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왼쪽의 힘 - 김규항

同黎 2014. 1. 8. 00:33

왼쪽의 힘 - 김규항


오랜만에 쇼스타코비치 5번을 꺼내 듣다 현실 사회주의 생각을 했다. ‘인민이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다가 인민에 의해 무너진 사회.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채만수처럼 ‘스탈린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련이 미국보다 못한 사회였는가’라며 결기를 보이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덜한가 더한가의 상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1980년대 운동권들은 대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굴절된 비굴함이 있다. 그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껏 경도되었던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낡고 비현실적인 좌파로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비굴함.


‘386’의 추레한 감상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오늘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본연의 이상과 거리가 있는 사회였다는 생각은 일반적인 것에 가깝다. 2008년 미국발 공황 이후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일련의 사회주의 붐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반영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그런 부정 일변도의 관점이 빠트린, 혹은 놓치는 것들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였는가 아닌가, 아니면 얼마나 아니었는가를 떠나 현실 사회주의라는 존재가 자본주의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에 대해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 자체론 결코 좋은 게 아니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엔 매우 좋은 것이었다.


케인스주의니 유럽식 복지시스템이니 하는 수정된 자본주의는 현실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구현되기 어려웠다. 유럽식 복지시스템이 그걸 주창한 사람들과 사회의 원만한 합의(그것 참 좋은 생각이구나! 하는)에 의해 구현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의 껍질일 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강력하게 존재했고 그 힘, 즉 강력한 왼쪽의 힘이 자본주의 사회를 ‘아직 사회주의로 넘어가지 않은 사회’로 재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수정을 견인해낸 것이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은 노동자 인민들이 온통 빨간물이 들어 자칫 사회주의로 넘어가느니 ‘계급 타협’을 해서라도 체제 유지를 선택했다.


현실 사회주의라는 왼쪽의 힘이 사라지자 수정된 자본주의들이 퇴조하고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오른쪽의 힘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지구라는 행성은 유례없는 야만의 상태로 돌입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옥이다. 북유럽을 비롯해 여전히 심각한 야만의 상태는 아니라는 사회들은 모두 스스로의 왼쪽의 힘을 가진 사회들, 다시 말해 강력한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가진 사회들이다.


오늘 한국 사회는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사회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없다. 박근혜 보수 정권이나 지리멸렬하는 민주당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왼쪽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반이명박 연대’라 불린 선거전술을 통해 그나마 있던 주요한 왼쪽의 힘인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은 거의 괴멸 상태에 이르렀다.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힘을 모으면서 장기적으로 내 살림을 챙긴다는 반이명박 연대의 대의는 급한 불도 못 끄고 제 집만 몽땅 태워버린 것이다.


문재인이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복지나 노동의 면에서 그리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세력이 더 이상 그들을 강제하고 견인하는 왼쪽의 힘이 없는데 왜 제 이념을 넘어서는 정책을 구현한단 말인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재인의 패배에 낙심하는 진보는 차고 넘쳤지만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의 괴멸에 낙심하는 진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짓는 데 어떻게든 인생의 한 구석을 할애한 사람들이 말이다. 이쯤 되면 오늘 한국의 진보는 뭔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게 아닐까. 물론 현실에 대한 견해는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진보세력 대부분이 어떤 거대한 홀림에 의해 변하는 줄도 모른 채 변해가는 건 파국의 징후다.


왼쪽의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조직노동과 진보정당을 무작정 미화할 건 없다. 한국의 조직노동, 즉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던 참이고 진보정당은 평범한 인민보다는 인텔리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왼쪽의 힘이 없는 한국 사회는 자본의 왕국, 재벌 천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왼쪽의 힘이 없는 한 박근혜 대통령인가 문재인 혹은 안철수 대통령인가는 MBC와 KBS의 사장이 누가 되는가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 어렵다. 왼쪽의 힘이 없는 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자본의 왕국’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왼쪽의 힘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막막한 이야기지만 희망을 찾는 길엔 피할 수 없는 선택도 있는 법이다.