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난 아침
둥단역으로 이동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천안문동역으로 간다
역시나 삼엄한 경비의 출구
지난번에 올 때 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감시가 심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와서 그런지 지하철 출구 검문소에서 줄을 길게 서지는 않는다
내리면 보이는 국가박물관
엄청나게 거대한 박물관
여긴 나중에 다시 와야 한다
이제 두번째 검문소로 간다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 天安門廣場) 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검문소
멀리 보이는 천안문
인민대회당
검문소를 지나 남쪽의 횡단보도를 향해 내려간다
점점 가까이 보이는 천안문
중국국가박물관
이것도 거대한 건물이지만 오늘은 관람할 일정이 아니다
횡단보다 건너편에 보이는 인민영웅기념비
횡단보도에도 경찰이 통제를 해서 길게 기다렸다 가야한다
멀리 보이는 모주석기념당
천안문광장 가운데 있는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纪念碑, 人民英雄紀念碑)
1949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 전체회의 이후 중국현대사를 기념하여 중국근현대사의 8가지 장면을 새긴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후 1953년 최종 수정되었다.
정면에는 '인민영웅 영수불후'라는 모택동의 친필이 뒷면에는 인민영웅기념비라는 주은래의 비문이 써 있다. 그리고 기단부에는 아편전쟁, 태평천국운동, 무창봉기, 5.4운동, 5.30 상하이 총파업, 남창봉기, 중일전쟁, 홍군의 장강도하의 8가지 사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10월 1일 건국기념일과 9월 3일 항일전쟁승리기념일에 화환을 바친다.
이후 중국의 국보 겸 사적 격인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1976년 주은래 총리의 서거를 계기로 이후 일어난 제1차 천안문 사태에 주은래의 영정이 안치되었고, 1989년 제2차 천안문 사태(천안문 6.4 항쟁) 당시에는 후야오방 당 총서기의 영정을 안치하고 학생들이 시위 사령부 역할을 하였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압으로 부조 등에 총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천안문 사건을 불편하게 여기는 중국 당국 때문에 현재는 기단 근처에도 못가고 있으며 군인들이 감시하고 있다
기념사진
날은 좋다
이행묵도 기념사진
이게 정면
모택동의 글씨가 보인다
안내문
뒤편으로 가면 모주석기념당이 있다
중국 국가박물관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된 모주석기념당(毛主席纪念堂, 毛主席紀念堂)
저번에는 지나갔지만 이번엔 들어가보기로 한다.
이쪽에도 횡단보도가 있다
모주석기념당이 있던 자리는 본래 황성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인 대청문이 있었던 자리이다.
그러니까 이런 구조
북경성 내성의 남쪽 정문인 정양문 바로 앞에는 궁성으로 들어가는 첫문인 대명문이 있었다. 이 문은 천안문 앞으로 엄청 길게 돌출되어 있었고 담으로 둘러쌓여 있엇다. 이후 청의 건국으로 대청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신해혁명 이후로는 중화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닥 1952년 천안문광장이 확장되면서 해체가 되었고 그 자리에 모주턱기념당이 ㄷㄹ어사게 되었다
모주석기념당은 입장료가 없고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만 연다
그러나 행사가 있거나 날씨가 안좋으면 관람이 제한되고 또 늦게 가면 지옥행이 열린다고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무슨 일인지 아주 한가했다
입장료는 없지만 횡단보도 건너편에 짐을 맡기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15위안을 내고 짐을 맡겨야 한다.
모든 가방, 카메라, 액체류를 맡겨야 하는데 자금성 갈때 가방을 안가져갈 수는 없으니 사실상 입장료
내부의 마오쩌둥 흉상
나름 기념 사진포인트 역할을 한다
짐을 맡겨야 하는데 주머니에 들어가는 지갑과 핸드폰은 휴대 가능
이제 줄을 선다
반대편에 보이는 인민대회당
이제 모주석기념당으로 들어간다
1977년 지어졌으며 길이 220미터의 정방형 건물이다
모주석기념당이라는 현판은 화궈펑이 쓴 글씨이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거의 스쳐지나가듯이 걸어가야 한다
군인이 정말 많다
일단 들어가면 거대한 산수화를 배경으로 모택동의 석상이 있으며
입구 근처에는 꽃을 팔아서 이곳에 헌화할 수 있다
시신이 안치된 첨앙청 모습
뒤에는 '위대적영수화도사 모택동주석 영수불후' 즉 위대한 지도자이자 교사이신 마오쩌둥 주석은 영원히 불멸하실 것이다라는 글씨가 써있다
이건 조금 예전 모습으로 내가 갔을 땐 시신이 있고 그 주변에 네명의 군인이 서 있으며 그 전체를 덮은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다. 저런 작은 관이 아니라
등소평이 참배하는 정치화
시신은 중국공산당기를 덮고 있다. 직접 보니 마네킹 같고 좀 무서웠다
레닌도 그렇고 호치민도 그렇고 위대한 지도자들은 매장해주는 것이 좋지 않나
여튼 이제 뒤쪽으로 나왔다
뒤에서 본 기념당
뒤편은 좀 자유로운 분위기
뒤편과 똑같은 현판
기념당을 나오면 바로 정양문(正阳门, 正陽門)이 나온다
황성의 남쪽 정문
북경 내성의 남쪽 정문이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다.
잘 알려져있듯이 북경성은 허물어져 지금 2환이라고 부르는 순환도로가 되었는데, 지금 뒤늦게 나머지 문들 재복원하고 있다.
이리로 나오면 되돌아갈 수 없으니 강제로 관람하게 된다
기념사진
정양문도
마지막으로 사진 찍고
남문에 있는 두개의 기념상
혁명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남쪽에서 본 모주석기념당
거대하다
문제는 이걸 빙 돌아 다시 돌아가야 한다
으어
좌우에는 매점에서 기념물을 판다
나도 하나 샀다
초상화
가까이서 본 정양문
크다
명청대 성문은 성문 본루와 앞에 두는 방어용 전루를 두는 이중식이다
전루와 정양문 모두 살아남았으나 두 건물을 연결하던 성벽을 헐렸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정양문-대청문-천안문-단문-오문-태화문을 거쳐서 태화전에 들어갔다
다시 천안문으로 가는 길
인민영웅기념비
적기가 걸려 있다
정면의 모습
이제 천안문(天安門, 天安门, 텐안먼) 방향으로 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사진
좋단다
나는 거의 죽어가고 있구나
천안문 정면
사진찍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이제 지하보도를 건너 천안문으로 간다
황성의 정문인 천안문
본래 명나라 때의 이름은 승천문으로 이자성의 난으로 소실되었다가 청나라 순치제 때 재건된 것이다
이곳의 문루가 대단히 큰데, 여기서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는 개국대전을 행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문이 아니라 왠만한 궁궐의 정전이라고 할 정도로 큰 문이다. 문루 정면만 9칸
유명한 모택동의 초상화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구호가 걸려있다
모택동의 초상화가 문화대혁명 당시 자금성을 보호하려 걸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원래 여기에는 장개석의 초상이 걸려있었고, 이후 모택동의 초상으로 바뀐 것이며 1949년부터 걸려있었다.
천안문은 중국의 국장에까지 등장하는 문이고 개국대전을 한 곳이니 헐릴 일은 없었다
건너편 광장 모습
지하보도를 건널 때도 검문을 한다
이제 천안문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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