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6일 시모노세키3 (일청강화기념관日清講和記念館)

同黎 2020. 8. 3. 20:17



건물 앞에 가니 시모노세키 조약의 일본측 특명전권대신인

이토 히로부미와 무츠 무네미츠의 흉상이 서 있다.


이토 히로부미야 설명할 필요가 없겠고

무츠 무네미츠의 흉상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무츠 무네미츠. 키슈번 무사 출신으로 에도에서 사카모토 료마, 카츠라 코고로 등과 교류하며

료마가 만든 해원대에서 활동하며 료마와 함께 움직인다. 유신 이후에는 조슈번 위주의 신정부에

불만을 갖고 서남전쟁 와중 토사번 출신들과 정부 전복을 기도했으나 투옥되고 이토 히로부미의

도움으로 특사를 받아 런던 유학을 가서 정치학을 배우고 돌아와 외교관을 길을 걸어 미국,

멕시코 주재 공사가 되었고 야마가타 아리토모 내각 하에서 농상무성대신과 중의원을 지낸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2차 내각에서 외무대신을 지내고 불평등조각 개정을 이루는 한편 조선에

깊이 개입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의한 청의 출병에 맞춰 조선에 출병하도록 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한편,

이후 삼국간섭의 경우에는 수용하기도 한다. 이후 오래지 않아 폐결핵으로 사망.

일본 입장에서는 거의 최초의 제대로 된 외교관이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침략의 첨병


하여튼 이곳에서는 대접받는 중이다.


1937년 기념관을 만들 때 함께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념관


이곳은 청일전쟁 이후 이루어진 강화조약, 즉 시모노세키조약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다.

본래 조약은 아미다지의 방장 자리에 지어진 춘범루라는 고급 요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건물은 1937년 그 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세워진 건물로 내부에는 당시

조약장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현재 등록유형문화재이다.

조약이 이루어진 요정 춘범루(春帆楼, 슌반로)는 잘 나가다가 다이쇼시대 경영자의 사망으로

파산했는데, 이후 시모노세키의 명사들이 사들였다. 이후 이들이 일청강화기념관을 옆에 세웠는데

춘범루 본관은 1945년 공습으로 불타고 기념관만 살아남았다. 전후 여러 주인을 바꿔가며

떠돌다가 2003년 파산 후 오릭스 부동산에게 넘어가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시모노세키조약(下関条約, 하관조약, 마관조약)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된 조약이었다. 조선에 대한 청의 특별한 지위 박탈, 요녕반도와 대만 할양, 은 2억 냥의

전쟁배상금 등이 조건이었다. 이 중 요녕반도 할양의 삼국간섭으로 무산되지만

어쨌든 중화 중심의 천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등록유형문화재 명패


한글로는 청일강화기념관이라고 되어 있다.


누가 번역했나


일본어로는 일청


전시물들


춘범루라는 현판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


당시 조약 체결 모습을 재현


하마마츠리큐에서 하사받은 가구로 재현했다고


이홍장 자리


안내문


강화장 위


오 마건충도 보인다


청측 의자


도코노마의 모습


뭐가 많이 걸려있네


이홍장이 남긴 시



이홍장이 남긴 글씨

동치 연간인 것으로 보아 조약 이전 작품



당시 사진? 판화?


이홍장의 숙소


절 이름이 인접사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



나카다 타카노리의 글씨

무츠의 비서관



전경


춘범루도



일본 측에서 일부로 기념관까지 세울 만하다.

일본 제국주의 입장에서 최대의 쾌거였으니


강화담판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내용


사본인 듯


일문판


이홍장과 이경방


이홍장의 숙소에 있던 병풍



전경


이제 밖으로 나간다.


현재도 영업하는 춘범루


입구


이곳이 복어로 유명하단다.

그래서 복어 동상도 있다.


기념관 전경


여러가지 생각이 겹친다.


내려가는 길


모지항 방면


메이지천황이 왔다갔다는 기념비


전경


사적 춘범루라는 안내문

이제 다음 장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