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43일 교토 라쿠추1 (코쇼지興正寺·니시혼간지西本願寺)

同黎 2020. 2. 17. 16:59



갑자기 비가 내린다.

뭐 일정이 거의 다 끝났으니 괜찮다.


길 건너로 보이는 니시혼간지와 코쇼지


오랜만에 코쇼지에 들린다.


코쇼지 입구


니시혼간지가 워낙 커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코쇼지도 그 일부 같아 보이지만

사실 다른 데 놓고 보면 상당히 큰 대가람이다.

오기는 오랜만이다



코쇼지(興正寺, 흥정사)는 정토진종 사찰로 진종 흥성파의 본산이다.

본래 오랫동안 니시혼간지의 자원이었는데 메이지유신 후 독립하여 독자적인 파를 이루었다.

이 절의 역사는 꽤나 길다. 교조 신란이 에치고로 유배갔다가 사면받아 교토 야마시나에 코쇼지라는 절을

세운 데서 유래되었다. 이후 그 제자가 물려받았으나 실제 사찰의 역사는 7대 주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정토진종 세력은 교토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랫동안 동일본을 떠돌아 다니다가 7대에

이르러서 교토에 돌아왔기 때문. 이들은 이후 혼간지가 되는 세력과는 대립하며 불광사라는 사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천태종 히에이잔의 공격과 오닌의 난으로 쇠락하였고 또 혼간지와 대립하면서

결국 무로마치시대 말기에는 혼간지 렌뇨의 세력으로 통합되고 대신 독자적인 법통은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니시혼간지의 교토 정착과 함께 그 옆에 사찰이 세워져 정착했고 메이지유신 이후에

독립했지만 1902년 화재로 사찰이 전소되어 지금의 가람은 1910년대의 것이다.


흥정사라는 표석


니시혼간지와 해자를 공유한다.


어영당


종루


내부는 공사 중


아미타당

아미타당은 닛코 도쇼구, 지온인 삼문과 함께

에도시대 대규모 사원 건축의 대표적 작품이었다는데 소실되었다.

 

안내판


옆으로 혼간지 대서원이 보인다.


아미타당


경장

유일하게 남은 에도시대 건축



경장의 현판


어영당

꽤 큰 건물이다.


아미타당


내부로 들어가본다


쇼토쿠태자가 조각했다는 아미타불상이 모셔져 있다.


역대 조사를 모신 칸


역시 정토진종 건물답게 내부가 화려하다.


2대부터 7대 주지


교조 신란


본존


조각이 화려하다


아미타불


따로 지정은 되지 않았다.


쇼토쿠태자


쇼토쿠태자를 모신 칸


어영당으로 통하는 회랑


거대한 귀면와


전경


옆으로 보이는 국보 혼간지 대서원


어 내부에 갈 수 있다.

어영당에서 본 아미타당


어영당 내부


화려한 금빛 조각들


내부에 모셔진 신란의 조각


명호 본존이 모셔져 있다.


이건 누군지


역대 주지들


이제 밖으로 나간다.


작은 통용문


니시혼간지와 코쇼지 사이의 골목길


류코쿠대학에서 세운 류코쿠뮤지엄

여긴 잠시 후에 가본다.


어영당문과 아미타당문

문이 여러 개인데 이 두 개가 중요문화재이다.


길 건너편에 있는 총문

지금은 옛 사역에 길이 났지만 예전에는 저기가 입구였다.

중요문화재


어영당문으로 입장


들어가면 목은병이라는 중국에서나 있을 것 같은 가림벽이 있다.


