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4일 교토3 (헤이안신궁平安神宮·신뇨도真如堂)

同黎 2018. 5. 20. 02:39



택시를 타고 급히 이동


동쪽으로 간다.


헤이안신궁

여러 번 왔다.



헤이안신궁(平安神宮, 헤이안진구, 평안신궁)은 교토로 천도한 간무천황과 교토의 마지막 천황인 고메이천황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이다. 도쿄에 메이지신궁이 있다면 교토에는 헤이안신궁이 있다. 1895년 메이지시대에 헤이안천도 1100주년을 맞이하여 내국권업박람회를 여는데, 이 때 헤이안쿄의 궁궐(다이다이리)의 핵심인 조당원부분을 5/8 크기로 일부 재현한다. 원래는 주작문 자리에 세우려고 했으나 부지매입에 실패했다고 한다. 하여튼 원래 박람회장으로 세운 이 공간은 이후 박람회가 끝나고 칸무천황을 모신 신궁으로 바뀌고, 황기 2600주년이 되는 1940년 코메이천황을 합사한다.

원래 조당원은 천황을 상징하는 대극전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총 12개의 조집당이 있어 이 중 4개에

각각 3대신(태정, 좌, 우), 친왕, 대납언·중납언·참의, 감찰기구가 들어서고 8개에 8성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문은 응천문이고 대극전 뒤에는 소안전이라고 하여 작은 침전이, 좌우에는 백호루와 창룡루가,

응천문 좌우에는 서봉루와 상란루가, 응천문 앞에는 조집문이 있었다.


헤이안쿄의 조당원 모형


이 중 헤이안신궁은 대극전과 응천문, 백호루와 창룡루를 복원하고 12조집당 중에는 좌우로 한 개만 복원했다. 그래서 정문은 응천문, 외배전은 대극전, 12조집당은 각각 액전과 신락전으로 삼고 백호루와 창룡루는 신원으로 통하는 출입구로 삼았다. 그리고 대극전 뒤에 내배전과 본전을 지었다. 그리고 1928년 쇼와천황의 참배를 기념하여 거대한 대도리이를 지었다.

그러던 중 1976년 가토 사부로라는 인물에 의해 내배전과 본전 등 9동이 불탄다. 찾다보니 이 가토 사부로라는 인물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베평련, 즉 베트남전 반전 평화 활동의 유인물을 보고 좌익활동에 처음 눈을 떠서, 졸업 후 노동자로 있으며 재일조선인 문제와 아이누 문제에 더욱 분개해 본격적으로 좌익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폭탄을 주조해 많은 폭탄테러를 했다. 헤이안신궁을 방화한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민초의 고통을 증가시키고 에조 민족을 괴롭힌 칸무천황을 신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토 사부로는 이 외에도 메이지신궁 페인트 테러, 나시노키신사(산조 사네토미가 제신) 폭탄테러, 신사본청, 히가시혼간지, 도큐관광, 미쓰이 알루미늄 사장자택, 도쿄대학 등에 폭탄테러를 했고 메이지신궁에 인분으로 만든 폭탄테러를 했는데 이 때 실패했다. 웃기는 건 이 때 자신이 분뇨에 묻자 더렵혀졌다고 생각하고 회의를 느껴 테러를 중단하고 도피생활 중 엉뚱하게 라즈니쉬의 사상에 빠졌다고 한다. 결국 1983년 붙잡히고 징역 18년을 받고 현재는 그냥 잘 살고 있다고


1928년 새워진 대도리이

높이 24미터로 쇼와천황의 즉위 겸 신궁 참배를 기념하여 지었다.


중요문화재 응천문

대극전(외배전), 응천문, 창룡루, 백호루, 동서회랑은 중요문화재,

기타 대도리이, 액전, 재관, 신락전, 내회랑, 동서문, 동서제기고, 동서신고 등은 등록유형문화재다.


봉납한 신주통들


대극전


액전과 창룡


신락전


백호루


뵤도인을 참고했다고


대극전



응천문 현판


다시 길을 떠난다.


신뇨도(真如堂, 진여당)



신뇨도의 정식 명칭은 신쇼고쿠라쿠지(真正極楽寺, 진정극락사)로 천태종 사찰이다. 그냥 다 신뇨도라고 부른다. 10세기 히에이잔의 계산이라는 승려가 꿈에서 보고 히에이잔 상행당의 본존인 아미타여래를 이지조천황의 생모 별궁에 모셨다가 이치조천황의 명을 받고 절을 세운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염불도장으로 많은 신앙을 받았지만 오닌의 난으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에도시대의 것이다. 미쓰이가의 보리사로도 유명하다.

본존은 엔닌이 조각했다고 전하는데, 조각 당시 히에이잔 수행자의 본존이 되어 달라 하니 불상이 목을 세 번 흔들어 거부했고, 백호를 넣으며 그러면 교토로 내려가 여인 등을 구원해달라고 하니 목을 세 번 끄덕여 수긍했다고 한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아미타여래 입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목탑

본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교토부지정문화재이다.


18세기 건축


본당

중요문화재


1717년 건설


안내문


먼저 뒤편으로 간다.


묘지


옆으로 가면


깊숙한 골짜기가 보인다.

히에이잔과 연결된 자락이다. 저기에 귀문을 막기 위한 수많은 절과 신사가 있다.


개산당


이제 본당으로 들어간다.


불사리


본당 내부

여기까진 공짜지만 뒤편으로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본당 주자 내의 불상들


가운데 아미타여래상이 본존이다.

도쿠가와가의 문장이 보인다.


본당 뒤편으로 가는 길


뒤편 회랑을 통과하면 정원이 나온다.


나가는 길



당문이 보인다.


방장의 불단

신란의 상이 있는데 여기서도 수행했다고 한다.

자신이 깎은 자각상이라고 전한다.


유명한 정원


내려오지 말아달라는 돌


색이 다른 모래를 써서


구획을 만든 특이한 정원이다.


창 사이의 작은 정원


석등롱


열반의 정원 안내문


고산수식 정원으로


멀리 히에이잔까지 보인다고 한다.


정면


측면


날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당문으로 통하는 길


사계전이라는 전각

후스마에는 엔잔의 작품이라고



우물이 있는


작은 정원


정자


도비라에


정원을 다 보고 보이는 풍경


한쪽의 츠쿠바이


다시 내려간다


정문인 아카몬(적문)


역시 부지정문화재


신뇨도 현판


멀리 곤카이고묘지의 쿠로몬(흑문)이 보인다.


가는 길에 나오는 요제이천황릉


헤이안시대 전기의 천황이다.


건너편에 있는 신사는 무네타다신사

흑주교라는 신흥종교의 초대 교주인 쿠로즈미 무네타다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이 사람은 나름 유서깊은 신관집안의 후손이다.

흑주교는 막말부터 오카야마현의 키비츠대사 근처에서 발흥한 신도계 신종교인데 황실에 매우

친화적이어서 황족이나 공경도 많이 귀의했다고 한다. 심지어 무네타다대명신이라는 신호를 받고

요시다신사 부지 일부를 양도받아 세워졌다. 이 신사는 천황도 기도했다고...

뭐지...


자신을 아마테라스와 동일시했다는데...

심지어 다른 신도계 신흥종교인 오모토, 금광교, 천리교가 받은 탄압도 없고 천황의 기원소가 되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