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2차

뼈속까지 북경여행기 - 2일 천안문天安门·사직단社稷坛(중산공원中山公园)

同黎 2018. 8. 12. 16:03



천안문 앞에 서 있는 화표

성스러운 구역을 상징하는 기둥이다. 우리로 치면 망주석에 해당하지만 무덤이나 궁궐 어디나 세워진다는 차이가 있다


이 석사자와 함께 명나라 북경 천도 때 세워져 지금가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대한 천안문

과거 황성의 정문으로 북쪽의 지안문과 한쌍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좌우 성벽이 헐리고 문루와 문만 남았다. 본래 명나라 때는 승천문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이자성의 난 때 소실되고 지금의 문은 순치제 때 다시 지은 것이다. 이후 청말 민국초 당시 황폐화되었다가 1952년 수리가 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은 다소 여러가지 행사를 위한 무대 겸 관람대의 역할이 된 느낌이 있다


성루의 높이만 35미터 길이는 57미터 폭 21미터로 왠만한 정전보다 크다

성문 앞에는 금수하라는 인공 강이 흐르고 그 위로 5개의 금수교라는 다리가 놓였다


기념사진


천안문의 현판은 현재 중국의 국장으로 교체되어 있다

중국의 국장에도 등장하는 문이니 중국의 상징일 수 밖에

마오쩌뚱의 초상화는 5번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장제스의 초상이, 그리고 스탈린이 죽었을 때는 잠시 스탈린의 초상이 걸린 적도 있다고

모택동의 초상은 종종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1989년 천안문 항쟁 당시 잉크를 맞기도 했고 이후 몇차례 주로 위구르 독립운동의 목표가 되어 왔다. 이게 성공한 것이 총 3번. 2013년에도 위구르인이 천안문으로 돌진하는 일종의 자폭테러를 시전하기도 하였다

 

성문은 총 5개


들어간다


내문 내부


밖으로 나오면 또 한쌍의 화표가 있다


뒤로 보이는 문이 단문


저길 넘어야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이 나온다


본래 천안문 위로 올라가려 했는데 일단 자금성 입장권 표가 너무 길어서 그곳부터 가기로 했는데

천안문~오문 사이는 후진이 안된다..

천안문 위로 올라가 보려면 여기서 밖에 기회가 없다. 아니면 중산공원(사진단)이나 태묘를 거쳐 엄청 빙 돌아가야 한다


멀리 보이는 단문


천안문과 오문 사이의 문으로 지금의 문은 강희제 때 재건된 것이다

과거에는 성루에 각종 의례에 쓰이는 의식구를 보관했다고 한다


중국국가박물관의 전신인 중국역사박물관이 오문과 단문 성루에 처음 설치되기도 했다

지금은 고궁박물원의 일부가 되었고 과학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가 갔을 당시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단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나온다


거의 시작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정오 인근만 되면 헬이 열린다


표 사고 잠시 휴식 중


이제 오문이 보인다


지나온 단문


오문

자금성의 정문


자오선의 午자를 써서 오문이다

이곳은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중국 박물관사(史)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지금은 다른 곳 부터 보기로 한다


오봉루라고도 하는 오문의 문루를 끼고 왼쪽으로 간다


반대편에 보이는 문루


오문 좌우에는 각각 문이 있는데 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엔 사직단(중산공원), 오른쪽엔 태묘가 자리잡았다. 전에 태묘는 봤기 때문에 이번엔 사직단을 보러 간다


1차 여행기 (태묘)

http://ehddu.tistory.com/1098


황제를 기준으로 좌에 사직단을 우에 태묘를 두는 좌묘우사의 기준으로 이곳에 사직단을 둔 것


문을 통과하면 자금성의 성벽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중산공원이라는 표지판


명나라는 북경으로 수도를 정하는 태묘와 주요한 9개의 단을 쌓는다. 그것이 원구(천단), 방택(지단), 기곡단, 일단, 월단, 태세단, 선농단, 선잠단, 사직단이다. 이후 청나라에서 만주식 제사나 역대 청 황제 등을 모시는 각종 제단을 신설하고 이곳이 태묘를 합쳐서 8묘가 된다. 태묘, 봉선전, 전심전, 수황전, 옹화궁, 당자, 문묘, 역대제왕묘가 그것이다. 

그중 천단과 함께 가장 중요한 단인 과거 사직단(社稷坛, 社稷壇)이었던 이곳은 현재 23만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공원이 되었다. 청황제의 퇴위 이후, 사진단이었던 이곳은 중국 최초의 공원으로 정비되어서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 과정에서 정원이 설치되고 기존 건물 일부가 철거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1925년 손문이 죽은 후 그 시신이 이곳 사진단 배전에 모셔졌기 때문에 이후 1928년 손문의 호를 따서 중산공원이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상당히 본래의 모습을 잃었고, 건물 등의 공산당 회의실 등이 되었다. 그러나 1988년 전국중점보호문물단위로 지정되고 복원이 시작되어서 사직단 부분은 비교적 복원이 되었다. 태묘야 서울의 종묘가 워낙 보존이 잘 되어서 엄두를 못내지만 사직단은 서울 사직단도 작살이 났기 때문에 잘 정비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과연


입구

요금은 3위안


내부


완전히 공원이 되었다


튤립밭


이 석조 정자는 격언정이라고 한다


1915년 공원 개장 당시 지은 건물로 지붕 부분에 공자부터 주자까지 8명의 격언을 새겨놓았다고 격언정이라고 한다.

문혁 기간 동안 격언 부분은 파괴되었다


쉬는 중


꽃밭이 있다


내부 바닥


천정의 모습


안내문


사직단 입구


이곳은 설명이 거의 없다

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극전

본래 극문이라고 하는데 문에서 강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본래 문 홍예마다 은색, 적색, 금색용 조각이 72개씩 있었는데 의화단 운동 진압 당시 약탈당했다고

이후 도서관으로 전용되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정협회의실이 되었고 지금 인민정치협상회의 북경시위원회 회의실로 이용되고 있다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나..


뒤편으로 나오는 배전


뒤돌아본 극전


운명이 기구한 건물이다


배전을 지나면


사직단이 나온다


넓은 단만 남아 있다


배전

중산당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손중산이 죽었을 때 그 시신이 잠시 안치되었다


본래는 평소 사직의 위패와 제기 등을 모시는 곳이다


이제 단으로 들어간다

단의 담장도 각 방향에 맞춰 색깔을 맞추었다

동쪽 방향이라 청색 유약을 바른 기와와 벽돌을 썼다


사직단 내부


기념사진


이곳에는 오방색의 흙이 깔려있다


문화혁명 기간 당시 모두 황토로 메꾸어지고 위에는 목화를 기르기도 하였는데 지금 복구되었다

 

사직단 위의 모습

사실 이곳도 이상한 것이 적색의 흙이 아니라 황색에 가깝다


신기하긴 하다


방향에 따라


색이 다른 담장




뒤편에는 음악당이 들어서있다


적색과 백색


중산당 정면


다시 중산당을 거쳐


문으로 나간다


격언정


앞에는 꽃이 심어져 있고


자금성을 둘러싼 해자 앞으로는 벤치가 놓여져있다


한가로운 모습


보기 드문 북경의 한가로운 시간


잠시 쉬는 중


저 안쪽에는 근대에 만들어진 정원이 있지만 그것까지 볼 여유는 없고


밖으로 나온다


이제 오문이 보인다


본격적으로 자금성을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