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1963년 3월의 편지. 체게바라가 피델에게 쓴 편지

同黎 2013. 3. 8. 01:40

피델

지금 이 시간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오른다네,
자네를 마리아 안토니아 집에서 처음 만났던 때와
자네가 나에게 자네 그룹에 합류하기를 청했을 때,
그리고 우리의 여정을 준비하는 동안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에 대해,
우리가 자기의 죽음을 대비해
누구에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할지를 미리 말했을 때,
이 가능성은 갑자기 우리 모두에게 현실로 나타났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진실로 현실임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혁명을 할 때-그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면-우리가 승리할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 말일세. 실제로 수많은 동지들이
혁명에 목숨을 바치지 않았는가.

오늘에는 이 모든 것들이 덜 극적으로 보이네.
우리가 더욱 성숙했기 때문일테지만, 그러나 또한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쿠바 땅에 국한된 쿠바 혁명에서 내 몫을 다했다는 느낌이네.
이제 나는 자네와, 동지들과,
그리고 이제는 나의 것이기도 한 자네의 인민들과 작별하려 하네.
나는 내가 점하고 있는 당의 직책과 장관직과 사령관의 직위,
그리고 쿠바 시민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네.

이제 나와 쿠바를 잇는 어떤 법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네.
오직 공문서 따위로는 파괴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관계만이
나에게 남을 것이네.

내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건대,
나는 지금까지
정직하게 또 한결같이 혁명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다만 하나 내 잘못이라면 시에라마에스트라 시절
처음부터 자네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자네의 지도자적 자질과 혁명가적 기질을 좀더 빨리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
나는 경이로운 세월을 살았고,
미사일 위기가 계속되는 최근에까지 자네 곁에서 우리 인민과 함께한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네. 이런 경우에는 어떤 국가원수도 자네만큼
영민하게 대처할 수 없었을 터,
보고, 사고하고, 위험과 원칙을 형량하는 자네 뒤를 주저 없이 따른 것이 자랑스럽네.
지구상의 다른 땅들이 나의 미천한 힘을 요구하는군.
쿠바의 지도자로 남을 자네의 책임이
자네로 하여금 포기하게 할 수밖에 없게 하는 그것을
나는 하려 하네.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게지.

내가 기쁨과 고통이 교차하는 가운데
떠난다는 걸 이해해 주게. 나는 여기에 건설자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망을,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남겨두고 가네.
나를 아들로 받아준 인민의 곁을 떠나네. 내 정신의 한쪽을 남겨두겠네.
새로운 전장에서 자네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을 간직하겠네.
우리 인민의 혁명의식과 내 의무의 가장 고결한 부분을 완수한다는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간직하겠네.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그곳에 이들이 모두 함께할 것이네.

내 아픔을 쉽게 치유하고 위로하는 바는 이것뿐일세.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쿠바에 대한
모든 책임을 벗고,
오직 이상형의 쿠바만을 기억하겠네.
그래서 다른
하늘 아래 내 최후의 시간이 도래한다면,
내 마지막 생각은 쿠바 인민들에게,
특히 자네에게 향할걸세. 자네의 가르침과 자네의 모범에 감사하네.
내 행동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충실하게 간직하려 노력하겠네.
나는 늘 우리 혁명의 대외관계에 집착하곤 했지.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언제나 쿠바 혁명가의 책임을 완수할 것이며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네.
나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에게 어떤 물질도
남겨주지 않을 터,
이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그들이
먹고, 교육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것이기 때문일세.

자네에게, 인민에게 할말이 많았는데, 그것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찌 말로써 다하겠는가.
종이만 더럽힐 뿐이겠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뜨거운 혁명의 열기로 얼싸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