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이런 경로다
다 들어간건 아니고 군데군데 더 있어서 600km 정도 된다.
타나베시의 토케이신사로 가는 길
조용한 동네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시내 부분은 고속도로가 고가도로지만
지방으로 내려오니 고속도로가 그냥 왕복 2차선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이 때문에 난리를 겪게 된다.
토케이신사 도리이
쿠마노 참배를 위한 쿠마노고도는 이곳까지 오는 키이가도에서 해안가를 따라 쿠마노나치대사와
쿠마노하야타마대사를 먼저 참배하고 쿠마노혼구대사로 가는 오헤치와 혼구대사부터 보고
나치와 하야타마로 가는 나카헤치로 나누어진다. 이후 고야산으로 가거나 이세로 가는데
이 길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토케이신사(闘鶏神社, 투계신사)는 쿠마노권현을 모시는 신사다. 신구마노, 타나베궁이라고도 하며 보통
곤겐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시라카와천황 시대에 구마노삼소권현을 권청해와서 세운 신사인데 이곳이
쿠마노참배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카베치와 오베치로 길이 갈라진다. 그래서 쿠마노삼산을
담당하는 쿠마노별당이던 탄카이가 거점인 이곳에 새로 신사를 만들었으며 탄카이의 차남인 탄조가
타나베별당으로 취임하고 이후 쿠마노별당으로 간다. 여담으로 벤케이가 탄조의 아들이라고 하며
이곳의 신궁사인 다이후쿠인에는 벤케이가 태어날 때 씻겼다는 목욕탕인 커다란 솥이 남아있다고 한다.
투계신사라는 명칭은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나왔는데 겐페이 합전이 일어날 때 탄조가 이곳에서 붉은
닭과 흰 닭 두 마리를 싸우게 했는데 흰색 닭이 이겼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점으로 흰색이 겐지의
상징색이고 붉은 색이 헤이케의 상징인데 흰 닭이 이기자 겐지 측에 서기로 정하고 겐지에게 합류한다.
쿠마노별당은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기이 남부에 있는 쿠마노 수군(수군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해적)을
거느리는 군사집단의 호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세 출인 헤이케는 상대적으로 수군이 강했고, 반면
겐지는 약했는데 쿠마노 수군이 겐지에 합류해 단노우라 전투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전설에는
이때 벤케이가 헤이케보다 먼저 쿠마노수군을 설득하기 위해 쉬지 않고 토케이신사까지 달려왔다고 한다.
쿠마노별당은 본래 천태종에서 임명한 승려로 혼구대사를 중심으로 쿠마노의 신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임명되었지만 점차 세습되며 지방세력으로 발전한다. 산속에 위치한 혼구보다는 바닷가의 타나베
(토케이신사)와 신구(하야타마대사)의 양대 세력으로 정리되었고 이후 이시다가, 사노가, 나치가 등
각종 분가가 생겼다. 어쨌든 가마쿠라막부에 합류한 쿠마노별당 세력, 특히 타나베별당은 광대한
영지를 얻었고 쇼군가와 결혼하며 후한 대우를 받는다. 또 쿠마노삼산을 존중해 심지어 키이와
이즈미 두 쿠니의 경우에는 슈고와 지토를 정지하고 구마노 신령에게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가마쿠라막부와 고토바상황이 대립하면서 신구와 타나베 별당은 조큐의 난에서 고토바 측에
섰다가 막부에게 완전 패하게 된다. 신구별당은 그나마 세력을 유지하게 되었지만 타나베별당은
완전히 쇠락한다. 이후 14세기에 이르러 이들은 쿠마노수군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고 지방
무사가 수군을 통솔하게 된다. 이후 토케이신사와 구마노삼산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들이 서로 묶이게 된 건 메이지시대 이후이다.
주차료 싸다
고야산, 구마노삼산, 요시노, 이세신궁을 잇는 길들도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신사로 가는 길
다이후쿠인
과거 신궁사였으나 지금은 신불분리로 아주 작은 불당 하나만 남아있다.
다이후쿠인(대복원)
벤케이가 태어났다는 곳
과거 타나베별당의 거소
신사로 간다
송덕비라는데..
두 번째 도리이
이건 돌로 되어 있다.
투계신사
토케이신사 표석
이 당시 갔을 때는 건물 여섯 동이 현지정문화재였는데 2017년에 중요문화재로 승격되었단다.
안내판
여섯 곳의 사전에 여러 신을 모시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구마노혼구대사의
것을 따르지만 이 동네가 다 그렇듯이 구마노권현의 구성이 헷갈린다.
쿠마노권현은 총 12좌로 이루어져 있고 12신을 모시는데 이 곳은
아무리 적게 세어도 14명이 넘는다. 거기에 팔백만신까지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어전: 하야타마대신=스사노오
본전: 이자나미
상어전: 이자나기, 아마테라스, 우카노미타마
중어전: 니니기, 우가야후키아에즈, 호오리, 아메노오시호미미
하어전: 카구츠치, 미즈하노메, 와쿠무스비, 하니야스
팔백만전: 아메노타치카라오, 팔백만신
혼구대사와 비교해보면 일치시키는 신에 약간 차이가 있고 우가야후키아에즈, 아메노타치카라오,
팔백만 신이 추가되어 있다. 아마 팔백만 전은 새로 만든 것 같은데 우가야후키아에즈는
아마테라스의 계보 중 진무천황의 아버지만 빼먹은 게 뭐해서 넣었는지도
경내
동으로 만든 신마
배전
에도시대의 건물
뒤편으로 여섯 동의 사전이 있다.
본전
본전은 이자나미를 모신다.
본전 풍경
옆으로 늘어선 사전들
이들 건물이 모두 각각의 신을 모신다.
안내문이 있다
서어전
여러 사전들
상어전
아마테라스, 이자나기를 비롯한 3신
중어전
니니기를 비롯한 4신
하어전
카구츠키를 비롯한 4신
팔백만전
아메노타치카라오와 팔백만신으로 묶인 모든 신
배전 측면
서어전
스사노오를 모시는 곳
정확히 말하면 혼구 외에 신구와 하야타마의 신을 모시는 곳인데 고토사가노오는
스사노오, 이자나미 등 동일시되는 신이 다르거나 아예 독립적인 신으로 취급한다.
안내문
이곳이 고대 제사 터로 산악숭배와 나무숭배를 했다는 안내문
서어전
대흑천과 에비스를 모신 섭말사
안내문
전경
또 다른 섭말사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다.
벤케이와 탄조의 동상
벤케이가 수군의 겐지 가담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으로 벤케이는 탄조의 아들이었다는 전승도 있단다.
사전 전경
본전 지붕
독특하다
이제 나가는 길
다시 신사를 나가
남쪽으로 향한다
잠시
바다가 보이지만
우리는 혼구대사로 가는 나카헤치를 따라 간다.
멀리 보이는 산
저 구마노의 산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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