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6차

폭설의 간사이 - 4일 우지1 (미무로도지三室戸寺)

同黎 2014. 6. 10. 03:46



4일째 아침이 밝았다. 김쌤은 늦잠을 자서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나와 노준석만 우선 길을 나선다.

눈을 뜨니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최소한 15센치가 내린다더라.


눈이 귀한 교토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이 여행기의 제목이 된 폭설의 교토 여행이 시작되었다.

교토에 와서 폭염, 폭풍을 만났고 이제 그 힘들다는 폭설까지 만났으니

나의 일본여행기도 꽤나 파란만장하다.


첫 목적지인 미무로도지로 가는 중. 케이한을 타고 가다가 우지선으로 갈아탄다.


미무로도지에 도착


눈이 계속 펑펑 내리고 있다.


설국도 생각나고 러브레터도 생각나고

운치는 꽤나 있다.


철도 건널목의 뎅뎅거리는 소리와 몇 없는 사람들, 그리고 작은 역의 눈 내리는 풍경은 꽤나 아름답다.


역 앞에는 미무로도지로 가는 길 표지판이 있다.

약 1km의 거리...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폭설이 내려서 거의 30분이 소요된 것 같다.


사진을 못 찍었는데, 아침 일찍 나와서 역 앞에 있는 마트에서 도시락을 샀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마트에서 직접 구워서 파는 계란말이도 하나 샀다.

계란말이 하나가 500엔이나 해서 망설였는데 나중에 먹으니 무려 장어가 들어있는 꿀맛 계란말이였다.

걷다 보니 표지판이 나온다.


서국 관음영장 33개소의 10번인 미무로도지(삼실호사)


눈길을 헤치며 직진 직진


미무로도지로 가는 버스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평일에 4대, 휴일에 8대라니...


개울을 따라 걸으면서 마트에서 산 장어초밥을 먹는다.


꿀맛


눈이 내려서 어디 앉을 곳도 없어 걸어가며 먹는다.

노준석이 우리가 이러고 산다며 낄낄거렸다.

참 고생스럽고 어처구니 없는 기억이지만 그 때가 그립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미무로도지 코앞에 도착


동백나무 담장을 따라 들어가면 미무로도지가 나온다.


눈이 밟으면 바로 녹을 정도로 축축하다.

굳이 제설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덕분에 여행자는 고생이다.


돌아갈 수 있나 걱정이 될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린다.


어찌되었든 간에 드디어 도착


노준석은 셀카


왜냐면 내가 다시 걸어내려가 사진 찍어주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무로도지 입구를 지나면 이렇게 또 길이 펼쳐진다.


좌우로는 높은 전나무가 꿋꿋하게 서 있다.


이 눈에도 동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겨우살이도 보인다.


드디어 산문에 도착


눈물난다.


노준석은 다시 셀카

뒤로 매정하게 돌아선 내가 보인다.


수국 포스터와도 다시 한 번 셀카


산문을 지나면 오른편 아래로 거대한 정원이 펼쳐진다.

저것이 모두 수국나무이다. 


미무로도지는 여름의 수국으로 엄청 유명한 절이다.



대충 요런 느낌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눈에 덮여있는 수국 정원을 뒤로 하고 계단 위에 있는 본당으로 향한다.


먼저 간 나의 발자국


뒤돌아본 걸어온 자국


우지 지도


삼실호사(미무로도지)의 유래를 설명한 패널들

미무로도지는 현재 본산수험종에 속해 있는 별격본산이다.

본산수험종은 요시노산의 산신과 석가여래의 합일체인 장왕권현을 본존으로 모시는 일본 고유의 종파이다.


전설에 따르면 덴지천황의 손자인 고닌천황(광인천황)이 황자였을 당시 야밤에 궁궐로 금색의

서광이 비치자 이를 후지와라노 이누카이에게 시켜 찾게 했는데, 그가 여기에 오자 강에서 높이

2장의 천수관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후지와라노 이누카이가 물에 뛰어들자 1장의 연꽃잎이 흘러나와

1자 2치의 작은 관음상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두 개의 불상을 봉안한 곳이 바로 미무로도지인데,

2장의 큰 불상 안에 1자 2치의 작은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그 후 미무로보지는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편을 들었다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에도시대 후기의 것들인데, 이때 절대 비불인 2장의

천수관음상을 불타, 새로 조성하였으나 이 작은 1자 2치의 불상은 아직도 그대로라고 한다.

