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詩

바보 과대표 - 홍치산

同黎 2013. 3. 8. 00:33

바보 과대표 - 홍치산


우리학교 1학년에 바보 과 대표가 한명 있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고
밍맹몽, 007빵 무얼 하더라도
진짠지 가짠지 야튼 맨날 걸려 얻어 맞으며
히히 웃고 벌주 발칵발칵 마시며
배꼽 뚜딜겨 뽕짝 걸판지게 뽑아대는
천하에 바보가 있다 

항상 그 바보 곁에는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그의 수첩에는 120명 동기 이름 모두 적혀 있다
누구누구와 언제 만났고 누구의 고민은 무엇이고
누구와는 아직 얘기 못해보았느니
멋있는 싯구 하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잔뜩 쓰여 있다

수업에 안 들어오는 애들 리포트 알려주고
시험 때는 쏘스 제비 벌레 물듯 물어와 노놔주고
역사 연구반이니, 사회 과학 연구반이니
소수의 의식화를 위한 것보다
바둑반이니 농구반이니 그런 모임을 만들어
120명 모두를 함께 하는 고민으로
자기 과 소모임에 참여시켰다

일기장에는 자신의 참된 삶의 문제
누구보다 겸허하게 치열하게 고민하였으며
개인의 안락에는 추호의 타협이 없었으며
항상 5시간 수면을 철저히 지킬 것을 강제했고
서재에는 항일 무장 투쟁사가
손때 묻어 간직되어 있었다.

그날
자기 과 친구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본대에 남아있으라 하고
아스팔트 하이바에
우리 선배 전투조들 떨고 있을 때
익살스런 춤 '간다 간다 뿅간다'
신명나게 두려움 누그려 주고
전투대장의 진격의 나팔 우렁차게 울리니
그는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정확하게 꽃병을 꽂았다

드디어 놈들의 사나운 이빨
으르렁거리며 덤벼들 때
한 친구 전사는 미끄러지고
모두 안타까이 돌아섰을 때
그 바보 전사는 바보처럼 의연히 달려 나갔다.

다음날 한겨례 신문에
조그맣게 바보이야기가 실렸다

고대에서 2명이 화염병으로 잡혀오고
100명이나 친구들이 성북서 항의방문을 했다고
바보를 풀어달라고 울부짖었다고
총학생회장님이 잡혀가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리고 다음날 교문과 식당에서는
바보의 바보 같은 친구들을 누구나 만났다
그들의 손에는 당구 큐대가 아니라
볼펜이 아니라 오락실 운전대도 아닌
규탄 성명서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
학생의 날 가두 전투조 사전모임에서
한 1학년 학우의 결의 발표가 나의 심장을 쳤다

'나는 바보의 다른 과 친구입니다.
투쟁하란 말은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짱돌 한 번 던진 적이 없지만
바보를 잡아간 놈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비록 제가 잡혀 간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