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0차

간사이대원정 14일 - 이세4 (신궁징고관神宮徴古館2·야마토히메노미야倭姫宮)

同黎 2016. 10. 15. 22:59



2층 중앙의 과거 홀 부분

예전에는 귀빈실 등이 있었다고


한 구석에 내궁의 유명한 다리인 우지바시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식년천궁 때마다 다시 짓는 다리이다.


이어지는 전시실은 식년천궁의 과정을 그린 그림들


여러 공구들이 놓여있다.


나무를 선별해서 베는 것도 모두 제사를 지내는 데, 거기에 쓰이는 도구들이다.


먼저 식년천궁을 시작하면서 목재를 고르면서 그 입구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나무를 고르고 제사를 지낸다.


나무에 지내는 제사

이 때는 황실의 가장 어른인 여성이 재궁의 직책을 맡는다.


선택된 나무는 벌목하는데 모두 노송나무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심에 세울

두 그루의 중심되는 나무를 선택하여 시제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고 나무를 자르는 모습

모두 수작업이라고


이제 나무를 운반한다.


벌채된 나무는 강을 따라 운반되어서 신궁까지 운반된다.


일종의 축제인 듯


벌목한 나무는 이세신궁 인근 마을을 돌며 축제를 한다.


드디어 신궁에 목재를 봉납


들여온 목재를 다듬는 제사


나무를 다듬는 끌


목재를 다 들여오면 건물을 새로 세울 자리에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건설된 건물 주변에 자갈을 까는데, 이것은 신궁 인근 백성들이 한다고 한다.


상량식

이후 새로 지은 건물의 문에 마지막 장식을 끼어 넣어 제사를 마친다.


이제 건물이 세워지면 신보와 폐백 봉납을 준비한다.

천황으로부터 봉납된 폐백이 들어온다.


폐백을 봉납하는 궤


여기에 폐백을 담는다.

일본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한국보다 더 엄격하게 여기지만 이세신궁에서 모시는 아마테라스는

천황가의 조상이므로 여전히 천황으로부터의 폐백 봉납이 이루어진다. 천황이 아무리 착해도

여전히 이세신궁을 통해 천황제가 유지되며 이세신궁은 정치적 역할을 하게 된다.


봉납된 신보들을 점검하는 중


점검을 마친 신보들은 정전 앞으로 옮겨지고


미츠이시라는 세 개의 돌 앞에서 불제의 의식을 거쳐 정화된다.


신보까지 다 갖추어지면 드디어 구 정전으로부터 신체가 이운된다.

이 신보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되어 흰 천으로 가리워져 옮겨진다.


신체가 새 정전에 모셔지면 특별히 올려지는 신찬인 대어찬이 베풀어진다.


그리고 천황이 바친 폐백이 바쳐진다.


천황이 올린 폐백과 함께 올려지는 축문


마지막 작업으로 궁내청 아악부에서 직접 올리는 신락(카구라)이 올려진다.

이렇게 8년에 걸친 식년천궁이 끝난다.


이제 지난 식년천궁 때 모셔졌다가 철하된 신보들이 전시되어 있다.


비단으로 만든 개(蓋)

일종의 양산이다


짚을 엮어 만든 립(笠)

일종의 우산이다

그 앞의 것은 의장용 부채


거울과 거울함


거울함은 안에 비단을 붙이고 밖은 옻칠로 마무리한다.


비단 상의


능라 치마


비단 옷감


2개의 정궁과 14개의 별궁에 올려지니 옷도 종류가 많다.


다른 일습


옥패와 함


수정과 옥으로 만들어서 걸을 때 소리가 난다.

엄숙히 걸음을 하기 위한 의식구이다.


빗과 빗 상자


화려하게 장식된 상자


방패와 창


다들 이거 보고 나루토의 사륜안만 얘기한다...


말 안장


기타 마구들


말 채찍도 보인다.


말 모형은 3개가 올려진다.