대충 추정하건데 아스카시대 양식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경내 안내도


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변재천과 동알시되는 우가신의 괴기한 신상이 있다.

키코지에서도 본 놈이다.


미무로도지 설명문


눈 오는 미무로도지 본당이다.

전설만큼 관음보살의 성지로 유명하다. 이런 날에도 참배객이 있었다. (우리 빼고)


연꽃을 키우는 수조엔 눈만 쌓여있다.


멀리 삼층탑이 보인다.


적막한 가운데 눈만 내린다.

안에 있는 본존은 절대 비불로 2012년 한 번 공개되었다고 하지만 사진은 없다.



어렵게 구한 전립상의 사진

아스카시대의 양식이 엿보인다.


그 밖의 불상들

아미타여래 삼존상

헤이안시대, 중요문화재


비사문천상

헤이안시대, 중요문화재


세이류지식 석가여래상

헤이안시대, 중요문화재


부주(浮舟)관음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관음상

헤이안시대


관음보살의 진언이 쓰여진 나무기둥


소다. 어떤 백성이 관음에게 빌어 자신이 가진 약한 소가

지역 소싸움에서 우승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그런 전설이 담긴 조각

만지면 승리한단다.


이건 토끼

우지 지역은 고대 오진천황의 아들인 우지노와키이라츠코(菟道稚郎子)라는 양반의 궁이 있던 곳이다.

우지라는 지명도 바로 여기서 온 것. 그때 그 왕자를 우지로 인도한 것이 토끼라고 한다.

저 공 같은 것 구멍 안에는 달걀모양의 돌이 있는데 만져서 세우면 복이 온다고...

미친놈들...


공경이라고 쓰여 있는 빗물받이 함


본당 앞

참배 중


여러 현판이 가득 달려있다.



본당 외진에는 조선종의 용두라는 요상한 물건이 있다.

음통(혹은 음관)이라고 불리는 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종이 분명한데

조선종인지 고려종인지는 모르겠다. 종이 왜 이리 처참한 모습으로 남아 있나 했더니 사연이 이렇다.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붙은 미무로도지를 불태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인 마스다 나가모리인데,

이 자가 절을 태우면서 이 종을 몰수한 뒤 용두 부분만 잘라 장식물로 썼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큰 병에 걸리자 결국 종을 훼손한 벌이라고 생각하여 이 종을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화가 난 절에서는 당연히 잘라진 종 따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결국 마스다 나가모리는

거대하게 제를 지내고 매년 100석을 절에 시주하기로 하고 겨우 종을 돌려보내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종의 용두를 쓰다듬으면 병이 난다고...

정말 뭐든지 돈이 되는구나.


먼 곳까지 와서 이제는 장난감이 되었으니 애처롭다.

근데 왜 굳이 용두만 잘랐을까. 잘린 흔적을 보면 노력이 가상하긴 하다.


본당 내부

잘 안 나온다.


본존 천수관음상 현판


본당 바로 옆에는 아미타당이 있다.

에도시대의 건물로 교토부 문화재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아미타당인 동시에 정토진종의 교조인 신란의 아버지 무덤이란다.

근데 전해지는 말이라 정확하지는 않다. 신란의 본성인 히노씨의 세력지가 우지였으니 그럴싸하다.


겨우살이


삼층탑


역시 에도시대의 교토부 문화재이다. 조금 떨어져 있는데 가기 어려웠다.

본래 다른 절의 탑이었는데 메이지시대에 사서 옮겨왔다고 한다.


시주한 사람들 이름을 적은 비석


풍경


아미타당으로 복귀


영보전

당연히 이런 날씨에 열리지 않는다.


매월 17일에만 연다고 한다.


배관료 300엔


본당 뒤의 십팔신신사

시대는 잘 모르겠으나 단아한 신사로 중요문화재이다.



석등과 함께

18명 신을 한꺼번에 모셨다.


옆의 섭사들


석등과 함께



이렇게 폭설 속의 첫 목적지 미무로도지 답사가 끝났다. 신발이 젖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