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깨어있는 인민들 - 김규항

同黎 2013. 3. 28. 23:58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 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덕에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석유가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반공주의자나 우파보다는 좌파,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차베스식 사회주의가 석유 덕이라면 차베스 전에는 석유가 없어서 사회주의를 못했다는 말인가? 차베스 전이나 차베스 이후나 베네수엘라엔 석유가 있었고 석유로 인한 부가 있었다. 다른 건 차베스 전엔 그 부가 모조리 소수의 지배계급 차지였지만 차베스 이후엔 인민들에게 분배하고 또 인민들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쓰는 것이다.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가 없을 때도 지속되었다. 2003년 ‘석유 테러’, 즉 베네주엘라 기득권 세력과 미국이 혁명을 거꾸러트리기 위해 정유시설을 파괴할 때 가난한 인민들은 오히려 차베스를 응원했다. 아이들이 굶고 식탁과 침대를 땔감으로 쓰는 상황 속에서도 인민들은 ‘물러서지 마라 차베스’를 외쳤다. 차베스는 배네수엘라 인민들의 우상이 아니라 인민들 자신이었다. 온 세상이 그런 선택을 ‘비현실적’이라 논평했지만 2004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50% 이상, 극빈율은 70% 이상 감소했다. 베네수엘라의 '깨어있는 인민들'은 한국의 ‘깨어있는 시민들’처럼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저녁마다 인터넷에 들어가 정치토론을 벌이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의 안락을 위해 다수가 고통받는 과거로의 회귀를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의 ‘깨어있는 시민들’처럼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게 현실적 최선’이라며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차베스식 사회주의를 가능하게 한 건 석유가 아니라 그들, 깨어있는 인민들이었다. '예수와 맑스를 동시에 따른다'고 말하던 사람, 우고 차베스의 명복을 빈다.

차베스의 명복을 빌며 김규항의 글로 대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