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4일 교토4 (요시다신사吉田神社·긴카쿠지銀閣寺)

同黎 2018. 5. 20. 04:45



가다보면 현재 고급 요리집인 요시다산장이 나온다.


구 황족인 히가시후시미가의 저택이었다.

지금 쇼렌인을 점거하고 있는 그 집안이다.


가다보면 고이치조천황릉도 나오고


이렇게 길가에 있는 것 같지만 예전에는 다 절이었다.


저택


요시다신사는 요시다산 거의 전체를 뒤덮고 있다.

본사 외에도 섭말사가 워낙 많고, 섭말사가 각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산 전체를 뒤덮는 것으로 보인다.

뭐 요시다산이 크진 않지만



요시다신사(吉田神社, 길전신사)는 본래 나라 가스가대사의 분사였다.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를 하면서 가스가대사에 모시던 4명의 신을 그대로 모셔온 것이다. 연희식에서 특별히 중요시하는 22사 중 한 곳이기도 하면서 신불습합에서 비교적 비껴서있는 특이한 신사이기도 하다.

가마쿠라시대 이래 우라베씨=요시다씨가 신관 가문을 세습했다. 이 과정에서 무로마치시대 말기 신불습합을 부정하고 유일신도를 주장하면서 요시다신사를 중심으로 모든 신을 아우르려는 만신전을 지으려는 요시다신도가 나타난다. 요시다신도는 유교와 음양도, 불교 등에서 이론을 취해 신도이론을 개발하고 이후 신불습합을 깰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리이를 지나면


모모야마시대 지은 요시다신도의 중심지 제양소대원궁이라는 신사가 나온다.


이곳은 요시다시도에서 천지신기의 팔백만신을 모두 모신 중앙신전으로 지은 건물로

연희식에 등장하는 3132좌의 신을 모두 모시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생긴 것도 매우 특이하다.


여기서 바라본 도리이


중문은 교토부지정문화재이다.


멀리서 본 모습


이제 본사 방향으로 간다.


안내판


곳곳에 있는 말사들


도리이


경내도


약궁사


본전에 모신 신의 아들신을 모셨다.


본사 도착


본사 도리이


배전이 보인다.

배전, 본전, 회랑이 모두 교토부지정문화재


사무소


납경을 받는다.


중문


뒤편에 4개의 본전이 보인다.

가스가대사의 구조와 똑같다.


신락전


불소


산을 내려간다.


이마미야사

오쿠니누시, 스사노오, 천신을 모신 곳


다 내려왔다


교토대학과 통하는 대도리이


산을 넘은 셈


요시다신사 표석


교토대학 정문 앞


미군 및 방위성과 대학의 연계강화 반대 대자보


교토대학 정문


시계탑관이 보인다.


체육부 모집 대자보


이제 마지막 납경처 긴카쿠지로 간다.


은각사 입구


에휴 정말 많이 왔다.



경내도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무로마치막부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할아버지인 3대 쇼군 요시미츠를 그리며 지은 별궁을

그의 사망 후 사찰로 바뀌었다는 것. 금각과 대비되는 은각이 있다는 점, 그리고 쇼군이 거처하던 주택인

동구당이 있다는 점이 거론할 만하다. 무로마치시대 다도의 거점, 히가시야마어물이라는 이름의

쇼군 다도구 명물들의 소굴이기도 하다.


다만 많은 부분이 에도시대 개조되어 옛 모습은 많이 잃었다고


동백나무 숲


지나면 산문이 나온다.


고리


은각이 보인다


산을 형상화한 향월대


다리 위에 새가 앉아있다.


모래로 만든 은사탄


방장건물

에도시대 중기의 건물이다.



은사탄과 향월대는 에도시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보 동구당

요시미츠가 거처하던 곳으로 다실 중 최초의 다다미 다실로 알려져 있다.


동구당에서 보이는 은각


연못에 있는 바위

무로마치시대의 유구이다.


지천회유식 정원


변재천당


돌아돌아


언덕 위로 올라간다.


동구당과 방장


작은 공양탑들


차를 끓이는 물을 뜨던 우물


무로마치시대의 유구이다.


나름 발굴조사를 한 것



멀리 보이는 풍경


은각


원경


저 빨간색으로 보이는 곳이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이쪽 광경이 제일 멋있다.


내려가는 길


이끼정원



동백이 피었다



떨어진 흰 동백



은각

원래는 관음전이다


나름 2008년 보수공사를 했다.

은각이라고 하지만 금각처럼 은을 덮은 건 아니다.


무로마치시대 은각사의 모습을 일부 복원한 모습


단청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나가는 길


은각사는 항상 길 앞의 버스타기가 어렵다.


숙소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


길고 긴 일정이지만


마지막 코스가 남았다.


가모가와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