마찬가지로 생각됩니다. 

어쨋든 리큐는 고려다완을 집대성하여 정리하지만 조선 다완은 전량 수입품이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고 중간 상인의 농간으로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또한 원하는 다완을 주문하여 생산하고 싶어도 방법이 어렵고(불가능 한것은 아닙니다) 과정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리큐가 추구하는 일본의 미와도 정확히 합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리큐는 초지로라는 기와 장인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쿠로라쿠다완(검은 라쿠다완) 명 모즈야 쿠로. 초지로의 작품으로 센노 리큐가 소장하다가 사위에게 전한 것입니다.


초지로(長次郎)는 중국 혹은 조선 출신의 기와 장인의 아들입니다. 어디 출신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족보를 따져 조선 출신이라고도 하고, 작품을 따져 보아 남중국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교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거대한 재개발 공사 중이었습니다. 리큐가 그 공사의 건설 책임자고 초지로는 기와를 굽던 인물이었는데 리큐는 초지로를 만나 문든 전통적 도자기가 아닌 기와 빚는 방식으로 다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던 도공 다나카 소케이(田中宗慶)를 초지로에게 보내 다완 제작을 의뢰하고 두 사람의 연구 결과 검은 라쿠다완(쿠로라쿠다완)이 탄생합니다.

쿠로라쿠다완(검은 라쿠 다완) 명 무키구리. 중요문화재. 특이한 사각형의 다완으로 리큐가 사용하던 것입니다.


초지로가 처음 탄생시킨 다완은 칠흙같이 검은 쿠로라쿠다완입니다. 라쿠다완의 특징은 보통 물레를 돌려 성형하는 일반 다완과는 달리 흙을 손과 주걱으로 빚어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다완보다 두껍고 또 형태가 똑 떨어지기 보다는 약각은 굴곡 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라쿠다완은 크게 쿠로(흑색), 아카(적색)이 대표적이고 그 밖에도 백색, 녹색, 재색 등이 있는데 색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리큐는 그 중에서도 검은 다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나와 남의 경계가 사라지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검은색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박미를 가장 사랑합니다. 쿠로라쿠다완은 철분이 든 유약을 수십차례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하여 이후 1000도씨의 가마에서 소성합니다. 그리고 유약이 녹은 다은 갑자기 다완을 꺼내 급냉시켜 검은색을 완성시킵니다. 그 과정에서 유약이 타거나 터진 자연스러운 느낌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붉은 다완인 아카라쿠다완: 초지로 작 명 무일물. 중요문화재


반명 붉은 다완인 아카라쿠다완은 방법이 다릅니다. 일단 다완에 적토를 입힌 다음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 이후 투명한 유약을 입혀 800도에서 소성합니다. 식히는 방법도 급랭이 아니라 천천히 식힙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검은 다완이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 화려한 아카라쿠다완을 즐겼다고 합니다. 다만 초지로까지만 해도 이 아카라쿠다완은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봅니다. 너무 거칠고 투박했기 때문입니다.

다나카 소케이 작 쿠로라쿠다완 명 이치라이 

라쿠(樂)의 도장을 처음 굽에 새긴 작품

다나카 소케이와 조치로는 친해져 혼인관계를 맺게 됩니다. 소케이의 손녀딸이 초지로와 결혼하는데 아마 후처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초지로가 소케이보다 먼저 죽고 그 일을 이어받는 자식이 없어 라쿠가문의 2대는 바로 다나카 소케이의 장남에게 돌아갑니다. 

