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더 내리지만 갈 곳이 남았다.
비가 정말 거세지는 중
키즈가와를 건너가는 중
산 위로 올라간다
엄청나게 험한 길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장지훈은 경차로 미친 운전력을 보여줬다.
하 여기 사는 사람 차 외에는 없는 것 같은데
하여튼 카사기데라에 도착
평소에는 이렇게 이쁘다는데
뭐 어쨌든 지금은 태풍 중이라
이런 데도 문을 연 식당이 있다니
가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등산 중
계단
하이킹 코스라니
계속 산을 올라가니
드디어 문이 나온다.
카사기데라(笠置寺, 입치사)는 진언종 지산파이다. 이 동네는 뭐가 있었는지 가는 데마다 진언종 지산파다.
이 곳은 나라에 궁전과 사원을 건설할 때 건축용 목재를 베어 키즈가와를 통해 운반하는 곳이었다.
그 중 거대한 자연암반이 있어 수험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창건은 텐무천황이
왕위에 오르기 전이라고도 하고 텐지천황의 아들인 오토모황자(코분천황)가 세웠다는 전승도 있다.
콘자쿠모노가타리에 의하면 오토모황자(다른 전승에는 텐무천황)가 사슴 사냥을 하고 있을 때
절벽을 만났는데 사슴은 절벽을 뛰어넘어 도망갔지만 자신의 말은 절벽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모황자가 산의 신에게 만약 나를 도와준다면 이 바위에 미륵불을 조각하겠다고 기도하자
무사히 그곳을 벗어났다. 이후 이곳에 미륵불을 새기려고 삿갓을 두고 간 것에서 절의 이름이
유래된다. 이후 그 곳에 미륵불을 조각하려 했는데 너무 높아 힘들어하자 천인이 나타나 미륵불을
새겼다고 하는 것이 시작이라 전한다. 고고학적으로는 나라시대에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는 도다이지 별당인 료벤과 제자들이 창건한 것으로 료벤이 이 곳의 동굴에 들어가 수행할 때
수법을 통해 키즈가와의 바위를 뚫어 수운을 열었다고도 하고 제자인 실충이 이 곳 동굴에서 수행했는데
이 곳이 도솔천과 통하는 곳이어서 도솔천에 실제 갔고 이후 미륵보살을 만나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다고도
한다. 헤이안시대 후기에 말법사상이 퍼져 이곳에 미륵을 뵈러 오는 황족과 귀족이 줄을 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고후쿠지 출신의 승려 조케이(정경)가 이 곳을 부흥시키고 이후 이 곳은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가마쿠라시대 말기 고다이고천황이 막부 토벌의 계획을 들키자 바로 이곳에서 도망쳐서 3천의
군사로 거병한다. 막부군은 나중에는 천황 편이 되는 아시카가 다카우지, 닛타 요시사다 등 7만 5천 명을
보내 토벌하려 하지만 카와치 등에서 쿠스노키 마사시게 등이 거병하고, 천황도 이곳의 요새를 활용해
선전하지만 결국 막부군 측이 이곳에 방화하자 막부군에 붙잡힌다. 물론 이 양반은 유배갔다가 다시
탈출한 뒤 또 거병해 겐무신정에 성공한다. 하여튼 절은 전소하고 마애미륵불도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이후 재흥한 카사기데라는 화재와 재흥을 거듭하지만 최전성기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에도시대에는
이곳이 토도씨 츠번의 영지가 되어 본당을 다시 세우지만 에도시대 쇠퇴하면서 메이지시대 초에는
아예 폐사된다. 이후 1876년에 재흥하여 지금에 이른다.
텐무천황, 고다이고천황과 관련됐다는 비석
유서
앞에는 카사기등롱이라고 하는 석등이 있고
향로도 있다
본존 마애불 앞에 있던 것으로 나라시대로 추정한다고 하지만 모르겠다.
무로마치시대 이후에는 츠쿠바이로 썼다고
안내문
종루
안내문
해탈종이라고 한다
중요문화재
1196년이라는 기년명이 있다.
맨 잎이 육엽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매우 드문 예로 중요문화재이다.
매표소가 문을 닫았다.
오늘 같이 태풍치는 날은 무료라고
전경
진수사인 가스가사
안으로 들어간다
안개가 자욱하다
저기 본당이 보인다.
멀리 절벽에 보이는 마애불과 석탑
이 석탑은 가마쿠라시대 전성기 십삼층목탑이 있던 자리로
가마쿠라시대 말~무로마치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중요문화재
본당 이름은 정월당
본당이라고 하지만 불상이 없고 사실상 앞의 마애불을 예배하는 배전이다.
무로마치시대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쇼와시대 크게 개수되었다고 한다.
정월당 현판
거대한 바위들
여기가 오토모황자 혹은 텐무천황이 죽을 뻔했다는 절벽
삿갓을 두었다는 입치석이다.
십삼층석탑
양 옆으로 오륜탑이 있다.
전경
안내판
오륜탑
본존 마애미륵불
지금은 광배 부분만 흔적이 있지만 과거에는 분명 불상이 있었다고 보인다.
가마쿠라시대에 그려진 카사기만다라도
중요문화재로 야마토분카칸 소장
마애불과 십삼층탑이 잘 나타나있다.
나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헤이안시대라는 설도 있다.
안내문
2000년대 들어 특수카메라로 촬영해 조각을 확인했다고
고다이고천황이 막부군과 싸울 때 막부 측의 방화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적만 있다
현재 무로지 앞 오노데라의 마애불이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오륜탑
더 들어가본다
내려가는 길
정월당을 받치고 있는 무대
또 하나의 바위가 나온다.
허공장보살을 새긴 마애불
중간에 있는 작은 신사
천수굴로 천수관음을 모시고 있다고
마애불
잘 남아있다
천수굴
거대한 화강암
거대한 암벽
마애불로 가본다
허공장석이라고 부른다.
잘 남아있는데 문화재 지정이 안 되어 있다니
나라시대라는 설이 가장 많고, 헤이안시대 초기, 헤이안시대 후기라는 설도 있다.
마애불 자체가 별로 없는 곳이니 비교할만한 상대가 없다.
대좌의 부분
정면
보살상
역시 약간 안으로 깊이 판 다음에 선각으로 새겼다.
상호
작은 낙서들
대좌의 구름모양
올려다 본 모습
측면
잘 남아있다
홍법대사가 새겼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
안내문
더 내려가면
굴이 하나가 나온다.
이게 도솔천으로 통한다는 동굴이다.
수험도의 수행장소로 이 곳을 통과하면 태내를 통과한 것처럼 깨끗해진다고 한다.
수험도에는 폭포 수행이 중요한데 여긴 폭포가 없어 대신 사용했다고
안내문
옆면
이제 나간다
정월당의 모습
천수굴 안내판
마애불을 지나 나간다.
다시 나가는 길
저 위에 있는 건 대사당
시간이 없어 빨리 산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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