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6일 타나베2 (쿠마노혼구대사熊野本宮大社)

同黎 2019. 4. 1. 02:33



311번 국도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간다.


말 그대로 산 넘고 강 건너 가는 길

톤다가와를 건넌다.


이 점점 높아진다.


산 속으로 가는데


톤다가와를 따라 올라간다.


점점


차는 사라진다


이 안쪽은 거의 다 산지라 마을이 별로 없어 사실상 혼구대사만을 위한 도로이다.

 

그래도 참배객은 많다.


키이반도를 가로지르는 중


태풍의 영향으로 산사태가 났나보다.


어휴 무섭다


공기도 차갑다


계속 들어가는 길


산이 정말 겹겹이 쌓여 있다.


들어가는 길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가 혼구대사가 있는 곳이다.


류진버스는 와카야마현의 산지를 관통하는 노선을 유지하는 버스이다.

1100km를 운행하는 나라교통의 야기신구선까지는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노선을 자랑하는 버스


혼구대사 주차장


뒤편이 본래 혼구대사가 진좌했던 산이다.


뒤로 보이는 도리이가 바로 그 자리


일본 최대의 도리이로 수해로 이동한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따 가보기로


세계유산 쿠마노혼구관이라는 작은 전시관이 있는데 여기도 이따가 가기로


드디어 왔다.

구마노 삼산 중에서 유일하게 못온 곳

교통이 너무 심하게 안 좋아서 차로 올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으로 오사카에서 구마노삼산을 돌려면 2박 3일이 걸린다고 한다.


쿠마노혼구대사(熊野本宮大社, 웅야본궁대사, 쿠마노혼구타이샤)는 쿠마노삼산 중 하나로 일본

건국신화와도 연결되는 유서 깊은 신사이다. 본래는 이 지역의 호족인 쿠마노코쿠소(熊野国造)의

우지신사로 생각되는데, 이 쿠마노코쿠소 일족은 백과사전에는 진무천황의 동정을 방해하는 야마토

지역의 호족 나가스네히코가 섬기던 신 니기하야히(饒速日命)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런데 혼구대사

측에서는 니기하야비를 신화의 계보상 천손강림한 니니기의 동생인 아메노호아카리(天火明命)와

동일시한다.  이것은 아마 쿠마노코쿠소의 후손인 와다씨가 자신들의 조상이 천황의 적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헤이안시대 초기에 고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진무천황은 나가스네히코에게

진 것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공격했기 때문이라 여기고 배를 타고 기이반도의 쿠마노에서

올라가며 야마토 지역을 공격하는데 신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때 아메노호아카리가

아들 타카구라지를 시켜 진무천황에게 후츠노미타마라는 신검을 바친다.

그리고 타카미무스히는 하늘에서 삼족오인 야타가라스를 보내어 진무천황을 카시하라까지 인도한다.

이 신사는 그 야타가라스를 신의 사자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12좌의 신 중 주신으로 섬기는

신은 케츠미고노카미(事解之男神)라는 신으로 스사노오와 동일시되는데 그 근거도 없고 야타가라스와

스사노오도 관계가 없다. 게다가 헤이안시대 신불습합이 되면서 구마노권현이 당나라에서 날아왔다는

연기까지 생기며 진짜 혼구대사의 신이 누구였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하여튼 전승에 따르면 10대 스진천황 때 이곳의 거목에 3개의 달이 내려왔고 에모노호아카리의 손자인

쿠마노노 무라지는 불가사의하게 여겨 점을 쳐보니 그 달이 나는 증정대권현(케츠미고노카미=스사노오)

이고 양쪽의 달은 양소권현(쿠마노후스미대신, 야하타마노오대신)이니 사전을 지어 공양하라고 하여 신사

를 지었다고 한다. 이후 13대 세이무천황 대에 쿠니를 결정하면서 키이반도의 남부를 쿠마노노쿠니로 만들

고 쿠마노씨에게 국조직을 맡겼다. 이들이 모노노베씨의 선조라고 전하여 이 후손들이 신관직을 이어왔다.

이후 나라시대 경에 불교와 습합되기 시작하여 헤이안시대에는 쿠마노권현이라는 이름으로 깊게 신앙되고

수험도와도 결합되어 결국 하야타마대사, 나치대사의 3사가 하나로 합쳐져 3사의 신을 공동으로 모시게

되면서 총 3사 12전의 신이 나타났다. 헤이안시대 전기에는 천태종 승려들이 이곳에서 법화경을 수행

하면서 이 곳의 영험함이 알려졌고 후기에는 정토신앙이 발전하면서 이 곳이 극락정토로 여겨졌다.

