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2일 - 나고야3 (나고야성名古屋城1 - 니노마루二之丸)

同黎 2016. 9. 16. 02:07



이제 아츠타신궁을 나와 나고야성으로 향한다.


다시 나고야 지하철을 타고 이동


시야쿠소역(시청역)에서 하차


여기서 7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나고야성이다.


시야쿠소역에 그려진 과거의 나고야성 지도


거대하다


뭐 지금은 몇몇 건물만 제자리에 남아있고 복원된 천수각과

현재 복원 중인 혼마루어전 외에는 거의 건물이 없다.


지하철 퇴갤


우리가 나온 지하철역 출구

나름 성문처럼 디자인했다.


거참 독특하네


나고야성(명고옥성)을 줄이면 메이조(名城)라고 해서 메이조 공원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 근처의 유적지 안내판

 

경내 안내도

저 북쪽까지 다 성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나온 곳


지하철 입구 뒤에 보이는 건물은 바로 나고야시청이다.


1930년대 지어진 건물로 본관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나고야 시청 정면

제국주의시대 권위주의 건축 양식이다.

이 지역은 나고야성의 외곽 지역이던 산노마루 영역이라고 한다.


거대한 해자와 성벽이 보인다.


니노마루 성벽의 흔적이다.


과거 야구라가 서 있던 곳은 현재 석벽만 남아있다.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거성이었던 만큼 규모나 견고함은 대단했던 것 같다.


해자 모서리의 성벽


역시 거대하다


니노마루의 입구


성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본 해자와 성벽


규모가 오사카성 못지 않다.

와카야마성이나 히로시마성 보다도 큰 느낌


니노마루 입구 정면


원래 있었을 문은 다 소실되거나 철거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폐성령이 내려졌을 때 혼마루는 보존되었지만 니노마루 등 외곽 지역은

제외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니노마루에는 아이치현 체육관이 서 있다.


사진 찍는 중


성벽과


해자의 모습

정말 광대하다.


해자 중간에 흙으로 볼록한 부분이 있는데


이 곳이 죽창 등 여러 방어장치가 있었던 곳이다.


이제 드디어 니노마루로 들어간다.


이번 나고야에는 김샘이 동행했다.


니노마루 문터


성벽 뒤편으로는 무사들의 대기 장소가 남아있다.


저 멀리 보이는 매표소


특별사적 나고야성 안내도


검게 보이는 부분은 복원 중인 부분이다.

특히 혼마루어전 복원이 중점적이다.


나고야성 매표소


입장권은 500엔이다.


도쿠가와엔과 공통입장권은 640엔인데,

우리는 도쿠가와미술관+도쿠가와엔 입장권을 살 거라 그냥 대인권을 끊는다.

1일 승차권을 보여주면 50엔 할인을 해준다.


나고야성(名古屋城)은 의외로 역사가 깊지는 않다. 

전국시대, 유력한 다이묘 중의 하나인 이마가와(今川)씨의 이마가와 우지치카가 오와리 지방으로의

진출을 위해 처음 쌓았다고 하며 그 후 이마가와가의 앙숙이었던 오다씨의 오다 노부히데가 이 성을

빼앗아 새로 성을 쌓았는데 이 오다 노부히데가 바로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이다. 노부히데가 쌓은

성의 이름은 한자가 다른 나고야성(那古野城) 이었으며 지금의 니노마루 자리라고 한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거성이 되었으나 그가 키요스성을 개축하여 거성을 옮긴 후 폐성이 되었다.

그러니까 에도시대 이전까진 별로 주목받지 못한 성이었다.

지금의 거대한 성이 된 것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9남이자 고산케 중의

하나인 도쿠가와 요시나오(徳川義直)를 분봉하면서 부터이다. 처음 요시나오는 키요스번에 분봉되지만

이후 이 곳으로 전봉되면서 나고야성을 새로 대대적으로 개축하는데 도도 타카토라가 이를 담당했다고

한다. 키요스성은 철거되어 그 천수의 부재는 나고야성의 야구라를 만드는 데로 들어갔으며

이후 성하촌까지 완전히 정비되면서 지금 볼 수 있는 규모의 성이 되었다.

