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김진숙지도위원이 박근혜에게 보낸 편지

同黎 2013. 3. 8. 01:50

2005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편지를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읽는다.


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로보트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린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는데,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 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의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는데,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근혜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영애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 하오.

그 이후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씨.진지하게 묻겠소.

50년도 진즉에 넘어 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러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핏하면 우는 못나빠진 사람들이오.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 탓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술만 먹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배고프면 전화하거라 무력한 당부를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찔찔 짜는 사람들이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부터 받았던 상처 탓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씻기고 재워놓고는 그 아이의 성마른 이마 위에 눈물을 떨구는 그런 사람들이오.

스승의 날.그 아이가 제 손으로 꼬깃 꼬깃 접어 책상 위에 놓고 간 종이학 천 마리를 품고는 기어이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대책없이 여려빠진 사람들이오.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 온 아이를 보며 자신의 멀쩡한 손가락이 죄스러워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거리는 때때로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오.

이 넓은 세상에 아이에게 남았던 한 점 혈육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빈소에서 문상객 노릇에 상주 노릇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유골을 흩뿌리는 법까지 가르쳐야 하는 그런 전천후의 선생들이오.

박근혜씨.다시 진지하게 묻겠소.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본 적이 있으시오?

여태껏 살면서,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제 발로는 서울구경 한 번 못해 볼 장애아이들을 데리고 제 돈들여 홍성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선생들이 있는 조직이 전교조요.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를 위해 일요일 제 시간 흔쾌히 바쳐 제빵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물어 물어 기꺼이 발품을 파는 선생들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전교조요.

자기 집처럼 편안해야 아이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제 집에 있는 커텐 뜯고 액자 떼어다 상담실을 꾸미고,난로 하나를 상담실에 놓기 위해 교장실 행정실을 겨울이 다 가도록 드나들며 수십장의 똑같은 공문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 돈으로 난로를 들여놓는 선생들이 조합원인 조직이 전교조요.

왜 그런 걸 자기 돈으로 하냐고 묻고 싶소?

근혜씨가 장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날 세워 투쟁하게 될 예산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그런 힘없는 예산들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근혜씨는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참 근심이오.

어떻게 하면 산만한 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일까 제 돈,제 시간들여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컴퓨터 게임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우리 놀이와 우리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단체들을 찾아다니고,퇴근 후에는 이런 저런 교과 모임을 일주일에도 두어 차례,쉴 틈 없는 각종 연수에 방학이 짧은 게 전교조 선생들이오.

그래서 전교조는 안 무너져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선생들을 근혜씨 작은 아버지가 1500명이 넘게 학교에서 쫒아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그렇게 사는 게 선생의 삶인 줄 아는 선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패대기를 쳐가며 닭장차 차떼기로 실어 나르고 징역을 살게 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근혜씨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를 비롯하여 비리의 종합셋트 같은 사학에서 눈 밝은 선생들을 그렇게 짤라 냈는데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해서 17년 째 "계란이 왔어요.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가 틀릴 때마다 한대 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엄마를 찾아 큰 고무신에 작은 발이 자꾸 미끄러지던 논둑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논둑길을 비칠거리며 저렇게 한참을 걸어오는지 알면서도 모포기만 헤집던 엄마의 보푸레기처럼 살껍질이 일어난 새까만 목덜미에 흙을 집어 던지며 울어본 날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소풍 날.너 때문에 소풍도 못가는 거..우리 같이 죽을래? 눈만 꿈뻑거리던 애꿎은 소를 쥐어박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외양간이 텅 비어 있던 날.소가 매어있던 기둥을 쓸고 또 쓸며 미안하다.진짜루 미안하다.소야..울며 불며 소한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여름내내 복숭아 밭에서 봉다리 씌우고 절 앞에서 아이스케키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울에 엄마 털신을 사들고 신작로를 한 달음에 내달려보지 않은 자가 참교육이 뭔지 어찌 짐작이나 하겠소?

근혜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거요.

학교마저 병영을 삼았던 근혜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테고,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시는,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 할 줄 알며 나눌 줄 아시는 그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굽혀 내려다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소?

우리 아이들..부디 진심으로 지켜주시오.

생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농약을 마시거나..투신을 하거나..맞아 죽거나..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은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그 올망 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 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 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그 아홉 살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대물림 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나간 공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알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 하우스에 개와 함께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들고 찾아가야 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건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건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포악한 보모의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 이었소.

근혜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거요.

내심으로야 이왕 나간 김에 물대포도 맞아보고 방패에도 찍혀보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늘그막에나마 철이 좀 들려나 싶기도 하지만 무현씨가 연정을 품은 이에게 그럴리는 만무할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한겨울에도 치마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근혜씨도 이 나라에서 60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