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4차

겨울 교토 여행기 - 6일 교토 후시미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稲荷大社)

同黎 2013. 3. 4. 01:02



짐을 가져가기 위해서 다시 숙소가 있는 시치조로


이 다리는 몇 번째 건너는 건가


그럭저럭 짐을 챙겨서 다시 역으로 간다.


그 와중에 기념사진 찍는 심보람새끼


하여튼 5일동안 고마운 숙소였다.

가격도 싸고...


검은남자 노준석도 기념사진



어렵게 짐을 손에 넣은 이들


후시미이나리대사를 보고 싶다는 심보람의 요구에 결국 들리기로

후시미이나리역 도착

4. 후시미이나리대사를 보고 있다는 심보람의 요구


역이 신사 색깔에 맞춰 빨간색이다.


후시미이나리대사 안내판


후시미이나리대사로 가는 길

캐리어를 질질 끌며 올라가는 중


자민당 국회의원 포스터

굉장히 젊다. 정치신인(일본 애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이나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은 애인가 보다.


중간에 철도 건널목을 지난다.


JR선 철길


한 번 가본 나와 장순기, 발이 아픈 송혜영은 밥을 먹기로 하고 나머지는 신사로 간다.


멀리 도리이가 보인다.



좌우에 있는 나무 판떼기는 신사에 돈을 헌납한 사람 명단이다.

기본에 50만엔이다. 600 이하는 이름도 못 올린다.



2차 여행기 참조

http://ehddu.tistory.com/52


도리이 너머로 누문이 보인다.


후시미이나리대사는 마쓰오대사와 함게 하타씨의 씨족신사이다. 하타씨의 이로구라는 사람이 흰 떡을

만들어 던지고 과녁삼아 활을 쏘자 그 떡이 새가 되어 이 자리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 후로 농업의 신사가

되었는데, 이후에 상업의 신사로 바뀌어서 오늘날 온갖 기업들이 앞다투어 시주를 하고 있다.

2차대전 종전 후 잠시 이세신궁의 신사본청에 속했다가 이제는 독립하여 단립신사가 되었다.

주신은 창도혼명(우카노미타마로노미코토)이며 우가지어혼신(우카노미타마노카미)라고도 하는 고대 곡물, 식물의 여신이다. 이세신궁부터 식물신으로 모셔져 각종 신사의 제수를 관장하는 식물신으로 모셔진다. 


본전으로 향한다


뒤돌아본 후시미이나리대사 진입로


누문


김의경 기념사진


채홍병도


단체샷


이 붉은색이 후시미이나리의 상징인가보다. 정기간행물 이름마저 주(朱)이다.


이나리신사의 상징인 여우

여우구슬을 물고 있다.


열쇠를 입에 문 여우


누문을 지나 배전으로 이동


배전 뒤의 본전은 15세기 말의 건물로 중요문화재이다.


한쪽의 아스마마루신사(동환신사). 에도시대의 국학자(유학과 불교를 거부하고

신도 위주의 학문을 공부한) 가다 아스마마루(하전춘만)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이다.

후시미이나리 신사 안에 있지만 섭말사에는 속하지 않는다.


좀 더 위에 있는 내배전

신체인 이나리산을 참배하기 위한 것이다.



내배전 내부

매년 정월 초하루에는 수많은 기업의 회장, 사장들이 여기에 거금의 돈을 던지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고 한다. 그래야 복이 온다며


내배전 측면


중간의 섭사



신사 사무소


부적과 기념품을 파는 곳


이제 신사의 명물 센본도리이를 보러 가는 길


큰 도리이 두 개를 통과해서 올라간다



도리이 근처의 섭말사들



여기저기 섭말사가 많다.



센본도리이를 향해 계속 올라간다.


또 짐은 어디다 맡긴거지?



드디어 센본도리이가 시작된다.


시작되는 부분은 이렇게 비교적 큰 도리이가 나온다.


말이 센본도리이지 이나리산 전체에 1만 기가 넘는 도리이가 있다고 한다.

만본도리이로 바꾸지


도리이의 행렬들



멋있는 척 하지마


좀만 더 가면 도리이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신이 난 김의경

아직까진 신이 나 있겠지...


두 갈래로 갈라진 도리이


기념사진

이렇게 보니까 합성같네


채홍병은 저 삐딱하게 선 포즈를 참 좋아한다.


근성은 없는지 저기를 다 안 가보고 금새 돌아온다.

도리이 뒷면엔 시주한 이들의 이름이나 기업 이름이 쓰여져있다.


후시미이나리대사 안내도


다시 내려간다


내려오는 길 기념품점에서 여우모양 인형을 들고 좋아하는 김의경


누문 앞의 무전


다시 중문


이제 후시미이나리대사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