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나는 행복을 위해 투쟁합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同黎 2013. 3. 12. 00:16

나는 행복을 위해 투쟁합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세번에 걸쳐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꿈꾸며, 아울러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교회를 꿈꾸며, 대구기독청년협의회의 청년들과 함께 기독청년운동을 할 때였습니다. 

그 두번째는 평생을 아웅다옹하며 삶을 나누고자 하는 희년공동체의 식구들과 함께 비산동주민들과 부대끼며 지역주민운동을 꿈꾸는 때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땀흘리며, 똑같은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40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입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뛰어든 이래, 지난 1년 9개월동안 저는 아름다운 세사람을 만났습니다. 
작년 2003년 9월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선두에서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백주대낮에 발가벗긴 채 연행되어 방글라데시로 강제출국당한 '비두'동지와 40만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과제를 양어깨에 걸머지고 싸우다 결국은 고국네팔로 강제출국당한 평등노조 이주노동지지부 '샤말타파'위원장, 그리고 지금도 이 두동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명동성당 앞 농성텐트를 지키며,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저지, 전면합법화 쟁취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단'의 투쟁국장을 맡아 모범적 실천을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마문'동지입니다. 

이 세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너무나 착해 보이는 그들의 웃는 모습입니다. 
보조개가 푹 패인 웃는 얼굴입니다. 
정말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들의 그 착한 웃음을 다시 보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이 세동지보다 더 가슴 절절히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 

새벽2시까지 3-40kg의 완제품 이불박스를 지고 날라야 하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 4월 9일 심근경색으로 숨진 카이잘 후세인동지 입니다. 

그리고 악덕 사업주에 시달리다 못해 회사를 옮겨달라고 노동부 고용안정센터를 찾아가 몇번이나 호소하다 거절당한 절망 끝에, 결국 지난 7월 27일 지하철 아양교역에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한많은 생을 마감한 중국인 여성노동자 정유홍씨입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을 생전에 만난 일은 없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 가슴에 각인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후, 사후처리와 보상문제에 매달리면서 그들의 한 많은 생에 대하여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눈물을 비오듯 흘려야 했습니다. 눈물없이는 다가오는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는 제2, 제3의 카이잘 후세인, 정유홍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살아있는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을 제 가슴에 묻었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추방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로 인정하여 합법화조치를 취하지 않는한, 
천부적 권리인 사업장 선택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저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두, 샤말타파, 마문 동지의 그 착한 웃음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카이잘 후세인과 정유홍이 다시는 나오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결국은 이 투쟁만이 저의 행복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저는 이주노동자들의 피맺힌 외침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쓰다버리는 종이컵이나 장갑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다"
"우리도 사람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이런 외침을 귀기울이기는 커녕,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여 이들을 단속대상으로만 보고 적법절차를 무시하는 모든 공권력 행사는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아니 위법입니다. 
이런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우발적이든 우발적이지 않든 끝까지 저항해서 무력화시켜야 합니다. 

끝으로 저로 하여금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가게 해 주신 그래서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주신 이 땅 40만 이주노동자들과 저가 믿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삼가 카이잘 후세인 동지와 정유홍씨의 명복을 빕니다. 



-피플 타임즈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