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조선

우리집 족보는 진짜일까?

同黎 2012. 7. 27. 02:05

족보는 아직까지 많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우리 집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 우리 조상은 진짜 나의 조상일까? 족보가 있으면 양반이라는데 나는 과연 양반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신분제사회가 철폐된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꽤 많은 관심의 대상이며, 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종친회, 대종회 등등이 꽤 강력한 집단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족보와 성에 관해서 아주 간략하게 다루어 볼까 합니다. 이번 시간에 다루지 못한 내용은 다음 강의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래 姓과 氏는 다른 의미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성은 일종의 종족을 의미합니다. 주나라 왕족의 성은 희(姬)이고, 태공망의 성은 여(呂)인데, 이는 종족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씨는 성보다는 아래의 개념이지만 꼭 하위개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씨는 직분이나 봉읍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사마(司馬), 유하(柳下) 등등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성은 다르지만, 직분이 같거나 봉읍이 같으면 씨가 같을 수는 있습니다. 즉 희성의 사마씨와 여성의 사마씨가 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내려오면서 차츰 성과 씨를 구분하는 것이 흐려졌고, 이제는 성씨가 똑같이 Family name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성씨유래와는 달리 한국의 성은 대부분 고려 초기에 이루어진 토성(土姓) 분정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신라의 박, 석, 김 3성과 최, 이, 배, 소(설), 정, 손의 7성을 제외하면 모두 사실상 고려 초에 생긴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왕건과 같은 경우에도 고려사에 나오는 그의 선조들은 대부분 성이 없고, 아버지인 왕융 대에서 부터 비로서 왕씨 성을 쓰는데 결국 세력이 커지면서 스스로 성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궁예의 궁씨도 그런 경우이며, 아자개와 그의 아들 견훤이 각각 아씨와 견씨를 따로 만들어 쓰는 것으로 보면 꼭 혈연관계라고 같은 성씨를 써야겠다는 관념은 없었던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궁씨, 아씨, 견씨는 지금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 태조는 일종의 특권은 성을 지역의 유력자 내지 유지들에게 내려주면서 이들을 회유하는 동시에, 본관제를 통해 이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통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성씨의 체계와 족보, 그리고 시조와 조상에 대한 정리는 대부분 조선 후기 17세기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본관에 대한 개념은 크게 없어서, 과거시험 답안 제출때에도 적당히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본으로 삼아 내는 경우도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성씨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족보가 만들어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시조나 조상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조작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 본관을 바꿔도 성 자체는 바꾸지 않는다는 원칙은 있습니다.)

1. 조상을 중국인으로 만든다. 소위 시조동래설이 이것입니다. 중국 은나라가 망할 때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왔다는 고사를 차용해서 자신들의 조상이 중국에서 난을 피해 조선으로 건너와 정착한 인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 본관을 중국의 것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소씨인데, 소씨는 조상을 소동파라고 하고 본관을 중국으로 하고 있습니다. (진주 소씨 제외) 조상을 기자, 유비, 제갈양, 당태종, 관우 등등으로 하고 있는 본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2. 시조나 현조(顯祖)를 조작한다. 시조를 역사책에 나오는 성이 똑같은 사람으로 조작하거나 은근슬쩍 유명한 사람 밑으로 자신의 계통을 끼워넣는 경우입니다.

3. 조상의 과거 신분을 조작한다. 이 경우는 정말 흔한데요, 조선의 사대부 가문은 향리 출신이 많습니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신진사대부는 중소지주 출신이다 라고 배우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도 많으며, 신진사대부=중소지주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려시대의 향리가 수령을 위협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력자였다면, 조선시대의 향리는 단순한 조력자 그 이하이며, 심지어 양반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지 않은체 조상이 향리출신이라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그 조상의 과거 신분을 조작하거나, 아니면 고려의 멸망에 불복해 고향으로 은거했다고 조작하는 것입니다. 두문동 72현 같은 것은 여기에 아주 좋은 소스거리가 되는 것이죠. 이황이나 송시열의 가문도 여기에서 자유롭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족보를 샀다! 라는 건 어떤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대충 돈내고 족보에 끼워넣었다고 생각하시는데,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만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보통 족보에 끼어들기 위한 작업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우선 문중에서 족보 만들기를 결정합니다. 족보 편찬은 대단히 많은 돈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아무때나 만들고 갱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중에서는 각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갱신된 자손들의 내역과 분담금을 내라고 연락을 돌립니다. 이 때 간혹 모르고 누락된 자손들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면밀히 살펴달라고 각 지역 대표자급 인물에게 부탁을 합니다. 이 때 갑자기 한 집에서 자신들이 원래 **본관의 *성인데 족보에서 누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문중의 여러 사람들은 이들의 호구단자 등을 살펴 이들을 족보에 올릴 것인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운이 좋으면 이때 올라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족보는 매우 소중한 것이고, 한명의 누락자도 있으면 안되기에 혹시 모를 착오를 막기 위해 이들을 별도로 만든 부록인 별보(別譜)라는 책에 올립니다. 그리고 몇 세대가 지나고, 족보가 몇번 더 만들어지만 어느새 별보에 있던 이들이 본보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