이후 17대를 내려오던 오와리 도쿠가와가가 메이지유신으로 성을 헌납하자 폐성되었으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건의로 혼마루는 남겨진다. 이후 일시적으로 궁내청에 속해 나고야 이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나고야 대공습으로 당시 국보로 지정된 대천수와 소천수 및 혼마루어전 12동, 야구라

1동과 문 5동이 소실되었다. 기적적으로 야구라 3개와 문 3개는 살아남아 중요문화재가 되었고,

혼마루 어전을 장식하던 수백 매의 벽화와 천정화도 공습 전 소개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입장


기념사진


작위적이다


전진


앞에 야구라가 보인다.


어제부터 날씨가 미친 듯이 좋구나


한쪽의 등나무 벤치


이 곳이 니노마루 정원이다.


니노마루 정원의 흔적


뒤편에 찻집도 있다.



이 곳이 바로 오다씨의 나고야성이 있던 성터로 보고 있다.


안내판

근데 영어로 발음이 똑같아서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은데?


명승 나고야성 니노마루 정원이라는 표석


원래 중국식 정원이었지만 후에 고쳐 일본식이 되었다고 한다.


뭐 정원을 자세히 품평할 것까진 없겠다.


멀리 보이는 대천수

넓은 공간은 니노마루 어전이 있었던 자리이다. 이 곳은 당시 번의 관청, 즉 번청으로 쓰였다고 한다.


서남야구라


대천수각


번훈비전(藩訓秘傳)의 비라는 표석


1대 번주인 요시나오가 대대로 근왕(勤王)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새겨놓은 비석이라고 한다.


청송엽사건의 유적이라는 안내판


청송엽사건은 1868년 일어난 오와리번의 좌막파(막부파) 탄압사건이다. 오와리 도쿠가와가가

고산케 중에서도 격이 제일 높았던 집안인데 이게 왠 소린가 했는데, 당시 14대 오와리번주인

도쿠가와 요시카츠(徳川慶勝)는 대정봉환 이후 신정부에 참여하였다. 이후 오와리번이 좌막파와

토막파로 갈라지자 교토에서 직접 번으로 내려와 번 내의 주요 좌막파 가신과 막부에서 파견한

감시역들을 참수한다. 그 참수된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의 집안 별명이 청송엽이었던 데에서 기원한단다.


이제 혼마루 쪽으로 간다.


혼마루 성벽 아래의 매화밭


가까워지는 서남야구라


가는 길 옆에


왠 아저씨가 서 있나 했더니 가토 기요마사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성벽의 건설을 맡은 여러 다이묘 중 가장 어려운 천수각 석단을 담당했는데,

가장 커다란 돌을 운반할 때 기요마사가 직접 돌 위에 올라가 구호를 부르며 독려했다고 한다.


동상의 유래문


이제 서남야구라가 제대로 보인다.


혼마루와 니노마루 사이의 해자


생각보다 깊진 않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성벽 보수공사 중이라니 복원 하나는 정말 정성스럽게 한다.


서남야구라(西南隅櫓)


나고야 대공습의 소이탄을 피해 살아남은 중요문화재이다.


정면의 모습


역시 살아남은 동남야구라와


다행히 살아남은 가장 큰 서북야구라

특이 이 야구라는 키요스성의 천수각을 해체해 만든 것으로,

일본에서는 서북쪽이 가장 흉한 방향이기에 이를 지키기 위해 크게 만든 것 같다.


기념사진

제대로 역광


나도 기념사진


엄청 풍찬노숙한 느낌이다.



성의 성벽이 아주 반듯하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천수각


멀리 보이는 동남야구라


역시 살아남은 표이문이 보인다.

혼마루의 남쪽 정문으로 중요문화재이다.


이제 나고야성의 혼마루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