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조선

양반과 노비

同黎 2012. 7. 28. 00:49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쓰여진 일기인 쇄미록을 통해서 양반과 노비의 관계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의 일부분을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쇄미록은 조선 선조 때의 양반인 오희문의 일기입니다. 일기는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에서 시작하여 1601년 까지 쓰여지고 있습니다. 오희문은 해주 오씨로 집안은 벼슬을 한 양반가였지만 본인은 벼슬을 하지 못했고, 아들이 출세하여 말년에 선공감감역이라는 명예직만 하였습니다. 그는 1591년 전라도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는 시집간 누이를 방문하고, 외방노비의 신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행도중에 임진왜란이 터졌고, 원치 않은 피난생활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희문은 피난 생활을 하면서 거의 매일 일기를 썼는데, 이 것이 쇄미록입니다. 쇄미록에서는 전쟁의 상황을 알려주는 단서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생활사에 중요한 자료들이 매우 많이 들어있습니다.

길에서 굶어 죽은 시체를 거적으로 말아서 덮어둔 것을 보았는데 그 곁에 두 아이가 앉아서 울고 있다. 물었더니 그 어미라 한다. 어제 병으로 죽었는데 그 뼈를 묻으려 해도 비단 저들 힘으로 옮길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땅을 팔 도구를 얻을 수가 없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나물 캐는 여인이 광주리에 호미를 가지고 지나가므로 두 아이가 말하기를, 그 호미를 얻으면 땅을 파고 묻을 수 있다고 한다. 슬프고 탄식스러움을 이길 수가 없다.
[甲午 二月 十四日: 且路見餓屍 以藁席掩覆 傍有兩兒坐立 問之則曰 其母也 昨日病餒 而死 欲埋其骨 非但力不能移動 又不得堀土之具云 頃之有菜女 持筐荷鋤而過去 兩兒曰 若借得此鋤 則可以掘土而埋之云 聞來不勝哀歎哀歎]

이렇게 가슴 아픈 내용도 담고 있지만, 쇄미록에는 노비와 관련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오희문이 여행을 떠났던 이유 자체가 멀리 살고 있던 노비에게 신공을 받기 위해서였기도 하였고, 그 밖에 노비로 인해 속태우는 그의 모습이 쇄미록에서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노비는 같은 집안이나 가까이 살면서 주인의 잔 심부름을 하거나, 주인 집의 농사를 돕는 경우도 있었고, 멀리 살면서 다만 때에 맞추어 신공만 보내는 노비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할 노비들의 모습은 주로 주인과 가까이 살았던 노비들입니다.

노비는 당연히 주인에게 인신적으로 종속되어 있었고,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었습니다. 직접 돈을 벌 수 없는 양반들에게 노비는 대단히 중요한 재산 증식의 필수요소였고, 상속문서인 분재기에는 도망간 노비의 존재까지 꼼꼼히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쟁송의 가장 많은 부분도 무덤의 문제인 산송과 노비의 문제가 차지하였습니다. 노비는 비록 주인에게 종속된 재산이었지만 가정을 꾸리는 것이나 스스로의 땅을 소유하고 농사를 짓는 것, 재산 증식을 하는 것 등에는 제한을 받지 않았습니다. 쇄미록에 나타나는 노비들의 모습을 보면 주인의 일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고 재산증식을 적극적으로 꾸미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가 바로 노비의 번동(反同)입니다. 번동은 지역 간의 물가차이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상행위입니다. 노비들 뿐만 아니라 양반들도 번동을 하여서 재산증식을 꽤했는데, 양반은 직접적으로 상업에 손댈 수가 없으므로 노비를 시켜서 번동을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희문의 종인 덕노는 주인에게 휴가를 얻어 면화를 번동하러 떠납니다. 이때 오희문이 자신의 면화도 덕노에게 부탁하는데, 덕노는 자신의 면화는 모두 팔았지만, 오희문의 면화를 팔지 못했다며 그대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또 노비의 게으름이나 기만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다음은 쇄미록의 부분입니다.

송노, 분개 복지 등에게 .... 율무밭의 제초를 하게 하고 좁쌀밭의 김매기도 하게 하였다. ... 그런데 율무밭 둑에 한복을 시켜 찰수수 한되의 종자를 심게 하였는데 겨우 한 두둑을 심었을 뿐이고 그 싹도 덤성덤성 자랐다. 필시 한복이 그 종자를 훔쳐 자기 밭에 뿌렷을 것이다.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도대체 우리 집 전답은 모두 한복이 씨를 뿌렸는데 싹이 나는 것을 보면 모두 드문드문 파종을 하였다. 생각건데 이 종자도 한복이 훔쳐 자기 밭에 뿌렸을 것이다. 정말 분통해서 참을 수 없다.

여기에서 보면 한복이라는 종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종자 중 일부를 훔쳐 자신의 밭이 뿌린 모양입니다. 이 한복이라는 종은 나중에 여자종 하나를 데리고 말까지 훔쳐 달아나다가 오희문이 푼 사람에게 붙잡혀 오희문이 사사로이 친 곤장을 맞고 죽게 됩니다.

이와 같이 노비의 게으름과 부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주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부정과 게으름이지, 노비들에게는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오히려 종자를 훔쳐 자신의 논에 심고, 자신이 팔아야 할 물건은 다 파는 등 자신의 일에는 게으르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노비는 양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언제나 감시하고 방심해서는 안될 존재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재산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결국 불가능한 것임을 쇄미록은 반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