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4일 교토1 (주겐지仲源寺·롯카쿠도六角堂·다이쇼지大聖寺·호쿄지宝鏡寺·가미고료신사上御霊神社)

同黎 2018. 5. 19. 05:31



다시 기온에 도착


다음 목적지는


기온 한복판에 숨어있다.


라쿠요 16번 찰소인 주겐지(仲源寺, 중원사, 쥬겐지)

헤이안시대 중기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전설에 따르면 가모가와가 폭우로 범람하자 당시 가모가와의

치수를 담당하던 주겐씨가 지장보살을 만들어 봉납하고 비가 멈추기를 빌었더니 비가 그쳤다고 한다.

원래 자리는 아니고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때 이 자리로 옮겨졌다.



안내문


지금은 기온 중간에 있는 작은 절


지장보살이 본존이라 지장보살상이 많다.


중요문화재인 헤이안시대의 천수관음상



중요문화재인데 저런 곳에 놓아도 될까 생각이 들 정도로 좁고 반쯤 실외인 곳에 있다.


본존 지장보살


지정은 안 되어있다.


상당히 후기 작품으로 추정


납경받는 중


택시타고 급히 이동



롯카쿠도(육각당, 六角堂)

정식명칭은 조호지(頂法寺, 정법사)로 천태종계 단립사찰이다. 원래 사찰이었으나 여기의 탑두에서

꽃꽂이 문파인 이케노보가 탄생하고 이 문파가 성장해 자체적으로 호텔도 세우고 독립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롯카쿠도는 교토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며 쇼토쿠태자가 창건했다고 한다.

쇼토쿠태자가 모노노베씨와 싸워 이기고 시텐노지를 세울 때 그 목재를 찾으려 여길 왔다가 연못이

있어 목욕을 하고 자신의 지념불인 여의륜관음을 바위 위에 올려놨는데 불상이 움직이지 않고

관음보살이 나타나 이 땅에서 중생을 구제하려 한다고 하여 육각당을 세웠다 한다. 이후 헤이안쿄를

만들 때 육각당이 도로 복판에 있어 이전하려 했으나 구름이 몰려와 이를 취소했다고도 한다.

가마쿠라시대에는 신란이 이곳에서 100동안 기도하고 정토염불을 득도하여 정토진종을 세웠다고 하며,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천태종이 일련 일파를 치기 위한 집결장소가 되기도 하고,

교토 민란이 일어날 때의 집합소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건물은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된 것을 메이지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본존은 비불인데 최근 한 번 공개되었으나 사진은 없다.

 

입구



육각당이라는 표석


정면

별 건 없지만 그래도 교토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유명한 장소이다.


뒤로는 이케노보에서 세운 호텔이 서 있다.


비불 공개 안내판

이 때는 아니었다.


내부


본존의 전립상


중요문화재인 비사문천상

헤이안시대


쇼토쿠태자 기마상

특이한 조상이다.


나무불 태자상


신란의 상도 2점 전한다.



납경


건너편에 교토문화박물관이 보인다.


카라스마오이케역으로 가서


이마데가와역으로


도시샤대학이 보인다.


다이쇼지(대성사, 大聖寺) 임제종계 단립사찰로 대대로 여성 황족들이 출가하던 비구니 문적사원이다.

무로마치시대 코곤천황의 황후인 히노씨가 출가하면서 처음 세워졌으며 이후로도 내친왕 등 황족이 꾸준히 출가하면서 유명한 니문적사원이 되었다. 유난히 공개가 안 되는 폐쇄적인 사원으로도 유명하다.


이 자리는 무로마치시대 막부의 거처였던 하나노고쇼 자리이기도 하다.



하나노고쇼라는 비석


역시 황족들이 바친 물건이 있지만 현재는 아주 한정된 경우에만 공개한다.


현관

건물은 모두 등록유형문화재


주인소


주인소마저 깊숙한 곳


입구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안내문


겨우 납경


이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구멍가게


창가학회 건물도 보인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도시샤대학 학생회관


여기도 절이 모여있다.


묘켄지


일련종 사찰로 오늘은 지나친다.


호쿄지


멀리 보이는 건물


호쿄지(宝鏡寺, 보경사) 역시 임제종계 단립사원으로 비구니 문적 사원이다.

코곤천황의 황녀가 출가해서 처음 세워졌으며 나중에 고미즈노오천황의 황녀도 출가했다. 대대로

유서깊은 니문적사원으로 지금 건물은 18세기의 화재 후 복원한 것이다. 모두 교토부지정문화재이다.



안내문


봄의 특별공개에 공개한다.

특히 여기에는 역대 황족들이 바친 인형이 많아 인형사라는 별명이 있다.


현관


배관사절


이제 택시를 타고 고료신사로


가미고료신사 입구


안내문


고료신사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제신으로 모시고 달래는 신사로 여기 모셔진 이들은 주로 황족들이다.

똑같은 이름의, 똑같은 신을 모시는 신사가 두 개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 신사는

가미고료신사라고 하고 아래쪽에 있는 신사는 시모고료신사라고 한다.

여기서 모시는 신은 코닌천황의 아들 스도천황과 기타 코닌천황의 황후 등 코닌천황과 그 아들 간무천황의 황위계승 과정에서 휘말려 죽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나라시대 말기인 코닌천황 대에 후리와라노 카네츠구 암살사건이 일어나고 그 주모자로 황위를 노린 사와라친왕이 지목되자 이와 관련된 황족들이 싹 숙청된다. 그러나 칸무천황 이후 각종 사건과 역병 등이 일어나자 칸무천황은 이를 원령들의 일로 여기고 나라에서 나가오카쿄, 다시 헤이안쿄로 수도를 이전한다. 그리고 후지와라씨에 의해 숙청된 사와라친왕을 스도천황으로 추증하고 원령 6명과 함께 이들을 달래기 위해 음양사의 아버지 격인 키비노 마키비를 합사하여 남북으로 신사를 세우는데 그것이 가미고료신사와 시모고료신사이다. 후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뇌신이라는 이름으로 합사되어 8명의 신이 모셔진다. 이후 에도시대에 칙명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유배보내진 일명 오구라사건의 주인공인 오구라 사네오키와 그 일족 등이 배신으로 합사된다.

오닌의 난의 시작지로 당시 하타케야마 집안의 당주 승계 싸움이 일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내문


누문


즈이신



오닌의 난의 발원지라는 표석

오닌의 난은 막부의 승계문제와 하타케야마가의 승계문제 등이 얽힌 복잡한 문제이다.


내부


납경받는 중


무전


꽃꽂이



꽃꽃이 하는 집안에서 바친 듯하다.



배전


뒤편으로 본전이 보인다.

건물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본전


에마전


숨가쁜 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