백마, 흑마, 얼룩말


안내문


식년천궁하는 과정을 그린 그림


활(장궁)과 화살, 화살집


활을 쏘기 위해 어깨에 두르는 천


화살과 화살집


칼도 여러 종류가 올라간다.

금동제 태도


신보로 올라가는 특이한 모양의 태도

옥전어태도(玉纏御太刀)라고 한다.

옆에는 칼을 감싸는 비단


칼을 매는 허리띠


물고기 모양의 드리개도 있다.

수정, 마노, 호박 등의 보석이 450개가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칼이 두 자루이다.


이것은 구슬이 반쪽만 달려있다.


역시 띠


이걸 도대체 몇 개나 만드는 거냐


세부

보석 장식이 보인다.


신보의 종류와 모양을 그린 문서


또 다른 태도


모두 다 고대의 양식인지라 칼날이 휘어있지 않다.


또 태도


또 다른 태도


종류도 많다


이렇게 신보류들을 다 보면 신궁징고관이 끝난다.


신궁징고관 바로 앞에는 별궁이 하나 있다.


야마토히메노미야(倭姫宮)라는 별궁이다.


특이하게 14개의 별궁 중 유일하게 창건 시기가 명확한 신사이다. 왜냐면 1923년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세신궁의 125사 중 가장 건설이 늦은 신사인 셈이다.


들어가보자


작은 숙위사


들어가면 보이는 건물들


부적 등을 파는 사무소가 보이고


작은 신락전도 보인다.


죽은 고사목


그 아래로 자라는 새싹


저기에도 금족지가 보인다.


신마를 두는 곳인가?

뭔지 알 수는 없다.


정면의 모습

여기를 지나가면


멀리 본전이 보인다.

 

역시 고전지와 함께 서 있는 새로운 본전


고전지


별궁의 모습


여기서 모시는 신은 제11대 천황인 스이닌천황의 제4녀인 야마토히메이다.


전설에 따르면 10대 스진천황이 지나치게 강력한 아마테라스의 신체 야타노카가미(八咫鏡, 팔지경)의

힘을 두려워하여 그의 딸에게 모시도록 한 이래로 이세신궁의 가장 높은 직위인 재궁은

천황가의 결혼하지 않은 황녀가 맡게 되었다. 야마토히메는 아마테라스의 신탁을 받아

이세신궁의 내궁 자리를 잡고 아마테라스를 모셨다고 한다.


현판 모습


본래 야마토히메를 모시는 신사는 없었으나, 메이지천황의 이세신궁 행행을 위한 차도가 생기면서

이세가 도시로써 발전하였고, 야마토히메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고분이 발견되면서 야마토히메를

모시는 신사를 짓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그래서 그녀의 고분 근처, 또 도로가 뚫려

위치가 좋은 곳에 그녀의 신사를 지었다고 한다.


본전 정면


측면에서 본 모습


사실 뭐 건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다시 신사를 나오는 길


도리이를 빠져 나간다.


정면에서 본 도리이


바로 옆에는 신궁농업관이 있다.


표석


메이지시대에 우지의 뵤도인 봉황당을 본따 지었다는데 별로...


목조 건물로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것을 90년대에 복원하였다.


들어가진 않는다


현재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근데 목조 건축이라는데 어떻게 복원했을까? 신궁징고관도 거의 외벽만 남았다는데


의심이 물씬 난다


내가 징고관에 있는 사이 이행묵은 걸어서 탐험을 다녔다.


거대한 도리이


옆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신궁문고가 있는데 출입금지란다.


동백꽃


미술관으로 넘어가는 길


신궁미술관인데 여기는 다 현대미술이라서 굳이 안 온다.


나름 현대식으로 꾸민 정원


신궁미술관 표석


미술관 전경



뭐 그냥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신사 앞으로


정면에서 다시 본 신궁징고관


심희곤의 시각


힘들어서 앉아있는 중


셀카질


버스를 기다린다


워낙 한적하여 버스가 지나갈 수 있으니 잘 봐야한다.


버스 기다리는 중


추워한다


이제 버스를 타고 이세신궁 내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