이후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구마노에 참배했고 상황이었던 우다천황, 카잔천황, 시라카와천황,

고시라카와천황이 직접 참배했다. 그 중에서도 고시라카와천황은 34번이나 이곳에 행행하였다.

이후 헤이안시대 후기~가마쿠라시기에 상황의 행행을 담당하는 쿠마노별당이 생겼으며 가마쿠라시대

에는 이 곳에서 잇펜이 득도하여 구마노권현으로부터 신탁을 받았다고 하여 시종을 만들기도 했다.

쿠마노신앙이 퍼지면서 전국에 3만 개가 넘는 쿠마노신사가 건립되었는데 신불습합의 결정체였기 때문에

이게 절하고 같이 간다. 그리고 스사노오=우두천왕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면서 이곳의 쿠마노우왕부라는

부적에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퍼져 맹세의 의미로 우왕부에 맹세의 내용을 작고 수압을

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후 쿠마노혼구대사는 키슈번 신불분리령으로 1차 타격을, 신정부의 신불분리령으로

2차 타격을 받고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더군다나 1889년 쿠마노가와가 범람하여 사전들이 파손되자

12전 중 상4사만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중4사와 하4사는 원래 자리에 석조로 간소하게 지어졌다.


구마노혼구대사라는 표석


그래도 쿠마노대권현이라는 권현호가 남아있다.

보통 혼구, 나치, 하야타마 3사의 주신 3명을 일체화하여 구마노권현이라고 한다.


경내 안내문


참도


계단이 보인다



기어 올라가는 중


아래쪽


올라가는 길의 비석

하라에도노카미를 모시는 곳으로 이 신은 신사에 들어갈 때 더러움을 털어주는 불제를 담당하는 신이다.

여기서 기도하여 불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올라간다


테미즈야


경내도


이것이 구 경내도이다.


물이 빙 돌아가는 곳에 있었기에 수해를 입은 것


안내문


보물전이 있다


들어가봐야지


배관료 300엔


키슈번에서 바친 갑주


아오이 문양이 선명


일본제일대영험소

근본구마노삼소권현이라는 옛 현판


동경


신보로 바친 것



동경

중국 명나라


신창



카타나


카타나


전 오기마치천황의 와카



에도시대의 벼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장



노 가면



등롱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바친 것


철탕부

중요문화재

1198년의 명문이 있는 거대한 솥이다.


안내문


우왕보인 목판과 예시


다시 올라간다

옛 자리에 세운 일본에서 제일 큰 도리이


다 올라왔다


부적을 파는 곳


신구 행 노선버스 시각표


기도하는 방법


경내 안내문


야타가라스 깃발이 보인다.


신문


거대한 깃발


유서기

다만 주신인 케츠미고노카미의 정체에 대해서는 스사노오가 아니라 이소타케루라는 설이나

이자나미라는 설도 있다. 이자나미가 죽어 묻힌 곳이 이 곳 쿠마노라는 설이 있기 때문


과거 관폐대사일 때의 표석


안내문


야타가라스에 대한 설명


현재 일본축구협회 상징이다.


에마


과거 이름인 쿠마노니마스신사(융야좌신사)라는 현판


사전


현재 1, 2전이 같은 건물이며, 3전, 4전까지 이렇게 총 3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로 19세기 건물이지만 신사건축 양식을 잘 지키고 있어서 지정되었다.


제4전


제3전


제4전은 아마테라스를 모셨다.



제3전은 본사로 주신 케츠미고노카미를 모셨다.

스사노오로 일단 정리



제1, 2전은 같은 건물에 문만 두 개


제1전에는 쿠마노후스미오카미=이자나미



제2전 입구


제2전에는 쿠마노하야타마노오카미=이자나기를 모셨다.



한쪽에 있는 아타가라스 조각


귀석


이즈미 시키부의 기원탑

이즈미 시키부는 헤이안시대 중기의 시인으로 유명한 여성이다.


안내문


기도소인 여명전


근대의 건물


이제 내려간다


쿠마노혼구관에 왔다.

휴게소와 간단한 전시관 역할


뒤편으로 과거의 터에 세운 도리이가 보인다.


일본에서 제일 큰 도리이


높이 33.9미터, 너비 42미터


사진 찍는 중


근처까지 가본다.


쿠마노가와


전시관 안에는 수험도 수행자 모형도 있고


옛 신사 모형도 있다.


한쪽에는 축구협회의 물건들



천황배 자료


유명한 선수들이 싸인해 봉납한 공


뭐 이제 다음 장소로 간다.


강 유역이 넓어졌다.


이 산속에


이렇게 넓은 강이라니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다리


우리는 계속 동으로


경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