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6일 시모노세키 초후6 (이미노미야신사忌宮神社)

同黎 2020. 8. 9. 19:52



초후의 옛 거리를 걷는 중


본래 예정에 없었는데 검색 중 신기한 곳을 찾아서 가기로 한다.


고급주택가로 보인다


쭉 가는 길


이곳이 과거 초후의 중심지이다.


동네 이름도 초후 미야노우치


드디어 도착한 곳은


이미노미야신사


이미노미야신사(忌宮神社, 기궁신사)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관련이 있는 신사로 주아이천황과 신공황후, 오진천황을 모시고 있다.

일본삼대실록에 따르면 진시황의 11대손인 공만왕이 도래하여 조정에 누에를 바치고

머물렀던 곳으로 양잠의 신사였다고 한다. 진시황의 자손이라는 건 말이 안 되니

역시 한반도나 중국계 도래계 씨족의 우지신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본래 토요우라궁이라는 궁궐로 주아이천황이 규슈의 이민족인 쿠마소를

정벌할 때 세운 행궁이었다고 한다. 이후 주아이천황은 신공황후와 함께 후쿠오카의 카시이궁에서

머무는데 신공황후에게 현신한 신에 의해 쿠마소가 아니라 신라를 치라는 신탁이 연달아 내린다.

그러나 주아이천황은 언덕위에 올라도 보이지 않는 신라의 존재를 의심하며 가짜 신탁이 아닐까

의심하고 그에 따라 아마테라스와 스미요시 삼신의 신벌을 받아 쿠마소 정벌 중 화살을 맞아

급사한다. 이후 타케노우치 스쿠네는 주아이천황의 시신을 카시이궁에서 토요우라궁으로 보내고

그곳이 빈전을 차렸다고 하며, 이것에서 이미노미야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주아이천황을 모신 사전을 토요우라궁, 신공황후를

모신 곳을 기궁(이미노미야), 오진천황을 모신 곳을 토요아케궁이라고 했는데, 화재로 사전이

기궁만 남아 신체를 한 곳에 모시고 이미노미야신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나가토노쿠니의 니노미야로 본래 제2위의 격을 지냈으며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이 곳에서

전승을 기원했고 이후에는 초후모리씨의 비호를 받아 경내에는 역대 번주를 모신 신사도

있었다. 다만 지금의 건물은 공습 등으로 완전 새로 지은 것이다. 그래도 미술공예품으로

중요문화재 4건을 보관 중이다.


내려다 본 도리이


중문


보물관도 있다


신사에서 키우는 관상용 닭


뽀얗군


오호


멋있다


본전


배전

건물은 볼 게 없다.


사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


보물관 열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중


오 걱정 좀 했는데

예약도 안 했는데 바로 열어준다.


내부

물레?


아 양잠의 신사

그 성격도 있나 봄


노면


이곳에서 내려오는 춤 중에는 신공황후가 신라의 장수 진륜(塵倫, 진린)을 물리치

그 목을 베어와 신사에 묻는 이야기도 있다. 비슷한 내용이 이와미 지방에도

내려오는데 거기에는 규슈의 호족으로 나온다고


아이들이 봉납한 가면


귀엽네


여우도 보인다


대태도

무지 길다


신문에도 났네


태도 명 요시쿠니

도요토미 히데요시 기증



대포 모형


임진왜란 전승품이라는데?????


신공황후를 그린 에마


에마


이건 뭔지 모르겠다.


무사를 그린 에마


옛날 기념엽서


밖으로 나왔다


유래 안내판


닭들


비가 오는데 잘 노네


배전으로 가봤다


기궁신사라는 현판



배전 내부


밖에는 타케노우치 스쿠네가 심었다는 3대째의 은행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진심 곧 사망할 듯


신라 장수 진륜의 목을 묻었다는 귀석


마츠리를 할때 밤에 남녀가 나뉘어 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고


안내문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택시를 기다리는데 보이는 아베 신조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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