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5 3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7일 법원사法源寺

이 번에 온 곳은 법원사라는 사찰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진 거대한 영벽이 보인다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석판 법원사(法源寺)는 북경의 사찰로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고 오면서 죽은 병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하면 측천무후가 민충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안사의 난 당시 순천사로 잠시 바뀌었다가 당말 소실 후 다시 민충사로 바뀌어 재건하였다. 이후 오나라 때 유주 대지진으로 완전 소실된 것을 복구했고 금나라 때 송흠종이 이곳에 갖혀 있었다고 한다. 원말 명초 때 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정통제가 복구해 숭복사로 개칭했고 옹정제 때 대수리를 하면서 황실의 율종사원으로 황제에게 계를 전수하는 곳이 되어 법원사라고 개명하였다. 중화민국 시절에 법원사는 북경에서 가장 큰 사찰로 자리잡았고 신중국 이후 중..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7일 천단天坛3

천단에서 마지막으로 신악서에 간다신악서(神乐署)로 읽어야 할지 신락서로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곳이 음악과 무용을 담당하던 곳이니 악이 맞을 것 같다. 신악서는 명 영락제 때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도관이었다. 즉 진무대제 제사를 지낼 때 가무를 동원하는 곳으로 내부에 약방 등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는 이름이 신악관이었는데 건륭제는 이를 신악서로 바꾸고 제례악을 훈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장악원과는 다르게 도교적 성격이 일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도교 중 선진파라는 종파가 많이 개입했다고이후 8개국 연합군의 병참기지로 만들어지며 신악서를 해체되었고 원세개는 이곳은 임예시험장으로 사용하였다. 일본군이 북경을 점령한 후 군대를 주제시키며 여러 화학, 의학 실험을 했다고 한다. 이후 신악서는 민가로..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7일 천단天坛2

이제 다음 장소로 갈 차례 기년전 정면 매점에서 문혁 판화를 이용한 포커를 판다세상에 기년전 옆문 기년문 정면세칸짜리 장대한 문이다 여기서 황궁우까지의 길은 도로 같지만 사실 지면에서 떨어져있는 다리로 단폐교라고 한다360미터나 되는 다리로 신로와 어로, 왕공대신이 다시던 왕로가 있다 단폐교 중간에 있는 이상한 건물 단폐교 안내문만 있고 다른 건 없는데 가 보니 매점이다아마 대기하는 장소 같은데 이런 걸 지어버리다니안내문 설치하고 좀 정비하지 황궁우 권역이 보인다 황궁우 북문인 성정문 크다 성정문 간촐하다본래 묘단사우의 건물은 간소해야 하는 법이다 황궁우 뒷면 둥그런 담에 둘러쌓인 1층짜리 원형 건물이다 거대한 측백나무 구룡백이라고 하는 나무수령 500년 안내문 황궁우에는 담이 있기 때문에 한바퀴 돌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