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6차

폭설의 간사이 - 5일 아스카6 (다치바나데라橘寺, 가와라데라川原寺)

同黎 2014. 6. 20. 02:58



이렇게 내려오면 뭐랄까 오리지날 아스카가 펼쳐진다.

이 일대가 아스카 궁궐 유적으로 전체가 보존지구이다.


멀리 타치바나데라(귤사)가 보인다.


쇼토쿠태자의 탄생지라는 표석

이 일대가 그가 태어난 타치바나노미야(귤궁)이었으며 후에 태자가 궁을 사찰로 바친 것이라고 한다.

본래 백제관음상도 여기에 모셨다고 전해진다.

여러 번의 실화로 가마쿠라시대 이후 점차 몰락했으며 지금은 천태종 사찰이다.



쇼토쿠태자 탄생지 표석


들어가는 길


다치바나데라의 표석


그렇게 심한 언덕은 아니다. 진짜 야트마한 언덕


입장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시대 말기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중문 터가 보인다.

타치바나데라에는 군데군데 예전의 유적들이 남아있다.


멀리 본당인 태자당이 보인다.


종루


타치바나데라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안내판

발굴조사가 제대로 안 되었을텐데 그래도 어느 정도 밝혀는 놓았다.


오층탑 터

가운데 심초석이 눈에 덮여 잘 안 보인다.


금당 터


이건 왜 찍었지

일본식 전통 창고


먼저 아미타당으로 간다.


아미타당 내부

근년에 지은 건물이다.


연화총


여기가 참 흥미로운데 쇼토쿠태자가 승만경을 강의하고 연꽃을 묻은 곳이라고 한다. 

그게 중요하다기 보다는 이 화단이 다이카 개신 당시의 토지 기준인 1무의 넓이라고 전한다.

약 100평방미터 정도 된다고

뒤에는 귤나무에 귤이 달려 있다.


본당으로 간다.


두 번째 방문이다. 이렇게 또 올 줄이야

그것도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본당인 태자전 정면


본당 앞에는 쇼토쿠태자가 타고 다녔다는 말의 청동상이 있다.


태자전으로 올라간다.


내부에는 무로마치시대에 만들어진 쇼토쿠태자의 상이 모셔져 있다. 

일본 천태종에서 쇼토쿠태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비록 성덕태자와 천태종 개창은 수백 년의

시대 차이가 있지만 쇼토쿠태자가 법화경에 주석을 달았다고 전해지며, 법화경은 천태종의

소의경전이기 때문에 일본 천태종에서는 쇼토쿠태자를 천태종의 조사로까지 보고 있다.

현재 다치바나데라가 천태종이 된 이유일 것이다. 이 상은 성덕태자가 승만경을 강의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데, 운이 좋아 가까이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중요문화재이자 비불인 일라상

일라는 아버지 시대에 한반도로 도해하여 백제왕을 섬겼다고 한다. 백제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일본인인데 백제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귀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벼슬은 달솔에 달했다.

그 후 다시 귀국하여 벼슬을 살았는데 정보 누출을 걱정한 백제인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진언종 이전 고밀교의 원류로도 생각된다.

정말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이 성호사설에 등장한다... 미신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본당 밖에는 또 빈도로존자가


관음당으로 간다.


안에는 여의륜관음상이 모셔져있다.


가마쿠라시대의 작품으로 중요문화재이다.


본당 뒤편에는 아스카시대의 조각 중 하나인 이면석이 있다.


기념사진


얼굴이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선한 부분



악한 부분

사실 아직도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모른다.


당시 일본의 기술로는 다루기 어려운 매우 단단한 화강암을 조각했고,

또 조형상으로도 전후에 유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아스카의 돌조각들은 항상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뒤편의 작은 신사


멀리 아스카의 산자락이 보인다.


이제 절을 나서려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사진


절을 나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카와라데라로 가려 한다.



큰 길로 나가 건너면 바로 가와라데라가 나온다.


길을 건넌다.


길 건너기 전에 있는 귤사의 표석


저 앞이 카와라데라의 대문터이다.

뒤편의 건물은 구후쿠지(홍복사)라는 절인데, 저 자리가 바로 가와라데라의 중금당 터이다. 카와라데라는

아스카데라, 아쿠시지(약사사), 다이칸다이지(대관대사)와 함께 아스카 4대 사찰이었다. 덴지천황의 명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하며 본래 사이메이천황의 궁터로 생각된다. 다른 세 절이 모두 나라로 이전했으나

[아스카데라-간고지(원흥사), 야쿠시지-야쿠시지(약사사), 다이칸다이지-다이안지(대안사)]

카와라데라만은 이전하지 않았고 헤이안시대까지 번영한다. 하지만 헤이안시대 말기 화재로 전소되고,

이후 복구되었으나 무로마치시대에 다시 전소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역사기록이 별로 없다.


3차 여행기 참조

http://ehddu.tistory.com/275


회랑 터

눈에 덮여 잘 안 보인다.


탑지


엄청 큰 절이었다는데...

서금당 터


서금당 터로 보인다.



중문 터


회랑 터


다시 탑지


눈에 심초석이 다 덮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금당 터가 있는 구후쿠지로 간다.


입구


가와라데라라고 아예 이름을 붙였다.

법맥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나 보다.


홍법대사를 따르는 절이라는 표석

진언종 사찰이다.



카와라데라 터라는 표석


입장


본당


앞에는 가와라데라에 대한 설명과 가람배치 설명문이 붙어있다.


본당 안에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카와라데라의 헤이안시대 사천왕상 중 다문천과 지국천이 모셔져있다.

그러나 이런 날 누가 오리라고 생각 했는지 아무리 불러도 사람이 없다.



두 개의 사천왕 상

헤이안시대 전기


식당도 겸하고 있나보다.


건물 뒤편에는 홍법대사당이 있다지만 관심의 대상은 아니고


오히려 마당에 흩어져있는 거대한 주춧돌들이 눈에 띈다.


한 편에는 여러 개의 부도를 합쳐 만든 것 같은 탑도 보인다.


구후쿠지 앞에서 본 가와라데라 터


다시 절을 나선다. 이제 아스카를 슬슬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