하여튼 소케이의 노력에 따라 라쿠다완은 널리 알려지는데 이때까지는 사실 라쿠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다완을 보도 마음에 들어 자신의 전용 다완으로 사용하며 교토에 있던 히데요시의 저택 취락제(주라쿠다이聚楽第)의 가운데 글자인 라쿠(樂)자를 새긴 도장을 하사하며 굽에 찍도로 하면서 라쿠다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라쿠다완을 대대로 만들게 되는 다나카 소케이와 초지로의 집안도 성을 라쿠라고 바꾸게 됩니다. 이후 이들은 대대로 이름을 라쿠 키치자에몬(樂吉左衛門)이라고 하였으며 현재 16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쿠 키치자에몬은 현역일 때 사용하며 은퇴하면 이름을 호로 바꾸고 자신의 후계자에게 키치자에몬이라는 이름을 물려줍니다. 작년 7월 15대 라쿠 키치자에몬이 은퇴하며 이름을 지키뉴(直入)라고 바꾸었고, 1981년생 아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습니다.

혼아미 코에츠 작 쿠로라쿠다완 명 우운(雨雲). 중요문화재


라쿠다완의 변화는 3대 도뉴(道入)과 그 스승 혼아미 코에츠(本阿弥光悦)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혼아미 코에츠는 본래 일본도를 감정하고 연마하던 인물로 대대로 그 일을 하였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도검 감정가로 일하였으며 지금도 그 후손이 일본도 감정과 연마에 있어서 인간 국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에츠는 도검 뿐만 아니라 서예, 정원, 목공예와 칠기, 건축 설계, 꽃꽂이 등 당대의 교양을 모두 섭렵한 예술가입니다. 그가 만든 작품 중 직접 만든 다완과 벼루상자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서예작품과 그림, 다완 등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혼아미 코에츠는 직접 다완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라쿠다완의 기벽을 얉게 빚어내고 대나무 칼로 유약이나 흙을 긁어내고 잘라내며 표면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특히 새로운 기법을 창간해 그동안 거품이 일거나 타곤 했던 유약을 매끄럽고 빛나게 구워냄으로써 라쿠다완의 새로운 장을 열계 됩니다. 그에 품에서 나온 다완은 검은색이 얼마나 화려한 색인지를 라시 알게 해줍니다.


혼아미 코에츠 작 아카라쿠다완(붉은 라쿠 다완) 명 카가. 중요문화재


개인적으로 혼아미 고에츠의 가장 명작은 이 붉은 라쿠다완인 카가입니다. 실물을 배관햇을 때 정말 놀랐는데 작은 다완 하나에 들어간 치밀한 배려와 기교에 감탄했습니다. 붉은 색을 확실히 내었고 대나무 칼로 곳곳을 손보고 유약의 두께를 조절해서 다양한 발색을 내었습니다. 


혼아미 코에츠 작 아카라쿠다완 명 오토고젠


현재 일본에서 만든 다완 중 단 2점만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혼아미 코에츠의 작품이라는 것은 그의 예술적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예 그에게 교토 북쪽의 마을 하나를 하사하여 예술활동에만 전념하게 했고, 현재도 그 마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3대 라쿠 도뉴의 작품 쿠로라쿠다완(검은 라쿠 다완) 명 아오야마


코에츠에게 지도를 받은 라쿠가의 3대 도뉴(道入)은 그의 영향을 받아 표면이 반짝이고 장식성이 강한 라쿠다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유약을 긁어내거나 다른 유약을 발라 다양한 색과 무늬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라쿠 도뉴 작 아카라쿠다완(붉은 라쿠다완) 명 승정

금박을 붙여 화려한 효과를 내었습니다.

15대 지키뉴(直入)의 작품 쿠로라쿠다완


라쿠가문은 흥망성쇠를 겪기도 하고 9대 째에는 텐메이의 대화재로 공방과 주택이 모두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센노 리큐 후손들의 후원을 받아 다시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최근 은퇴한 15대 지키뉴는 유럽에서 유학한 후 라쿠다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15대 지키뉴의 작품들


다만 지나치게 현대적 조형미 덕분에 유럽과 서구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은 늘 생각해야죠


저도 우연히 15대의 초기 작 즉 일본 전통 그대로의 라쿠다완 한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직접 잡아보면 묵직하고 그 심연에 가까운 검은 빛에 마음이 홀리곤 합니다. 리큐가 빠져들었던 라쿠다완의 매력이 그런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