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둘러보자 - 김규항

同黎 2013. 3. 29. 00:00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퇴임연설은 아마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파렴치함의 가장 특별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너무나 파렴치해서 차라리 경외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는 게 다라면 결국 우린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면서 동시에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누구인가에 대해,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되새겨 봐야하지 않을까. 이명박은 화성이나 명왕성 출신의 지구침략자가 아니라 민주 시민들이 무려 5백만 표차로 뽑은 대통령이니. 난 이명박을 찍지 않았으니 당당하다, 할 사람이 있다면 이명박 대신 민주당에 대해 그렇게 해볼 수 있다.오늘 ‘동네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의 무능과 구태를욕하고 조롱한다. 그런데 오늘 민주당을 욕하고 조롱하는 그 시민들은 불과 얼마 전 선거에선 그 당의 집권이 ‘진보적 정권 교체’라고, 혹은 그 당의 집권을 통해 진보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소리높여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랬다면 민주당을 욕하고 조롱만 할 게 아니라 그런 당에 걸었던 내 기대와 믿음이 온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서 다음에 더 나은 판단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삶이 사실 다 그렇다. 주위을 둘러보라. 아니 둘러보자. 현명한 사람 중에,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 매사에 남 탓만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