뒤에 보이는 어영당



니시혼간지(西本願寺, 서본원사)는 정토진종 본원사파의 총본산이다. 자신들은 그냥 혼간지라고

하는데, 정토진종 오타니파가 히가시혼간지(동본원사)라고 공식 표기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이곳은 사실상 정토진종의 최대 본부이다. 정토진종이 오랫동안 독립적인 군사집단으로 살아가다가 오다

노부나가와 전투 끝에 화해하여 오사카에서 나온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하여 교토로 입성하게 된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요제이천황의 칙허에 따라 지금의 니시혼간지 땅을 기증하고 이후 혼간지

주지 자리를 둔 두 후계자의 다툼에 따라 동서혼간지가 분립한다. 오카자키에 있을 때부터

진종 때문에 고생을 한 이에야스의 책략이라고도 하는데 정설은 아니라고 한다.

히가시혼간지가 화재를 통해 많은 건물을 메이지시대 재건한 것과는 달리 니시혼간지는 창건 이후 모습을

비교적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모모야마시대 걸작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당문과 비운각은 히데요시의

저택은 주라쿠다이에서, 서원은 후시미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이야기되나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외에 어영당, 아미타당, 북노무대, 흑서원 및 전랑이 각각 국보로

현관동 및 욕실, 남노무대와 경장, 고루, 테미즈야, 고루, 문 3동 및 각종 담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 어영당


국보 아미타당

두 건물 모두 에도시대 초기 대형 건축의 모범이다.


한쪽에 있는 휴게소

옆에 테미즈야는 중요문화재


어영당


어영당문


옆의 코쇼지


건물 위로 올라간다.


멀리 보이는 어영당문


번쩍번쩍한 마루


천정의 모습


마루가 엄청나다


내부의 모습


금을 바른 내진


운동장만하다


내부에 신란의 초상을 모셨다.

국보로 지정된 생전의 초상이 있는데 그건 지금은 다른 곳에 보관 중이고


내부


명호본존이 모셔진 칸


나무불가사의광여래


후스마에


견진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면칸


메이지천황이 신란에게 내린 시호이다.


내부에 목조각이 모셔져 있다.


잘 안 보인다.


옆칸


명호본존


후스마에


엄청나게 화려하다


전경


밖에는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뿌리가 하늘에 솟은 것 같아 거꾸로 된 은행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이제 아미타당으로 간다.


두 건물을 이어주는 회랑


역시 국보


이 뒤편에는 정원과 서원이 있는데 이렇게 막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회랑 정면


아미타당문

중요문화재


아미타당에 도착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

역시 화려하다


아미타여래와 역시 고승들을 모신 곳


멀리 고승의 진영이 보인다.


천정


정토종 개조 호넨의 초상


예불 준비 중


화려한 전등


정면의 아미타여래


정면 아미타여래


불칸

바로 옆에는 잘 안 보이지만 용수, 천친, 담란, 도작, 겐신의 다섯 명이 모셔져 있고


별도로 양쪽에 호넨와 쇼토쿠태자를 모신다.


쇼토쿠태자


넓다


회의 회관 건물


예전에는 회관에서 숙박하면 아침에 서원을 볼 수 있었다는데


경장

중요문화재


아미타당에서 본 전경


공포


넓은 마루


아미타당문


경장


어영당


크다 정말


경장


전륜장이라는 현판


안내판


아미타당


아미타당문


어영당


이제 측면의 당문으로 간다.

현관동


국보 당문


안내판


본래 주라쿠다이의 문이었던 것을 도요쿠니신사에 옮겼다가 다시 옮겨왔다고 하는데 정확하진 않단다.

다만 건물의 조각이 너무 화려해 다 보면 하루가 넘게 걸린다고 하여 유명하다.


화려한 조각등

닛코 도쇼구를 연상케한다.


정면


화려하다


최근에는 공사에 들어갔다.


문짝의 사자들


측면


박공의 조각


조각이 없는 곳이 없다.


이제 나가는 길


여기도 한 번 찍어본다.


어영당


어영당문으로 나간다


매월 16일은 신란데이라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때 서원을 보여주기도 한다.


길 건너 총문 옆에는 전도원이 있다.

전쟁 전에는 진종신도생활보험회사 본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중요문화재


총문 안내판


이제 류코쿠뮤지엄으로 간다.


옆에서 본 총문


코쇼지. 교토를 교토답게 만들어주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